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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Feb 09. 2023

고딩때는 뭘 먹어도 그렇게 맛이 좋더라

엄마가 숟가락을 들고 밥 좀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게 일상일 만큼 음식에 관심이 없던 아이였다. 군것질은 좋아했지만 밥은 왜 그렇게 맛이 없던지 식사 시간은 늘 괴로웠다. 먹는 게 없으니 살도 안 찌는 게 당연지사. 중학교 1학년 때 몸무게는 39에서 40킬로그램. 작은 키를 감안하더라도 정말 마른 몸이었다. 나는 평생 밥을 맛있게 먹는 사람은 못될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몸무게가 늘다가 고등학교 때 그야말로 식욕 폭발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자꾸자꾸 뭐가 먹고 싶었다. 허구한 날 매점에 드나들며 컵라면도 먹고 급식이 맛없을 때는 밖에 나가서 각종 음식을 사 먹었다. 야식도 빼놓으면 섭하지. 학업 스트레스가 식욕으로 이어진 것인지 2차 성장과 함께 호르몬 변화가 들이닥친 것인지 정확한 원인을 모른 채 열심히 먹어댔다. 입맛이 어찌나 좋은지. 엄마는 밥 좀 먹으라는 잔소리를 하다가 이제는 그만 좀 먹으라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했다. 키로 갈 때는 안 먹더니 살로 갈 때 되니까 잘도 먹는다면서.


그러게 말이다. 식욕 폭발의 시기가 거꾸로 됐다면 참 좋았을 텐데. 나라고 키는 안 크고 살만 찌고 싶었을 리 없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인생. 그때는 맛없고 지금은 맛있는데 뭘 어떡해. 날로 식욕이 증가할수록 몸무게도 느는 게 당연지사.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자꾸 굴러가는 몸으로 변신해갔다. 나름 다이어트를 해보겠다고 아침에 일어나서 친구와 운동장도 몇 바퀴 돌아보고 저녁에는 줄넘기도 해봤지만 살은 빠지지 않았다. 대학 가면 다 빠진다고 하니까 그냥 먹자. 그렇게 고등학생 시절에는 5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몸으로 통통함을 유지한 채 살았고 결국 57킬로그램까지 쪘다.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은 순간이었다. 대학생이 된다고 살이 저절로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추후에 알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른들의 말을 믿고 맘껏 먹었다.


역시 키 클 팔자는 못타고 났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굉장히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집착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딱 키가 커야 할 성장기에만 식욕이 없었다. 매일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게 무척이나 행복한 사람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아니야, 어차피 키는 유전이야. 많이 먹었더라도 안 컸을 거야. 그렇게 위로라도 해본다. 성형으로도 불가능한 게 바로 신장을 늘리는 것인데. 이러니 내가 운명론자가 안 되고 배기나? 작은 키가 될 운명이 아니라면 왜 성장기에는 그토록 밥이 맛없다가 성장판이 닫히고 나면서 꿀맛이 됐냐는 거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는 문제냔 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인생이라는 건 '될놈될'이 성립하는 운명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인생을 운명론에 기대면 마음이 참 편해지다 보니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내가 쫓는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피하고자 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운명은 개척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봐야 170cm 될 운명이 172cm 되는 정도로 아주 미세한 개척만 가능한 것은 아닐까. 살아온 날이 쌓여갈수록 자꾸 그렇게 믿어진다. 모든 것이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신점을 보고 책방 오픈에 반대하는 엄마를 쿨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작년 가을부터 부동산을 드나들며 발품을 팔고 로이텀 노트에 사업 아이디어를 비롯한 온갖 것들을 적어 내려가던 과거는 쿨하게 잊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점을 보러 가자고 한 사람은 나였다. 엄마가 반대할 빌미를 만들기 위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 것도 아니다. 나는 대체 무슨 연유로 느닷없이 신점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하필 그 자리에서 올해는 사업 같은 건 해봐야 망하기만 한다는 말을 듣고 왔는지 모르겠다. 그 말을 절대 허튼소리라고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 우리 엄마라는 것.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다.


책방은 접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결론짓지 않는다면 내가 왜 그날 신점이 보고 싶었는지 나를 설득할 방도가 없다. 그냥 그렇게 믿어보기로 했다. 안 그러면 나는 또 아플 것만 같다. 신점을 보고 와서 여러 가지 상념들이 떠다녔고 고민이 깊었는지 실제로 병이 났었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그렇게 믿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열망했으나 가지지 못한 것들을 못 견디게 아쉬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데에도 필요한 믿음이다. 내가 과거에 대한 지극한 아쉬움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견디는 방법이다. 그렇게 믿음으로써 마음이라도 기댈 수 있다면, 그냥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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