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아나고
우리는 틈만 나면 할매집으로 향했다. 매주 수요일에 진행되는 시 품평회가 있을 때뿐 아니라 시큼한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날 때는 어김없이 간판도 없는 할매집으로 향했다. 알루미늄 샤시로 된 거친 문을 열 때마다 드륵 끼익 드르륵 소리를 냈고 두어 차례 힘을 주어야만 열렸다. 닫을 때는 그보다 더 정교하게 문을 들었다 당겼다 해야 했다. 할매집은 골목 안에 있었는데 좁은 홀에는 다듬지 않은 8인용 목조 테이블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젓가락의 두들김으로 인한 상처를 입은 채로 길쭉하게 있었고 기다란 나무토막 몇 개로 대충 못질해서 만든 등받이 없는 의자가 양 쪽에 있었다. 구석에 4인용 테이블이 하나 더 있었는데 몰골은 마찬가지였다.
“할매! 우리 왔어예.” 할매는 시커먼 뿔테 돋보기안경을 쓰고 한결같은 펑퍼짐한 몸빼 패션에 대답도 없이 쳐다보고는 펴지지 않는 허리를 일으켜 느릿느릿 부엌으로 통하는 뒷문으로 나가버린다. “할매! 막걸리 하나 하고 아나고(붕장어) 하나 주이소.” 할매는 여전히 대답도 없다. 매번 똑같은 술에 안주라 주문을 하고, 받을 것도 없다. 우리는 두꺼운 비닐로 된 병에 담긴 밀 막걸리 한 병을 직접 가져왔다. 아직도 발효 중인지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허술한 비닐 뚜껑을 따고 다 찌그러진 양은 잔에 막걸리를 따른다. 비닐로 된 병이라 병의 몸통을 잡으면 넘쳐흐르기 때문에 손잡이가 달린 파란색 플라스틱으로 된 케이스에 넣어야 흘리지 않고 따를 수 있었다. 김치에 단무지를 안주 삼아 한 잔씩 비운다. 당시 밀 막걸리는 단 맛이 전혀 없고 시큼털털하고 탁 쏘는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요즘 나오는 쌀 막걸리뿐 아니라 대부분의 막걸리는 아스파탐이나 첨가물을 넣어 달큼하게 만들어 옛날 막걸리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첨가물을 넣지 않고 단 맛을 없앤 막걸리를 찾아 헤매다가 겨우 ‘이거다’ 하고 먹어 보면 역시 옛날 맛이 나지는 않았다. 요즘은 쌀 막걸리가 있지만 옛날에는 식량이 부족해 쌀로 막걸리를 빚는 게 불법이었다. 모두 밀 막걸리였다. 오히려 전통적인 쌀 막걸리의 맛을 보지 못하고 밀 막걸리를 처음 대하다 보니 밀 막걸리가 더 전통적인 추억의 맛이 되어버렸다. 아나고 회를 가져오는 할매에게 “할매 잘 있었능교?” 하면 “아니 어제 봐놓고는 뭘 잘 있었냐고 물어!” 하며 약간 숨이 찬 듯한 숨소리를 내면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서는 초장을 내어 오셨다. 할매는 근처에서 서울말을 쓰시는 유일한 분이셨다. 아! 우리 동기 중에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가 한 명 있었구나.
뼈 채로 잘게 썰어 물기를 쫙 뺀 아나고 회는 학생 신분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 맞게 싸고 양도 많았다. 막걸리 한잔하고 접시에 가득 담긴 회를 젓가락으로 가득 집어 초장을 듬뿍 찍어 먹는 그 맛은 정말 담백하고 쫄깃하고 뼈가 씹히면서 식감을 더해주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의 시문학 동아리는 항상 할매집에서 뒷풀이를 했다. 할매집의 좁은 홀의, 마찬가지로 삐걱거리는 뒷문을 열고 나가면 옛날 가정집의 작은 뜰이 나오고 좌측으로는 부엌이 있고 우측으로는 작은 골방이 하나 있었다. 우린 항상 그 골방에 모여 막걸리에 아나고 회에 파전을 먹고는 했다. 할매는 서울 여자였지만 무뚝뚝했고 수많은 주름살과 쳐진 피부에 가려진 얼굴에서 웃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가끔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항상 맘속으로 우리를 반긴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더운 여름철이면 할매는 부끄러움도 없이 남자들이 입는 소매 없는 난닝구(런닝 셔츠, 속옷) 하나만 걸치고 계실 때도 있었다. 막걸리에 취해 그날의 싯구절에 취해 비틀거리며 냄새나는 구식 화장실에 가다 보면 부엌에서 구부정하게 음식 장만하고 계시는 할매가 보였고 가끔 돌아가신 할매가 생각 나 축 늘어진 할매의 젖을 뒤에서 껴안으며 만지고는 냅다 도망가기도 했다. 볼 일 보고 다 잊은 듯이 돌아오다 보면 할매는 잔뜩 찌푸린 듯하기도 하고 살짝 웃기도 하는 듯한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시고는 “뭐하는 넘이야. 술 작작 쳐 먹고 일찍 집에 가!” 그러신다 매번. 못 들은 척 배시시 웃으며 “할매 막걸리 한 병 더 주이소” 하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다음날 오전 수업이 끝나면 우린 또 할매집으로 향한다. “할매, 회덮밥 두 그릇 주이소.” 자주 오니까 고마운 건지 아닌지, 자주 와도 반가운 건지 아닌지 모를 표정을 짓고는 말도 없이 부엌으로 가신다. 이미 회덮밥 먹으러 온 아는 학생들도 몇 있었다. 할매집에는 항상 아는 얼굴들만 있었다. 회덮밥에는 아나고는 물론 이름 모르는 회도 들어 있었다. 상추, 콩나물 등 야채에 참기름, 초장을 뿌려 비벼 먹는 맛은 또 잊을 수 없는 고소하면서도 매콤새콤달콤한 맛이었다. 희한하게도 해장이 되는 맛이었다. 깨끗하게 비우고는 “할매, 저녁에 또 오께예.” 하고는 할매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