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새 Feb 23. 2024

쌈 채소

열아홉 번째 끼니 - 4

골고루 먹고, 채소도 꼭꼭 씹어서 먹으라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철근도 소화할 20대까지는 귓전으로 흘렀지만, 30이 넘으니 이젠 그 말이 진짜로 귀에 와닿는다. 한 마리의 육식공룡처럼 고기만 사랑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풀과 채소를 챙겨 먹고 있다. 뷔페나 스테이크집을 가면 샐러드를, 돈가스 가게에 가면 양배추샐러드를, 그리고 수육이나 족발, 보쌈을 시켜 먹으면 쌈 채소를 한두 점씩 집어먹게 되었다.

전에는 고기를 구워 먹을 때 깻잎과 상추를 집어 먹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소화 잘 되라고 부모님이 먹으라고 하시긴 하는데 그게 맛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알 수 없는 싱그러운 맛과 향기가 나를 어지럽게 만들어서 힘들었다. 그나마 향이 옅은 상추는 잘 먹겠는데, 향도 세고 맛도 강한 깻잎은 입에 대기 힘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 채소 없이 살 수 있으면 참 좋을 터라는 철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우리의 몸은 날이 갈수록 약해지는데, 고기와 인스턴트 음식, 단것만 먹으면 몸에 무리가 간다. 이런 식습관을 지속하다 보니 소화불량도 겪었고, 쉽게 피로해졌고, 피부도 나빠졌다. 유튜브에서 채소와 나물을 먹지 않아 병에 걸리는 사람들을 보고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며칠간 컨디션 난조를 겪으니, 채소를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삼십 대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삼도천 문 앞까지 다다르니 골고루 챙겨 먹네.


그때 이후로 난 채소를 챙겨 먹는다. 다만 육식을 매우 좋아해서, 고기 먹다 죽지 않을 정도로 채소를 섭취한다. 인생은 유한하고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도 유한하니, 채소를 먹으면서 앞으로 먹을 진미를 조절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살면서 녹색 식물이 반가워질 줄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버섯볶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