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cool한 에어캐나다 승무원
캐나다에 간 건 순전히 "아조씨 사랑해여~" 때문이다. 비교적 비인기 여행지인 캐나다는 정말이지 '도깨비' 때문에 가게 됐다. 나의 찰떡 여행 메이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을엔 여기를 가야 한다며 미리부터 일정을 비워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면서 보여준 퀘벡의 풍경이 담긴 사진 한 장. 가을의 물이 든 퀘벡의 경치는 드라마를 보지 않은 나도 흔들 만큼 충분히 아름다웠다. 물론 '도깨비' 열풍이 아니었다면 생전 퀘벡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기나 했을까 싶다. 거기다 퀘벡까지 가는 길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직항편이 없어서 토론토로 입국한 후에 한 번 더 비행기를 타야 했다.
토론토는 퀘벡을 위한 거점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루 정도만 일정에 넣고 큰 감흥 없이 시내를 돌아다녔다. 퀘벡으로 넘어가는 날에도 여유 시간은 있었지만, 토론토를 구경하기보다 일찍 공항에 가는 것을 택했다. 탑승 시간을 한참 남기고 도착했더니 항공사 카운터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아마도 퀘벡행 승객 중에는 우리가 1등으로 수속을 밟는 듯하다. 여유롭고 좋았다. 짐도 미리 부쳐놓으니 양손이 가볍고 홀가분했다. 잠시 공항을 한 바퀴 돌아봤는데도 여전히 탑승 타임은 한참 남아있다. 남은 시간은 그저 앉아서 쉬기로 한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갈 테니. 게이트 앞 의자도 사람이 없으니 널널하고 여유롭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나 다름없는 퀘벡. 몇 시간 후면 우리는 곧 퀘벡으로 가게 된다.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탑승 타임이 가까워졌는데도 여전히 주변 분위기는 조용하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몰려야 정상인데 이상하리만큼 여유가 있다 싶었지만, 캐나다 사람들은 일찍 일찍 준비하는 스타일이 아닌가 보다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 탑승까지 20분쯤 남았을 때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된 낌새가 느껴졌고 '에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일어나 전광판을 찾았다.
별일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별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중간에 게이트가 변경된 모양이다. 아니, 이게, 무슨, 뭐 이런 일이. 황당한 나머지 화가 나려는데 지금은 그런 감정조차 사치다. 바뀐 게이트로 냅다 뛰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도대체 언제 바뀐 거야?' 따져 묻고 싶었지만, 일단은 비행기를 놓치지 않는 게 우선이다. 절박한 마음을 담아 헉헉거리면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멈추지 못하고 열심히 뛰었다.
그렇게 뒤도 안돌아보고 열심히 뛰었는데 도착하니 이미 문은 닫혀있다. 두 손을 모아 승무원에게 비행기표를 보여주며 창밖을 가리켰다. 제발 저 비행기를 탈 수 있게 해주세요.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고 통화하더니 곧바로 차가운 표정을 지을 뿐이다. "방법이 없어. 이미 문은 닫혔고 너네는 다음 비행기를 타야 해" 슈렉의 고양이 표정을 양껏 지어봐도 그런 거로 통할 리가 없었다. 간절한 태도로 사정하다가 그 방법이 통하지 않자 순간적으로 화가 난다. 무엇보다 체크인할 때 게이트가 바뀔 수도 있다는 안내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어차피 비행기는 눈앞에서 놓쳤고, 이판사판이다. 왜 사전에 그런 공지를 해주지 않았는지 따져 물었고 우리의 짐은 어떻게 되느냐고 또 따졌다.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쿨한 대응을 할 뿐이었다. "다음 비행기로 바꿔줄 테니까 다음 거 타~ 너희 짐도 안전히 보관할 테니 그때 가서 찾아" 우리는 한동안 허무한 표정으로 그 앞에 서 있었는데 그런 우리를 두고 비행기표 두 장을 건네준 뒤 쌩~ 하고 사라져버렸다.
방금 혹시 벽에 대고 이야기한 건가? 어이가 없는 나머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야,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어?" 황당해서 웃을 뿐이었다. 갑자기 국제 미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수많은 곳을 여행하면서도 비행기를 놓친 것은 처음이었다. 비단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을 뿐이지 여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을 마주하는 일은 필연적이다. 방법은 좀 더 기다렸다가 다음 비행기를 타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틀림없었기에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내 마음이 안정된 우리는 과자와 젤리를 사 왔고 하나씩 집어먹으면서 이 나라의 서비스 정신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문득 해외여행을 하면서 받았던 서비스에 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여행하면서 종종 고객을 왕으로 대하지 않는 그들의 서비스가 좋았다고 느꼈던 기억들 말이다. 유독 한국에서는 기사화된 갑질 사건이 많았기 때문인지 필요한 상품을 제공하고 그 이상의 것은 생략하는 서비스가 나는 참 좋았다. '한국은 이렇고 외국은 그렇다.' 모든 경우를 일반화 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겪은 한에서는 대개가 그랬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다가 유명한 현지 맛집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주문했던 음식과 다른 음식이 나왔을 때 직원에게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정말로 잘못 나온 것이 맞는지를 재차 확인했고 그렇다고 하니 쿨하게 음식을 가져가서 원래 요청했던 음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바꿔준다. 한국에서 봤던 '어머나 세상에, 고객님.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얼른 바꿔다 드릴게요.' 쩔쩔매는 태도 같은 건 없었다. 마치 '실수할 수도 있지 뭘, 금방 바꿔다 줄게! 오키?' 직원의 반응이 쿨하다 못해 추워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과 해외의 서비스가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은 종종 나에게 산뜻한 기운을 전해주었다. 고객이 최우선이라는 마인드가 빚어낸 갑질 문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무엇이 됐던 그 가게에서 제공하는 상품에 덧붙여 손님을 왕처럼 대하는 서비스가 꼭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고객과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저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고객이라는 이유로 갑질을 당연시하는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기업의 전략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필수조건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고객을 왕으로 대하는 서비스가 좋으면 그런 서비스만 제공하는 곳을 찾아다니면 될 일이다. 반대로 그런 서비스가 없다고 해서 직원을 불러내어 '서비스가 왜 이 모냥이냐' 하면서 역으로 갑질하는 게 정당화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충분히 황당했지만 '네가 기분 나쁘든 말든 내 알바 아냐~' 놀랍도록 쿨하게 넘기는 승무원의 태도에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막말로 '이런 서비스와 대처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럼 다음에는 이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승객이 비행기를 놓쳤다는 사실에 승무원이 저자세로 사과할 이유는 애초에 없는 것이다.
다음 비행기로 도착한 퀘벡에는 승무원의 말대로 미리 도착한 짐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금싸라기처럼 보관해주기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훔쳐 갈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성공할 만큼 허술하게 놓여있었다. 그래, 뭐 이 정도면 감사해야지. 이런 사소한 것에서 대우받으려는 심리 자체가 갑질 아니겠는가. 우리를 기다린 듯 얌전히 놓여있던 캐리어를 끌고 퀘벡 공항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에어캐나다의 잠재고객이다. 어느 날 비행기티켓을 검색하다가 합리적인 가격을 만난다면 기꺼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