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회색의 시대를 비추는 연민의 인간성(4.0)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을 눈을 통해 보게 되는 영화이다. <타인의 삶>에서 눈여겨 봐야 하는 것이 있다면 냉전 시대 동독의 비밀 경찰 '비즐러(울리히 뮈헤 분)'의 눈이다. 국가를 향한 애국심이 투철한 냉혈한인 비즐러는 국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무서울 정도로 올곧아 섬뜩하게 느껴지는 눈을 가지고 있다. 비즐러가 섬뜩하리만치 올곧은 눈을 뜬 채 비윤리적이고 비인권적인 심문을 당연하다는 듯 강의하는 장면은 소름이 돋는 것을 넘어 그의 신념에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용의자가 거짓말을 한다고 확신하는 비즐러의 눈은 심문자를 용의자가 아니라 배신자로 이미 확신하고 있어 비즐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그러니까 실제로 배신하지 않았더라도 배신을 방조 혹은 협조했다고 생각해 말하게 될 듯 하다. 관객은 눈을 통해 비즐러가 절대 흔들리지 않을 인물이라고 여기게 된다.
출처. 왓챠피디아
그런 비즐러의 눈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흔들린 것은 작가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흐 분)'과 배우 '크리스타(마르티나 게덱 분)'의 공연을 볼 때이다.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것은 국가를 향한 투철한 애국심으로 흔들림이 없는 냉혈한 비즐러가 드라이만을 감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과정이다. 드라이만을 친정부 성향의 예술가로 판단하는 상관 '그로비츠(울리히 터커 분)'에게 비즐러는 연극 공연을 보고 드라이만을 멀리서 관찰하다 그가 수상하다고 말한다. 연극 공연 중 드라이만의 눈이 주연인 크리스타를 보고, 공연이 끝난 후 드라이만과 크리스타가 포옹하는 것을 보고 흔들렸음을 기억하자. 앞서 국가라는 거대한 신념에 모든 것을 바친 냉혈한 비즐러에게 호감, 질투와 같은 감정적인 동요가 발생했다는 것은 우스우면서도 비즐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한다.
출처. 왓챠피디아
크리스타를 향한 호감과 드라이만을 향한 질투에서 시작한 비즐러의 감정적 동요는 두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단초가 된다. 냉전이라는 시대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예술을 억압하는 동독 사회에서 드라이만은 진실을 탐구하고 밝히는 예술가의 삶과 진실을 외면하고 정권에 빌붙어 살아가야 하는 범부의 삶에서 갈등한다. 크리스타도 진실을 몸으로 표현하는 배우의 삶과 문화부 장관 '헴프(토마스 티메 분)'에게 이른바 스폰 관계를 강요 받고 협박 당하는 여성의 삶에서 갈등한다. 두 사람을 도청하며 감시하면서 비즐러는 강한 신념으로 믿고 있던 국가가 사실 권력층이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시대를 수단으로 유지하고 있는 허상이라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호감과 질투라는, 어떻게 보면 어린애와 같은 단순한 감정적 동요에서 시작한 감시가 사실은 권력층의 탐욕을 위한 앞잡이의 행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타인의 삶>은 인간 선의 가능성을 기억하게 하는 영화이다. 비즐러의 깨달음은 드라이만이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를 연주할 때 눈물로 이어진다.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비즐러의 눈물은 자신의 신념이 무너진 것에 대한 슬픔의 눈물이라기 보다 자기 안의 감정적 동요를 느낀 비즐러가 처음으로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해 흘리는 기쁨의 눈물처럼 보인다. 비즐러가 선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관객은 존재적으로 비즐러가 선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비즐러를 심정적으로 온전히 용서하는 것과 별개로 그 역시 선할 수 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는 없다. 자신을 도청했으나 동시에 도청 경과와 사실을 허위로 작성해 자신을 보호한 비즐러를 위해 소설을 쓴 드라이만과 그런 드라이만의 소설을 구입하며 선물로 포장하겠냐는 점원의 물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니오. 이 책은 나를 위한 겁니다."라 답하는 비즐러의 모습은 선의 가능성을 넘어 선이 이어지는 현실을 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