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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로북극성 Jan 28. 2022

"30년 후에 얘기하자!"

사랑, 한결같음, 도움의 미덕을 찾았어요.



“30년 후에 너 엄마 되고 나서 얘기하자!”     

아침 밥상에서 미간을 찡그린 딸에게 입술을 꼭 깨물며 이야기한다. 최대한 우아하게. 알람소리에 못 일어나더니 늦었다고 얼굴에 짜증이 한가득하다. 이럴 때 잔소리면 싸움이 되니 내가 참는다.     

“엄마한테 부탁하지 그랬어. 그래도 한 술 먹고 가! 점심시간까지 배고프잖아! 얼른 먹어!”

“엄마! 지금도 늦었는데 어떻게 뜨거운 국이랑 밥을 먹어! 나 밥 안 먹고 그냥 갈 거야. 바나나 하나만 먹으면 돼.”

그래도 어제 엄마가 몇 시간 동안 사골을 고았는데 좀 먹고 가. 응?”

“아, 알았어, 알았어. 조금만 줘.”     


그깟 아침 안 먹고 가면 본인만 배고플 거 뻔히 아는데 오늘도 애원한다. 한술 뜨더니 설거지통에 갖다 넣지도 않고, 휙 자기 몸만 식탁에서 빼내는 요 얄미운 녀석! 속으로 다시 되뇐다.

‘어디, 나중에 네가 엄마 되면 두고 보자!’     

나는 왜 아이가 안 먹겠다는데 굳이 먹이려고 했을까? 젖먹던 힘까지 다 쓰고도 게임에서 진 것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머리 꼭대기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흥, 엄마들은 우리 손바닥 위에 있다니까?’

오늘도 의문의 일 패.     




전화벨이 울린다. 아버님의 전화다.
“아버님, 점심 드셨어요?”

“애미야, 너 집에 있냐?”

다짜고짜 용건으로 치고 들어오시는 우리 아버님.

“네, 아버님, 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지금 지하철 타고 너희 집 가려고 나왔다.”

“네? 아버님? 지금 오신다고요? 갑자기 왜요?! 무릎도 아프신데 왜요?”

“내가 어머니랑 파주 가서 콩을 사 왔어. 너희 집 것도 사 왔으니 갖다 주려고 나왔다. 50분 후에 지하철역에서 만나자.”

“아니, 아버님! 콩이 얼마나 무거운데 그걸 지하철 타고 갖다 주신다는 거예요? 저희가 주말에 가지러 갈게요. 집에 들어가세요. 네?”

“아니다, 나 괜찮아! 구루마에 끌고 가면 하나도 안 무거우니 걱정 말아라. 50분 있다 보자.”

뚝.

“아버님? 아버님?”

끊겨버린 전화에 대고 괜스레 외쳐본다.     


올해 87세이신 우리 아버님. 당신이 결정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기시는 분. 1년 치 검은콩을 마련하셨으니 아들 집에 바로 갖다 주어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 우리 아버님 스타일이다. 건강하시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양쪽 무릎 관절을 수술하시고 지팡이를 짚으신다. 그런 양반이 마을버스 타고 지하철 갈아타고 검은콩을 갖다 주시겠다니, 말리고 싶다. 무거운 콩을 들고 오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누구 욕 먹이려고 그러시나?’ 싶어 원망스럽기도 하다. 아들한테 말하면 ‘왜 그걸 갖고 오시냐’고 안 좋은 소리 들으실 게 뻔하니 며느리한테 전화하신 것이다. 당신 고집대로 이미 출발하신 게 분명하니 나는 지하철역에서 아버님을 만나야 다.      


시간을 맞춰 아파트 정문을 향해 걷는데,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버님이다.

“아버님! 벌써 오신 거예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언제 오셨어요? 무릎 아프지 않으세요? 말씀하신 시간보다 일찍 나왔는데 언제 오셨어?

당황한 며느리는 아버님 앞에서 죄송함에 쩔쩔맨다.

“아니다, 얘야. 지금 막 왔어. 너는 왜 또 빨리 나왔니?”

불 보듯 뻔하다. 혹시 며느리가 길에서 기다릴까 봐 도착시각을 조금 늦게 말씀하신 것이다.

“아유, 아버님. 이 무거운 걸 가져오시느라 힘드셔서 어떡해요? 제가 죄송하잖아요.”

“아니다 애미야. 이깟 거 하나도 안 무겁다. 걱정하지 마라. 어서 들어가거라. 나 간다.”

“아버님, 집에 가서 차 한 잔 드시고 가세요. 이걸 가져오셔서 바로 가시면 제가 죄송해서 어떡해요? 차 드시고 가세요!”

“아니다, 얘야. 내가 할 일이 있어서 바로 가봐야 해. 밥에 잘 넣어서 먹어라.”

“아,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을 연발하는 며느리를 뒤에 두고 쿨하게 지하철역으로 걸어가신다. 조금 절뚝이는 아버님의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시리다. 코끝이 찡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나랑 실랑이하며 지하철을 타고 우리 집에 음식을 갖다 주실까?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먹일 궁리를 하고, 80대 부모님은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하신다. ‘내리사랑’이 딱 맞다. 아이에게 줄 관심과 사랑의 1/10만 부모님께 향해도 대단한 효자가 될 텐데 싶어 얼굴이 화끈거린다. 불현듯 내가 아이 뒤통수에 대고, ‘어디, 네가 부모 되면 자!’라고 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 말은 부모님이 나한테 하시고팠던 말이 아닐까? 주기만 해도 모자란 부모의 마음, 평생 가도 그 마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으리라. 어차피 사랑은 아래로 향한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만 주면 되는 게 아닐까? 폭포처럼 내려오는 사랑을 듬뿍 받고 그 사랑을 내려주도록. 그래, 나는 사랑만큼은 듬뿍 주며 키우련다. 내가 아직도 부모님의 사랑을 차고 넘치게 내려받는 행운아이니까. 아버님! 오래도록 검은 콩 사다주세요!




오늘의 미덕 찾기

- 사랑: 사랑은 가슴을 채우는 특별한 감정입니다. 당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세요.


- 한결같음: 한결같음이란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고 그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한결같음의 미덕을 통해 우리는 자긍심과 평온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 도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그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도록 사려 깊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서로 도우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자녀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모든 부모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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