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와 항암치료

집에 돌아온 내 동생

by 보건쌤 김엄마

에너지 넘치던 남동생이 어느 날부터 감기 증상이 낫지 않아 보였다.

힘도 없고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며 기운 없어 보였다.

팔꿈치가 붓고 얼굴이 하얘진 것 같아 "어디가 아픈가 왜 안 놀지?" 하며 막냇동생과 둘이서 놀았다.


쌍둥이 내 남동생은 늘 씩씩하고 건강했다.

단짝 친구같이 늘 붙어 다니며 힘도 세고 통통하니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밥도 잘 먹고 운동도 잘하고 두 녀석 모두 그림을 잘 그려 미술상을 받아오던 매력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초등학교 2학년이던 동생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의 초희가 떠올랐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나 역시 아주 생소하고 무서운 이름이었다.


별 일 없이 따뜻하던 가정은 하루아침에 비상사태가 되어버렸다.

부모님은 병원에 드나들어야 했고, 동생은 갑자기 환자복을 입고 까까머리에서 대머리가 되어있었다.

살이 많이 빠져 말라 보이더니, 밥 잘 먹고 치료에 도움 되는 약을 먹었다며 순식간에 뚱뚱이가 되어있기도 했다.


대학병원에 입원한 터라 막내 동생과 나는 어린이라는 이유로 면회가 자유롭지 않았다.

막상 간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신경 쓰이는 존재이기만 했을 것 같다.

406호. 그렇게 불리던 하얀 병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엄마를 찾으려면 406호에 전화를 걸었고, 아빠를 찾으려면 사무실 0331에 걸어야 했다.

엄마 손 없이도 적당히 지낼만한 4학년이었기 때문에 무섭지는 않았다.

남겨진 나와 동생을 위해 이모와 사촌언니들이 애써주었지만, 갑자기 뭐가 많이 변했었다.


길게는 2주. 짧게는 3박 4일, 4박 5일 그렇게 치료를 위해 동생과 엄마는 병원엘 갔었다.

큰 솥에 카레를 해두고 냉장고에 두셨고, 이모와 사촌언니가 와서 밥을 차려주기도 했다.

배를 곯지는 않았고, 다정한 친인척 덕분에 불편함 없이 지나온 것 같다.


면회를 가면 내 동생이 침대에 덩그러니 앉아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내 동생 옆엔 스케치북이 가득 쌓여있고, 뭘 참 많이 그려대고 있었다.

동생의 초등학교 친구들이 보내온 손편지들이 보였고, 종이접기 병도 보였다.


다 크고 어른이 되어서야 그때 동생과 엄마의 마음을 떠올려보았다.

엄마는 얼마나 당황스럽고 두려웠을지, 동생은 얼마나 아프고 힘겨웠을지

그때는 잘 몰랐다. 그게 무슨 병인지,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정말 잘 몰랐었다.


동생은 그렇게 3년을 보냈다. 많이 아팠지만 씩씩하고 무던하게 견뎌냈다.

엄마는 그렇게 3년을 보냈다. 많이 힘들었지만 차분하고 야무지게 견뎌냈다.

아빠는 그렇게 3년을 보냈다. 많이 무섭고 외로웠겠지만 든든하게 지켜냈다.


그때의 엄마 아빠는 지금의 나보다 많이 어린 나이였다.

다행히도 내 동생은 건강을 회복하고 튼튼하게 잘 자라주었다.

나와 막내 동생도 무탈하게 잘 자랐고, 가정은 다시 평화를 찾았다.


병실에 있던 동생에게 한 번도 "괜찮니? 어때?"라고 물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휠체어 탄 동생을 쌩쌩 밀어주며 "재밌어?" 하니 어지럽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철없는 나와 막내 동생은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자라고 그게 다였던 것 같다.


이제 마흔이 넘은 내 동생은 운동도 잘하고 그림도 여전히 잘 그린다.

조형예술대학을 나와 미술 유학을 다녀왔고, 지금은 주짓수 관장님을 하고 있다.

알 수 없는 인생을 내 동생은 멋지게 잘 보내주었다.




매끼 따순 밥을 해주시던 손맛이 좋은 우리 엄마는

늘 저녁 6시, 아빠 퇴근 시간이면 갓 지은 밥과 여러 가지 맛난 반찬을 한가득 내어주셨다.

고등학생 땐 동생 둘과 내 야자 도시락까지 6개씩 싸주시기도 했다.


지금 난 밀 키트와 쿠*잇츠, 그리고 갖가지 배달음식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중학생 아들놈 피부에 지방종이 생겨 외과에 다녀왔다.

살짝 찢어 소독하고 봉합하는데 너무 안쓰러워 가여운 맘에 연신 토닥토닥해주었다.


서너 가지 수액을 손등에 달고 살았고, 척수 검사를 할 땐 새우등을 하고 척추에서 골수를 빼냈으니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땐 그 마음 그 고통을 짐작조차 못했고 위로해주지 못했다.

지금 중학생 아들을 보며, 내가 가진 안쓰러운 마음은 우리 엄마 고통에 감히 비할 수 조차 없다.




저녁 6시, 끼니때가 되니 오늘따라 엄마 카레가 먹고 싶어졌다.

병원 입원하러 가면 큰 냄비에 카레 한 솥 해놓고 가셨었는데 말이다.

스텐 국자와 김치와 카레 전용으로 쓰던 납작한 파란색 그릇이 떠오른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배고플 남편은 곧 집에 도착할 텐데,

옛 추억에 빠져 밥도 국도 카레도 안 하고

동생과 엄마 생각에 잠시 빠져있었다.


동생아 늘 건강하길

부모님 늘 건강하시길

내 가족도 막냇동생 가족도 늘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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