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zetto Dec 12. 2024

본인 출연, 제리 단상

명동. CGV. 본인 출연, 제리.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인생을 잃은 이의 해학만큼 애달픈 코미디가 있을까(4.0)


무한도전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안타까움과 웃음이 동시에 터져나온 영화이다. 『무한도전』 "나름 가수다" 에피소드 중 하하님의 「키 작은 꼬마 이야기를」 「키 큰 노총각 이야기」로 편곡 및 개사한 정준하님의 중간 평가 무대에서 정형돈님은 사생활 팔아서 그 정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어딨냐는 호평을 남긴 바 있다. 뒤이어 노홍철님은 무대를 보며 느낀 큰 감동보다 더 크게 자신에게 떠오른 생각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라고 남긴 바 있다. 성별 결혼적령기에 개인적·사회적 인식이 남다른 한국에서 정준하님은 당시 마흔을 넘긴 나이로 남성치고도 결혼이 늦은 노총각이라는 캐릭터로 프로그램에 임하고 있었다. 정준하님은 노총각 캐릭터로 꽤나 오랫동안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정형돈님과 노홍철님도 그런 정준하님을 오랜 시간 곁에서 보고 있었다. 시간의 매몰과 리얼버라이어티라는 『무한도전』의 장르를 생각해보면 정준하님의 노총각이라는 캐릭터나 정형돈님과 노홍철님의 반응은 단순히 방송을 위한 캐릭터나 반응이 아니다. 웃음과 연결되는 예능의 특성상, 그리고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성들의 도전이라는 틀을 내세운 『무한도전』의 특성상 두 사람의 반응은 거칠긴 해도 정준하님의 퍼포먼스에 느낀 깊은 감동을 웃음으로 승화한 것이다. 어떤 퍼포먼스가 무대 위 퍼포먼스가 아니라 현실로 침투해 둘 사이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 때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에너지는 어떤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에너지이며 그러한 에너지에 대한 관객의 반응 역시 복잡할 것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본인 출연, 제리>는 대만 출신 화교이자 은퇴한 70대 노인인 '제리(제리 C. 슈 본인 분)'가 평생 노동해 번 전 재산을 국제 보이스피싱 사기단에 의해 날리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술한 『무한도전』의 예와 비슷하게 영화는 시작부터 "실화에 기반했다",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아마도 실화일" 등으로 영화와 현실 사이 경계를 흔들어놓는다. 영화의 제리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서 실화이지만 실화가 아닌 것이 아니라 인지적으로 관객을 영화와 현실 사이 어딘가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관객을 영화와 현실 사이 경계에 위치시키는 시작은 노인 피싱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라는 공익 목적이 강한 제리의 이야기를 해학이 담긴 코미디로 바꾼다. 국제 금융 범죄의 공범으로 조사를 받을 수도 있으며 그 경우 본국인 중국으로 소환될 수 있다는 말로 시작해 자신의 전 재산을 차례로 가상 계좌로 송금해야 한다는 범죄 조직의 말에 제리가 속는 과정 중 눈 여겨봐야 하는 것은 제리가 소환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과 자신을 비밀 요원으로 생각하며 행동했다는 것이다. 제리의 모습은 대만 출신에 40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고 있었음에도 제리가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이민자에 불과하다는 점, 은퇴한 노인으로서 비밀 요원이라는 인식이 그에게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주고 있다는 점 등을 떠오르게 한다. 다르게 말하면 제리의 행동은 분명 웃음을 유발하지만 노인이자 이민자라는 미국 사회에서 그의 위치성을 깨닫게 해 안타까움도 함께 유발한다.


젊은 시절 크리스마스 퍼포먼스를 짤 정도로 열정이 가득했던 제리는 그의 마지막 인생 이야기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운다. 그 열정이 끝나고 제리는 40년을 열심히 일했음에도 40년 전 미국에 들어올 때와 똑같이 트렁크 2개를 가지고 대만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영화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쓸쓸하게 트렁크를 끌며 대만으로 돌아가는 제리의 등 뒤로 이혼한 아내는 영화의 마지막에 제리가 다른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나오면 좋겠다고 말한다. 재결합하면 어떻냐는 물음에 아내는 자기는 안 된다고 답하며 화통하게 웃는다. 제리 본인의 실제 경험이자 영화로 재구성된 제리의 이야기는 현실의 제리와 영화 속 제리를 구분하면서도 구분하지 않는다. 이는 영화에 출연한 제리의 가족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아내의 말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생각까지 해본다면 영화의 해학성은 더욱 커진다. 현실과 영화가 모호하게 걸쳐져 있는 것에서 오는 해학으로 자신과 같은 범죄에 노인들이 노출되지 않길 바라는 제리의 바람은 진실되게 다가온다. 인생을 팔아서 감동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한 결단과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에 <본인 출연, 제리>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코미디로 삶을 직시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