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불편함을 제보 받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내 간수치는 졸업 이수학점을 웃돌고 있었다. 그즈음의 나에게 매일같이 술을 마시게 했던 건, 심중의 불편한 감정들이었다. 그런 한편, 당시의 나는 한 번도 그 불편함들에 대해 떳떳이 토로하지 못했었다. 불편함을 토로할 자격 같은 것이 내게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일종의 '자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었다.
내가 생각하는 불편할 자격, 그것은 누군가의 '등골 브레이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이만이 불편함을 당당히 토로할 수 있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지 못하는 인간이 대체 무슨 염치로 세상에 대고 불편함을 토로할 수 있을까. 사회에 이바지하는 바도 없는 이가 밥만 축내면서 사회에 대고 불편해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자조가 내게는 있었다. 그리고 그 자조는 곧 성대한 음주생활로 이어졌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나는 비로소 불편해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 소득세의 측면에서도 - 주류세 부분의 기여로 인한 - 소비세의 측면에서도 나는 또래에 비해 꽤나 넉넉한 세금을 내고 있다. 세상살이란 결국 어떤 측면에서든 타인에게 빚지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 누구의 '등골'에도 부담을 가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대놓고 불편한 감정을 토로하는 코너'를 기획하게 된 배경이다. 사회란 것은 결국 '불편해하는 사람들'로 인해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여지를 가지므로,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매달 바이트 지면을 통해 '뒷목을 잡게 하는 불편한 감정들'에 관해 열심히 이야기해 볼 작정이다.
코너를 시작하며, 불편한 것을 말할 자격에 조건 하나를 더 덧붙였다. "나만 불편해?"하는 질문을 던질 때, 그것이 정말 나에게만 불편한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편한 감정을 말하기에 앞서 정했던 첫 번째 조건 '타인에게 민폐 끼치지 않기'는 나의 생활신조이기도 하니, 앞으로도 스스로 잘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두 번째 조건 '나에게만 불편한 일일 수 있다는 사실 잊지 않기'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독자 여러분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러니 앞으로 매월 던지게 될 "나만 불편해?"하는 물음에 "응, 너만 불편해" "아냐, 나도 그거 불편했어" 하는 응답을 자유롭게 보내주시길 기대한다. 나의 불편한 감정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불편한 감정도 존중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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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사교양잡지 <BAIT> 10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