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케치여행 Sep 14. 2015

계간지 현대 수필 수록 에세이

사랑 없이 사는 일
 
겨울이 왔다. 풀잎들은 가을에  스스로 키를 낮추었고 소멸의 순리를 따라 사라져 갈 것이고 하늘을 가리고 무성했던 나뭇잎들은 겨울의 냉정하게 차가운 하늘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바람은 작업실 옆을 수시로 지날 것이며 그 거친 바람 소리는 나에게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히드글리프를 불러대던 흐느낌의 소리를 연상케 해주리라. 가끔씩 발을 헛디뎌 부셔져가는 겨울을 보내는 늦가을의 낙엽과 함께 열린 작업실의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나에겐 반갑고도 반가운, 사람보다 더 소중한 손님이다.

 우울의 계절. 사뭇 감상적인 것이 더욱 유리한  나의 직업은 그림 그리는 일이다.
화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그림을 그리며 그 업으로 생활하는 나는 시야가 상당히 좁은 편이다. 그림이라는 필터를 통해 사람을 알았고 21살이 되면 꽃 같은 청춘의 마지막에 자살하리라 결심했던 지독한 사춘기를 겪었으며 한 소녀를 너무 좋아해 사랑의 편지를 글보다 그림으로 대신해 밤을 새웠던…….그런 생각들이 내세계의 전부였으니 지극히 편협하게 사회를 알아 버렸다.

 그 좁은 시야의 사고로 나의 행동은 서로를 비벼대며 서걱이는 통 굵은 갈대밭을 하루 온 종일 쏘다니거나 낯선 나라의 여행길, 유명 관광 포인트는 그것을 즐기는 분들에게 양보하고 길 잃기를 작정하며 골목길을 헤매곤 하였다. 골목에서 발견하는 나만이 볼 수 있는 보석 같은 아름다움을 찾아다니다가 낯선 외로움을 즐기며 지쳐 주저앉아 ‘나는 길을 잃어도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나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는 돌아 갈 길이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죠.’ 이런 말들을 중얼거리며 더욱 깊은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그리움이 변한 말이 그림이라고 했던가. 가을 세상의 색들은 무조건 깊다. 바로 다음의 한계절인 겨울의 색은 처연하다. 그 처연한 색들은 밝음에 대한 열망을 주고 그것은 희망과 연결되어 표현되어지는 역설은 희망으로 연결 되곤 한다. 그러므로 나는 겨울의 중심에서 그 지독한 우울의 늪에 가급적 깊이 들어가야 한다.

 이미지를 효과적인 소통의 방법으로 표현하기는 늘 어렵다. 심연의 바닥으로 가는 우울이 바닥을 차고 올라 나의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윤색할는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나름 나에겐 하나의 반성점이 있다. 순진과 순수의 구분에 대한 노력이 그것이다.
잠들면서 오늘 나의 생각을 순수라고 착각하지 않았는지 검증해 본다. 그것만이 나의 예술 세계를 딜레마에 빠지지 않게 할 것이라는 믿음. 진취적이지 못하고 나태한 사고의 밀물도 긍정적 우울을 이길 수 없다는 희망. 그런 믿음과 희망으로 우울의 어두운 그림자를 이끄는 일이 나에겐 너무나 익숙하다.
                                       2015.9.8.이두섭 artistart520@naver.com

매거진의 이전글 아사리.훗카이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