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살 무렵, 무리 중에 가장 먼저 유부녀가 된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결혼식 전후로 인간관계 싹 정리되더라" 씁쓸한 느낌보다는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처럼 건조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자신이 먼저 결혼식에 가주었는데도 내 차례가 되자 연락도 없이 오지 않은 친구가 있었다며 서운함을 내비쳤다. 청첩장을 건네주며 밥을 샀는데도 밥만 얻어먹고 아무 연락이 없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의외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축하해주고 싶다고 먼 길 와준 친구에게는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찌 됐든 마음속 애정도가 뒤죽박죽 순위를 다투다 재정립이 되는 기점이 결혼식인 건 맞는 듯하다.
사실 새로울 게 없는 말이기도 했다. 이미 숱하게 들어왔던 말이기도 하고.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꼭 신부의 입장에서만 결혼식으로 인연이 갈리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여전히 신부가 아닌 하객의 입장으로 결혼식을 바라본다. 언젠가 결혼식을 올리고 누군가를 초대할 상황이 올지도 불투명하다. 어쨌든 끊임없이 초대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저 말은 틀림없이 맞다.
청첩장을 띡! 받았을 때 귀신같이도 나의 레이더가 '기쁜 축하'와 '불쾌함'으로 극명하게 나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연락오는 친구는 다단계 아니면 결혼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몇 년 만에 연락해 온 친구가 결국 결혼식을 초대하는 거였다며 불쾌함을 드러내는 고민 글은 인터넷에만도 차고 넘쳤다. 나의 경우에는 연락이 뜸했던 친구가 결혼 소식을 전하려 연락했다는 사실 자체로 불쾌감이 들진 않았다.
서로의 삶을 통과하면서 바쁘고 멀어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나만의 기준 같은 게 있나 보다. 말로 다 표현하기에는 애매한 우정 지수라고나 할까. 어찌 됐든 우리가 쌓은 역사의 실체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청첩장'을 건네는 순간이라는 것은 틀림없이 사실이다. 상대가 나에게 내어준 마음과 시간이 얼마나 귀했는지, 그걸 내가 기억하는 한 아무리 오랜만에 온 연락이더라도 축하의 마음이 샘솟을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조금은 다른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누군가와 인연을 맺을 때, 그녀는 누구보다 잦은 연락으로 안부를 묻고 나를 챙겨주었다. 그런 애정이 정말 고마웠는데 알고 보니 곧 있을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의 마음은 그녀가 청첩장을 꺼내는 순간 짜게 식어버렸다. '어쩐지 엄청 잘해주더라니' 나이가 들면서 점점 상대의 호의에는 목적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불순한 의도를 감추고 다정하게 접근한 사람들을 겪다 보면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을 절대적 진리로 믿고 있는데 이건 인연을 맺을 때도 마찬가지다. 공짜로 얻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그게 사람이어도 하나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