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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Feb 18. 2023

이별 노래인데 제목이 '유자차'라고요?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음악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주로 대중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고 그 음악들을 좋아했다. 어쩌면 음악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넓고 광범위한지 몰랐기 때문에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가수의 노래를 들었던 것이기도 하다. 아이돌 음악을 시작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도 따라 추다가 어느 순간에는 성시경, 이소라, 이적을 들었다.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창구는 TV나 라디오가 전부여서 취향의 발전도 한계가 있던 셈이다. 그저 미디어에서 틀어주는 음악을 듣고 그중에 좋은 노래를 골라 듣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렇게 2000년 초반의 나에게는 기껏해야 대중가요(구K-pop)가 음악 세계의 전부였다.


2000년 후반에 접어들었을 때, 친구의 추천으로 되게 요상하고 특이한 음악을 접하게 됐다.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내 방 침대에 편하게 누워 <유자차>라는 노래를 소개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상 내가 들어온 노래의 주제는 대체로 사랑 아니면 이별이었고 불량청소년에게 집에 가라는 서태지의 등장이 굉장히 파격적일 만큼 한국 음악시장은 조금 뻔한 노래가 많았다. 주로 그런 노래만 들어온 나에게, 지금 제목이 <유자차>인 노래가 있다고 말하는 거니? 겨울에 타 먹는 그 유자차 말이야? "야 무슨. 말도 안됑" 옅은 미소를 띠는 친구 때문에 더더욱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웬걸.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머 웬일이야. 심지어 가사에 '껍질'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다니! 유자차 만드는 내용을 가사로 썼잖아.


그때만 해도 유자차가 노래의 소재라는 게 생경했고 너무 생경한 나머지 웃기기까지 했다. 가사에 있는 유자차와 관련된 각종 단어를 보니 무슨 노래가 이럴 수 있는지 다소 충격적이었다. 한술 더 떠 가수 이름은 '브로콜리너마저'라는 것이다. 얘가 진짜 누굴 바보로 아나? 나를 웃기려고 작정했구나! 무릎을 탁 쳤다. 그렇게 깔깔 웃으며 장난처럼 브로콜리너마저를 알게 됐다. 나를 놀리지 말라는 엄포를 놓으면서 알게 된 노래. 그런데 신기하게도 너무 이상했는데 너무 중독성도 있었다. 아, 무슨 노래를 이런 거로 만들지? 하면서 거부감이 들었다가 어느 순간 빠져버린 것이다. 팀명마저 웃기던 인디밴드의 노래를 듣다 보니 흔히 들어오던 가요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에 매료됐다.


어느새 친구와 나란히 '브로콜리너마저' 콘서트까지 다녀왔고 '나를 함부로 대하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드라마 대사처럼 비웃었던 가수에게 도리어 푹 빠져버린 것이다. 내 음악 세계는 한 뼘 늘어났고, 취향의 확장은 더 넓은 확장을 거쳐 다른 인디밴드의 음악까지 손을 뻗게 됐다. 데이브레이크, 노리플라이, 정준일, 원모어찬스, 몽니, 에피톤 프로젝트, 소란, 십센치(지금은 인디밴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어반자카파(역시 대중가수가 됐지만) 등. 새롭고 좋은 노래들이 어디에 이렇게 숨어있던 건지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대체로 인디밴드의 음악은 소재가 새로웠고 팀명 또한 기존의 틀을 깨고 독특한 게 특징이었다.


유자차만큼 독특했던 소란의 <살빼지마요>는 다이어트의 고충을 담은 노래다. 심지어 이런 가사도 등장한다. '지난번 마지막으로 먹었던 게 양념이였는지 후라이드였는지' 놀랍게도 치킨을 가사에 썼다. 또 다른 소란의 노래 <리코타치즈샐러드>에는 '버터 갈릭 브레드, 쉬림프 파스타 알리오 올리오 ,에그 베네딕트, 스모크 살몬' 처럼 먹어본 적 없는 음식까지 속속 등장한다. 과연 새롭다.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라고 하는 애절하고 절절한 이별 노래를 듣다가 치킨과 리코타치즈 샐러드를 읊어대는 노래라니.


'십센치'의 음악도 매력적이다. 아메리카노가 좋다고 촐랑대는 것은 약과고 보다 덜 대중적인 <그게 아니고>라는 노래에는 무려 보일러가 등장한다. '보일러가 고장 나서 울지' 이런 가사를 십센치 이전에 본 적이 있는가. 흔하디흔한 이별이라는 소재로 만든 곡임에도 기존의 노래와는 완전히 달랐다. 다신 나 같은 사람 만나지 말라거나 좋은 사람을 사랑했다면 이별도 슬픈 게 아니라는 이전의 발라드에는 도저히 '보일러'가 등장할 틈이 없다. 같은 앨범에 있는 <죽겠네>는 '코를 골아도 듣기 좋아 냄새가 나도 향기로와' 라는 가사가 있다. 기존의 사랑 노래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코골이의 등장이다. 이게 진짜 무슨 일인가. 어쩌면 장난 같기도 한데 막상 들으면 절대 장난이 아닌 음악들. 나는 어느새 인디밴드의 광팬이 됐다. 파면 팔수록 전에 없던 신선함이 제목부터 가사까지 두루두루 박혀있다.


나에게 충격을 준 10년 전과 비교하면 인디밴드의 음악은 보다 더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나만 알고 싶은 혁오 밴드가 무한도전에 나왔을 때, 더 이상 나만 알 수 없는 밴드가 되어 슬퍼하던 친구가 있다. 나 역시 '십센치'로 먼저 매 맞은 적이 있어 그 허탈한 마음에 공감했다. 너무 좋아서 '호외요 호외~ 세상 사람들 이것 좀 보라니까요'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은 마음과 이 좋은 걸 함부로 알려주고 싶지 않은 양가감정을 너무 잘 안다. 한편으로는 좋은 건 아무리 꽁꽁 숨겨도 결국에는 진가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거라 생각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 사랑받기 충분한 음악들인데 나 혼자 숨겨두고 들으면 뭐 하겠어. 많이 듣는다고 노래가 닳는 것도 아닌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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