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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담 Oct 09. 2016

가갸날 기념 훈민정음 나들이

세종대왕님, 고맙습니다

세종어제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해서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지요. '훈민정(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인데, 우리 글자의 이름이기도 하고 한글의 제자원리가 담긴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한글날을 기념하며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이 담겨있는 세종어제 서문을 한 번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선 첫 번째! 우리말에도 중국어처럼 성조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글자의 왼쪽에 한두 개씩 찍혀 있는 것이 바로 성조를 나타내는 방점입니다. 점이 없으면 평성, 점이 1개 찍히면 거성, 점이 2개 찍히면 상성을 나타내는 식이지요. 세종대왕님은 자신이 만든 한글을 너무 과소평가한 모양입니다. 우리는 성조가 없어도 언어생활과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죠. 그래서 방점은 중세 이후에는 사라집니다.


두 번째! ‘듕귁’은 뭘까요? 이건 한자음을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표현해준 ‘동국정운’식의 표기법이에요. 中國을 중국어 발음대로 읽으면 ‘쭝꿔’인데... ‘듕귁’과 ‘쭝꿔’, 죄송하지만 정말 하나도 안 똑같죠? 이 비현실적인 표기법 역시 나중에는 사라집니다.


우리말은 중국말과 다르니 중국 글자와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자주 정신'을 엿볼 수 있네요.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젼차’는 까닭, 이유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지금은 사라졌죠. 그리고 ‘어린 백셩’에서 ‘어린’이라는 표현은 ‘나이가 적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이 당시의 ‘어리다’라는 말은 ‘어리석다’는 의미입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라고 백성을 한 번 디스한 세종대왕님이 나중에는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놈들이 많다’며 2차 디스를 하고 계시네요. 아무리 그래도 ‘놈’이라니 말씀이 너무 심하신 게 아닌가 생각도 드는데... 이 당시의 ‘놈’이라는 표현은 지금과는 달리 그냥 ‘사람’이라는 의미였다고 해요.


이 문장에서는 지금은 쓰지 않는 자음들도 보이네요. 이 당시에는 자음을 두 개 이상 연결해서 쓰는 ᄠ, ᄢ, ᄨ, ᄨ와 같은 ‘병서자’가 초성에도 쓰였어요.


“내가 이것을 가엽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라는 의미입니다.


 부분에 대왕님이 백성을 사랑하시는 '애민정신'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엿비 여긴다는 건 예쁘게 여긴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이 당시 '어엿브다'라는 말은 '불쌍하다'라는 의미였어요. 타임슬립으로 조선에 가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참 어려 보이세요. 어여쁘십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참 멍청해 보이세요. 불쌍하네요”라는 의미가 되겠네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름이니라’는 지금 식으로 쓰면 ‘따르미니라’라고 적혀있는 게 되겠죠? 이 당시에는 지금처럼 의미단위로 끊어 적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이어적기를 했어요. 위에 나왔던 '나랏말싸미'나 ‘노미’의 경우도 이어적기를 한 것이에요.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라는 데에서 '실용 정신'도 엿볼 수 있겠네요!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면면들이 실은 조금 과장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한글날에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민족의 우수성이라고 배웠던 것들 중 어떤 것들은 그저 ‘국뽕’(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도취되어 있는 상태를 이르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있구요.


그렇지만 ‘한글’만큼은 정말 ‘국뽕’에 취해도 될 만큼 우수한 문자입니다. 세계의 언어학자들도 인정하고 있지요. 게다가 이렇게 ‘대의명분’을 밝혀 글자를 창제한 건 오직 한글뿐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국어를 말하고 쓰고 가르치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님이 안 계셨다면 정말 어쩔 뻔했나 싶네요. 저는 얼굴도 모르는 제 직계 조상님들보다 세종대왕님께 훨씬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지갑에 세종대왕님 사진도 항상 넣고 다녀요. 그분은 제가 지갑에 사진을 넣은 유일한 남자입니다. 아, 퇴계 이황 선생과 율곡 이이 선생 사진도 넣었던 적이 있었네요...



한글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유산입니다. 과도한 외계어 사용과 줄임말의 남발은 지양하고 우리의 한글을 아끼고 사랑해야겠습니다. 세종대왕님, 고오맙습니다. 당신의 얼굴만 보면 전 기분이 좋아져요.


고마워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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