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
새벽에 꿈을 꿨다. 어린 시절 어두운 문밖에서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장면. 긴장과 공포가 꿈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내가 꿈속에서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했다.
‘지금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 장하고 고맙다.’
어제부터 나에게 들려주고 있는 말에 대해 꿈으로 메시지를 들은 느낌이다. 참 무서웠다고, 무서운 거 참아내느라 애썼다고, 꿈속에서 도움을 청하고 사실과 두려움을 구분해서 설명한 걸 보면 장하다고.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사느라 애썼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 장하고 고맙다.
최선을 다하면서도 부족하다고 나를 몰아붙이고 증명하고 싶었던 이유가 밖에서 인정받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착각했던 것 아닌가 싶다.
어떤 일을 할 때 미리 한계 지을 필요는 없다. 다만 몸이 힘들어서 구역질 나면 쉬어야 한다. 몸이 보내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내 몸이 보내는 메시지를 외면하며 눈앞에 닥친 문제,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전전긍긍하다 아파서 못 살겠다는 절망의 밑바닥을 헤매고서야 몸과 마주했다.
마음챙김의 근력을 키우며 내가 몸의 통증을 느끼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이해한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면 몸이 힘들어서 보내는 메시지를 끝까지 무시해서 질병의 꼬리표를 이어 붙였을 거다.
변화는 어두운 동굴을 통과의례 한다.
한때 모든 병원 약을 거부했다. 내 몸에서 발생하는 통증을 외부에서 해결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며 병원에 의존하던 삶에서 내 몸의 통증을 고스란히 바라보고 이해하기 시작할 때였다. 통증은 강도를 달리하며 ‘이래도 입원 안 할 거야?’라고 나를 시험했다. 건강 회복하기를 바라며 병원에 의존하던 수많은 날 속에서 절망에 빠져 괴로웠던 경험이 ‘이제는 달라지자’고 외쳤다. 지금은 꼭 필요할 때 병원에 가지만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다. 몸이 힘들다고 메시지 보내면 토닥토닥 쓰다듬기 한다.
변화의 통과의례는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열심히 하려는 습관은 몸을 무리하고 감정을 널뛰게 한다. ‘해도 안 되잖아’하는 무기력 앞에서 일상이 지닌 힘을 잃지 않으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나’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 외부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지 않고 내 안과 밖에서 펼쳐지는 온갖 관계들을,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불편함이 느껴지면 이유가 무엇일지 질문하고 내 깊은 속에서 그 답을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고, 어디에서 비롯되는 문제인지 알아차리고도 습관이 먼저 작용해서 실망스러우면 그러는 ‘나’를 알아차리려고.
마음을 이해하고 몸을 살피기 위해 공부한다. 어제는 ‘트라우마 치유 요가’ 수업에 참여했다. 몸의 감각에 주의 모으고 진행자의 말에 따라, 동작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동작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해도 됐다. 처음에 움직일 때는 내 몸의 여기저기서 뻣뻣하게 굳어 있는 부분이 느껴지기도 하고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내가 움직이고 싶은지, 멈추고 싶은지, 쉬고 싶은지 알아차리며 호흡하고 동작하는데 어느 순간 춤을 추는 느낌이었다. 몸이 부드럽게 날아가는 듯했다. 나른할 때는 요가 매트에 누워 쉬었다.
“지금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 장하고 고마워.”
수업을 마치기 전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습관이 바뀌지 않아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 자신에게 해주라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 장하고 고마워.”라고 소리를 내서 말하는데 가슴에서 뭔가 풀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내가 하나의 동굴을 통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에 대한 욕구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나의 어린 시절은 삶의 많은 부분을 흔들리게 했다. 몸의 통증과 마주하며 ‘나’와 ‘내 주변 관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누군가 채워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며 익히고 있다. 새벽에 꾼 꿈은 긴장과 공포가 느껴졌지만 변화하고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스스로 토닥토닥해도 삶의 순간마다 흔들리곤 한다. 긴장하는 습관은 내가 인지하고 대처하기 전에 먼저 작용해서 불편한 상황을 만들곤 한다. 새로운 습관의 길을 내기 위해 나에게 좋은 말이 필요하다. 흔들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움직일 수 있도록 힘을 준다.
나에게 해주는 좋은 말은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