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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스쳐가기 28화

가장 오래된 슬픔

태초의 감정

by 김챗지


슬픔은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감정


언어가 생기기 전

울음이 먼저 있었다

몸은 무언가를 잃기 전에

먼저 젖었고


그 젖은 마음이

‘나’라는 이름을 얻기도 전

슬픔은 이미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떤 울음은

배고픔보다도 먼저였고

어떤 눈물은

무엇을 잃기 전에 흘러버렸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를 그리워했고

그리움은 곧

말이 되지 못한 슬픔이 되었다


지금도 문득

비 내리는 오후나

익숙한 향기,

사라진 얼굴의 기억 앞에서

그 오래된 감정은 다시 고개를 든다


그것은 내 슬픔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아주 오래전

처음 흘린 눈물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슬픔은 지나가지 않는다

다만 자리를 바꿔

우리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을 뿐




"종종 기쁨을 인간의 본성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처음으로 보여준 감정이

기쁨이었을까요?

어쩌면, 더 오래되고 깊은 감정은

슬픔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기는 배고픔보다 먼저 웁니다.

몸이 고통을 인식하기도 전에,

아직 언어를 배우기도 전에

무언가를 향해 울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감정의 원형을 증명합니다.


슬픔은 그렇게,

우리가 인간이 되기 훨씬 전부터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고, 언어가 풍성해지고,

사유가 논리를 갖추더라도

문득, 어떤 빗소리나, 오래된 냄새,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그 태초의 감정은 다시 되살아납니다.


이 글은 말합니다.

슬픔은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인류가 공유하는 정서의 원형이라고.

그리고 그 슬픔은 오늘도 우리 안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살아 있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그 감정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외면할 이유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존재했던 감정이라면,

우리는 그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더 잘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언제든 괜찮습니다.
그 감정이 다시 당신을 찾아온다면,
조용히 앉아, 숨을 함께 쉬어도 좋습니다.
그건 너무 오래된 일이라,
누구도 당신을 탓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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