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봤던 엄마의 여러 가지 모습 중에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있다. 가만히 앉아 TV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집중하다가 또르르 눈물을 흘리는 엄마는 꽤 웃겼다. 어느 날은 엄마 뒤에 숨어서 '오! 이제 곧 울 타이밍이다' 눈물 촉이 감지되면 놀릴 생각에 막 신이 났다. 진짜 우나? 하면 여지없이 엄마는 눈물을 흘렸고 “우와앙 엄마 또 운다!” 동생과 함께 방방 뛰며 신이 나서 집안을 활개 쳤다. 저런 걸 보면서 우는 엄마가 신기했다. 엄마는 몰래 우는 법이 없었다. 우리가 아무리 놀려대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당당했다. 어른이 되는 건 하나도 슬프지 않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눈물이 흐르는 건가 보다. 얼핏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를 닮기 싫어도 지독하게 닮아버리는 게 딸의 운명인 건지 나 역시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감추기 어려운 어른이 됐다. 청출어람으로 엄마를 뛰어넘어 예능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질질 짠다. 최근에는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김혜자 배우님의 인터뷰를 보고 많이 울었다. 남편에 관한 질문에 입을 틀어막고 "남편 이야기하면 나 눈물 나" 하면서 울음을 참을 때 재작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남편 참 좋은 사람이에요" 조금 진정이 된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어느 날, 투병 중인 남편에게 나는 한문을 모르니 당신이 축의금, 부의금 봉투에 나 대신 적어줘야 한다는 말에 정말로 남편이 이~만큼 써주고 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 일화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에게 이름 석 자를 시작으로 필요한 단어를 직접 가르쳐주고 간 할아버지를 떠오르게 했다. 자신의 빈자리를 직감하고 남겨진 아내를 보살피고자 했던 그 마음이 어떤 것일지 감히 짐작이 되지 않는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족상을 치른 적이 없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게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뿐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알지 못했다. 조부모와의 관계성에 따라 슬픔의 크기는 천차만별일 텐데, 어린 시절부터 외할아버지와 가깝게 살았던 기억이 있어 충격과 슬픔이 꽤 컸다. 할아버지를 보냈던 기억이 떠오르자 김혜자 배우의 눈물에 더 공감했고 도저히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우는 어른들은 민망해서인지 "아휴, 나이 먹었나 봐. 주책이야." 간혹 이런 말을 덧붙인다. 나이가 들면 인체의 호르몬 변화로 눈물이 많아지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슬픈 일을 한 번 겪고 나니 단순히 신체적 변화 때문만은 아니란 걸 느꼈다. 드라마, 영화 속에서 발에 채게 나오는 장례식 장면도 외조부상을 치르고 난 후에는 매번 다르게 다가왔다. 전에는 그저 장례식 장면이네, 슬픈 장면이구나, 정도에서 그쳤는데 요즘엔 울지 않고는 넘기기가 어렵다. 비슷한 아픔을 겪은 친구에게도 짐작이 아닌 진짜 공감을 하게 됐다. 상대의 아픔에 내 경험이 투영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새롭게 알게 됐다.
물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겪어보지 않고도 상대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지만 그렇다해도 직접 경험과 똑같을 수는 없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결국에는 내가 경험해본 세계, 내가 겪어본 감정이어야 완전한 공감이 가능한 것 같다고. 그렇다 보니 나와 똑같은 일을 복사판으로 겪은 사람의 말에 더 위로받는다. 예전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힘들었을 때도 “야 원래 이별은 다 슬퍼" 오늘 낮에는 남자친구가 사랑한다는 말을 10번이나 했다며 자랑하던 친구의 위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년이... 니가 뭘 알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반대로 비슷한 시기에 이별하고 나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 친구의 말은 구구절절 공감이 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슬픔에 젖었을 때도 나보다 먼저 경험했던 친구의 따뜻한 한마디가 다친 마음을 쓰다듬어주었다.
이미 물리적으로는 충분히 나이 먹었음에도 어른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신하는 건, 경험의 폭이 넓어지면서 세계가 확장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그 경험을 통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나이 먹는 것과 비례해 경험의 가짓수가 차곡차곡 쌓이는 과정이 인생이다. 물론 그 안에는 내가 선택한 경험도 들어있겠지만 대체로 선택과 무관한 것들도 쌓여있다.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은 딱 하나다. 원하지 않아도 겪을 수밖에 없는 경험들이 내 앞에 줄지어 있다면, 이왕이면 슬픔보다는 기쁨에 가까운 경험이 많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 역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말 그대로 희망 사항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고 욕심을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