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시대》와 《불안》 그리고 《여행의 기술》을 읽고 알랭 드 보통을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작가라고 짐작했었다. 그런데 그가 '닥터 러브'라고 불린다고? ‘연애 3부작’이 유명하다기에 벼르던 차에 《우리는 사랑일까》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먼저 읽었는데, 과연 학위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그는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했다는데, 그 공부가 사랑에 대한 통찰력의 밑거름이 된 것일까? 어찌 보면 철학도 역사학도 사랑학도 전부 사람을 탐구하는 일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경이롭다. 누군가에게 압도당하고 매혹되는 낭만적인 감정이다. 신비로운 타자가 신경에 침투하여 내면을 흔들고 평화를 방해한다. ‘나’라는 철벽 도읍이 무너지고 세상의 중심이 새 거점인 '너'로 천도된다. 이성이 어찌할 틈도 없이 그렇게 되어버리면,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다. 그녀나 그도 나와 같은 무게와 깊이로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기를, 그리고 원하기를.
누군가를 그토록 동경하고 원하는 일은 살면서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러니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상태에 빠지게 되는 건 얼마나 낮은 확률일까. 그 미미한 가능성을 뚫고 두 사람이 서로의 상태를 고백하고 인정하면, 비로소 연애가 시작된다. 그러니 어찌 경이롭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랑은 어떻게 피어나서 불붙고, 유지되거나 소멸되는 것일까? 멜로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수없이 간접 경험을 해봤지만, 인물들의 심리를 그들의 언행으로만 관찰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반면에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앨리스’와 ‘에릭’의 연애 이야기로,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는 ‘라비’와 ‘커스틴’의 결혼 이야기를 통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단계적 변화를 보여 준다.
두 소설 모두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이상형이 형성되는 과정부터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방식까지도 볼 수 있다. 왜 주인공이 상대에게 끌리고 또 망설였으며,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예민하게 구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케아에서 컵을 사면서 각자의 취향이 얼마나 큰 싸움으로 번지는지 지켜보자면 헛웃음이 나오지만, 당사자가 되면 발단이 사소하기 때문에 더 크게 화가 나기 마련이다. 이렇듯 연애는 개성 넘치는 두 사람이 만나서 탐색하고 이끌리고, 융화되고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온갖 고유한 작용과 반작용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사랑일까》의 원제가 《The Romantic Movement》인데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는 사랑은 결코 낭만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며, 오히려 사랑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Course of Love》이다. 두 책 모두 원제가 더 와닿는다. 어쨌거나 연애든 결혼 생활이든, 어쩌면 그렇게도 양쪽의 입장이 다 되어본 듯이 심리를 잘 그려냈는지 공감하고 감탄하며 읽었다. 성별도 동서양의 정서 차이도 이들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연애가 자아에 이로운 건, 갑자기 무작정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한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이유일 것이다.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일관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가족이나 연인, 막역한 친구 관계에서 드러나는 나는 이기적이고 변덕스럽고 예민한 사람이기도 하다. 보통에 따르면 연인들은 ‘우리를 간파해 내고, 신뢰하고 나눌 줄 아는 우리의 능력 총량 아래에 있는 무언가를 알아보고 공감해 주고 용서해’ 주기 때문에 내가 감추려던 상처까지 끌어안고 치유해 주는 존재다. 이어서 보통은 사랑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랑은 우리의 당황스럽고 난처한 영혼에 대한 연인의 통찰력에 바치는 감사의 배당금이다.
말로 하긴 싫지만 알아주길 바라는 감정을 상대가 읽어 주었을 때, 애써 감추고자 하는 약점을 상대가 알고도 지지를 보낼 때 특히 사랑하는 감정이 무르익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고 안도할 수 있게 되면 어떤 비밀도 털어놓을 수 있게 되고 두 사람은 이해의 영토에 안착한다. 물론 이렇게 형성된 이해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단단해지다가, 어떤 기점이 지나면 메마르고 쪼그라들고 갈라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사랑을 또 이런 식으로 말한다.
함께할 수 있는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합치되었던 것은, 넓고 갈림길이 많은 길에서 일어난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다.
사랑의 본질은 그러하지만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는 사랑의 시작에 대해 보내는 관심만큼, 이끌림과 설렘 이후에 사랑이 어떻게 변화하고 유지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받기'에만 익숙해져 있는 우리가 '사랑하기'를 배워야 된다고 말이다.
20대 시절, 진저리 치는 나에게 끊임없이 공개적인 구애를 보내던 친구가 있었다. 그럴수록 창피하고 더 싫어져서 나는 절대로 저런 친구를 좋아할 수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섣부른 내 선언은 결국 그의 넉살 넘치는 매력에 눈을 뜨면서 몇 달 만에 깨졌고, 다채롭고 유쾌했던 1년의 연애는 나의 자만 때문에 끝나고 말았다. 당시의 나는 연인을 괴롭히지 않고 사랑에 몰입하는 사람인 줄 착각했었지만, 실은 늘 넘치게 사랑받고도 되돌려주지 못했던 미숙한 연인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아간다. 사랑에 대해서는 장담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