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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13. 2023

탁월하지만 가벼운, 킬러 길복순

영화 〈길복순〉을 보고


그 영화 어땠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 영화의 무엇이 평가를 유보하게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 쉽게 평가 내리기보다는 어떤 점이 왜 좋고 어느 부분이 어떻게 아쉬웠는지 고민해 보는 습관을 키우자는 심정으로 탐구해 본다. (영화의 주요 내용 포함)




진부함과 참신함 사이

에이전시와 협회가 생겨나며 글로벌 산업이 된 청부 살인. 여러 영화에서 유사한 설정과 촬영 기법을 참고했다는 평에 그치지 않으려면 멋진 캐릭터라든지 명확한 메시지라던지, 기존 영화들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살인이 예술처럼 ‘작품’으로 불린다는 영화적 상상력은 마치 과거에는 생존 수단이던 폭력이 이제는 영화나 게임 속 즐길거리가 되었음을 은유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액션도 판타지다. 현실에서는 욕구대로 실행할 수 없을뿐더러 추하기가 쉬우니까. 그런 이유로 변성현 감독은 비린내 나는 폭력을 더 아름답게, 보다 우아하게 묘사하려고 애쓴 것일까?



반려식물과 반찬 준비에 정성을 쏟고 자녀 문제를 고민하는 중년의 킬러 길복순(전도연)은 여성 캐릭터의 확장과 한계를 모두 가지고 있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성인 남성의 도움을 받으며 독립적으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는 당돌함으로 차민규(설경구)의 마음을 얻고 업계에서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커리어를 지켜왔다.


그런 그도 엄마 입장이 되면 작아지는데,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엄마라는 설정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실망감을 주었다. 그보다는 상황을 시물레이션 해보는 신중함으로 늘 우위에 서는 그도 딸과 대화를 할 때면 몇 번이고 상황을 복기해 봐도 잘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돋보이는 미장센

〈킹스맨〉을 멋스럽다기보다 지나치게 잔인한 영화로 기억하는데, 〈길복순〉은 액션 장면마다 자세히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치고받는 합 자체보다는 소품과 조명과 움직임 등 전체적인 미학에 초점을 둔 액션이었다. 철저한 계산과 수많은 시도가 있었을 롱테이크와 슬로 장면에서 감독의 집요함이 느껴졌다. 복순과 야쿠자의 대결 장면에서는 관객의 시야를 기차가 가로지르는 대담한 연출을 보여줬는데, 기차와 액션이 합쳐지며 만들어낸 잔상 효과가 인상적이었다.


장소별 특징도 눈에 띄었는데 정렬과 흐트러짐의 대비가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었다. 매끈한 대리석에 플랜테리어가 돋보이는 복순의 집과 한희성(구교환)의 차 안에 마련된 조악한 잠자리. 아날로그식 엘리베이터로 장식한 차민규의 고풍스러운 사무실과는 대조적으로 허름하고 복작복작한 은퇴자의 술집이 그러했다. 그곳에서 들이치는 노을빛을 조명 삼아 낡은 물건들을 던지고 무너뜨리며 싸우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감독의 의도

연출에 공들인 만큼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했을까? 그렇지 못해서 〈불한당〉을 찾아보았는데, 두 작품에 동시에 등장하는 대사가 시선을 끌었다. 하나는 설경구 배우의 "나는 기준을 정하는 사람"이라는 맥락의 대사였다. 있는 자들이 만든 불합리한 질서를 깨뜨리는 인물의 등장은 반갑고 시원했지만 그것을 새로운 정의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다른 하나는 '다 살려고 그러는 것'이라는 대사였다. 〈불한당〉의 한재호가 자신의 삶을 변명하기 위해 했던 저 대사가 복순을 통해서는 타자를 설명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그걸 알면서도 킬러는 냉혹하다. 동료나 후배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쿨하다. 타자를 이해하면서도 무자비한 것이 프로페셔널인가.



술집 액션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건 화려한 연출 때문만은 아니다.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이들도 평범한 회사원들처럼 업무를 마치고 한 잔 걸치러 들른 선술집. 그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숨겨둔 애환과 자존심과 먹고사는 문제로 불안했던 자들의 욕망이 폭발해서 부딪치는 장면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복순은 딸의 가치관대로 공정성을 지켜보려고 시도하지만, 칼싸움에서 총을 쓰는 것처럼 결국은 간편한 쪽을 택해버린다. 게다가 복순이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전에 갈등은 너무 쉽게 해소되고 만다. 이런 가벼움은 복순의 강점이자 한계다. ‘다 살려고’ 그러는 거라는 사정을 아는 사람이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제거된 상태의 복순을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가냘픈 체구지만 살짝 드러난 탄탄한 다리, 복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도구, 고개를 치켜들고 시선을 내리깔며 짓는 웃음까지, 영화 스틸컷에서 느낀 두근거림을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지켜냈다. 색다르게 시도한 액션마저 잘 소화하면서 그는 연기 지평을 넓히고 매력을 한껏 발했다. 캐릭터가 가진 한계를 넘어 스스로 빛난 것 같았다.




Photo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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