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도 보통 자기 새끼가 생기면 금이야 옥이야 이뻐하고
손주 낳아도 힘들어서 절대 안 봐줄 거란 분들도 막상 손주가 생기면,
'손주가 이렇게 이쁜 줄 알았으면, 너보다 손주를 먼저 낳을걸 그랬다'며 아이를 안고 땅에 놓지를 않으신다.
매주 주말이면 우리 집 막내는 외할아버지 댁에 간다.
그런데 친구랑 놀다가 다리를 다쳐 깁스를 했고 4주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당연히 당분간은 할아버지 댁에 못 가는데, 알면서도 괜스레 고집을 부린다,
할아버지 동네에서 파는 삶은 문어를 먹겠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 점심을 차려주고 침울한 아이가 짠해서, '우리 디저트 뭐 먹을까?' 슬며시 물어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였다. 손녀가 걱정되어서 전화하셨나 보다.
전화를 받아보니 집 앞으로 나와서 문어를 받아가라는 말씀이었다.
평소 할아버지 댁에 가면 자주 먹었던 꿀떡에, 목 막히지 말라고 손녀가 좋아하는 포카리스웨트에, 직접 기르신 포도까지. 그리고 만 원짜리를 쥐어주며 꼭 막내에게 전해주라고..
곧 추석이라 찾아뵐 테니, 서로가 조금만 참으면 되는 것을.. 할아버지의 사랑은 그 잠깐도 기다리기 힘든가 보다. 왕복 1시간은 족히 되는 거리를, 단순히 문어를 주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오시는 걸 보니..
막내는 너무 감동이라고 했다. 한동안 기분이 붕붕 떠 있다.
나는 아빠의 이런 열심이 죄송하고 감사하면서도 너무 보기 좋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친정아빠는
'바빠서 바람도 못 필 사람이고,
깜깜할 때 나가서 깜깜할 때 들어오는 양반'이셨다.
그렇게 일만 하며 바쁘게 살아오신 분이..
마치 이제야 사랑하는 법을 배운 사람처럼
저렇게 사랑을 퍼붓고 표현하시는 걸 보는 것이..
내가 사랑받는 것처럼 배부르다.
아빠의 눈에 비친 나의 어릴 적 모습에
아빠의 못다 한 미안한 사랑을 덮어 오버랩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막내야 너는 아니?
저 사랑의 진짜 의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