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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과잉과 감정이입 사이에서 줄타기(3.0)
관객에게 과도한 배려를 보여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희석된 듯한 영화이다. 영화는 한국 K-Pop 산업의 이면을 은퇴한 3명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인 '수민(최성은 분)', '사랑(하서윤 분)', '태희(현우석 분)'을 통해 엿보게 한다. K-컬쳐가 세계의 문화적 흐름을 주도하는 시대에서 K-Pop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애초에 한류가 한국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한국 드라마로 시작했으나 드라마와 비교해 노래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그만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던 것은 한국 아이돌 산업이 치열한 경쟁으로 작동했기에 가능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팬들 사이에서 수많은 아이돌 그룹의 등급을 나누는 것은 지금까지의 아이돌 산업이 산업 종사자이자 상품인 아이돌 그룹 간 경쟁으로 가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더 많은 인기와 관심을 받는 아이돌이 그만큼 더 많은 소비자 그러니까 팬을 거느리게 되고 그것이 곧 엔터테인먼트사의 수입이 된다는 산업 구조에서 아이돌 그룹은 계속해서 살인적인 스케쥴과 삶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인기 아이돌이 되었을 때 얻게 되는 부와 명예를 생각해보면 그정도는 견뎌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문제시되고 있는, 점점 낮아지는 데뷔 아이돌 멤버들의 나이에서 알 수 있듯 살인적인 삶을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들에게 강요해 그러한 삶 자체를 내재화시키는 것이 정당할리가 없다. 그럼에도 어떤 한 인간을 자본을 투자해 만들어내는 상품으로 보는 것이 당연한 이 산업에서 직·간접적인 가해자임이 분명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아이돌을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인식할 뿐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영화 속 수민, 사랑, 태희 모두 그러한 아이돌 산업에서 은퇴했으나 여전히 산업을 체화하고 있기에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다. 고등학생 때 가보지 못한 수학 여행을 위해 온 제주도에서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는 고작 98만원 밖에 안 되는 상황. 심지어 그 중 94만원을 합의금으로 줘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그저 더 큰 갈등이 없길 바라며 어떻게든 넘어가는 것을 바라는 모습은 아이돌 산업 현장에서 그들이 겪은 위기 대처 혹은 해결 방법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자본이 투입된 상품인 그들에게 갈등 상황에서 투자한 엔터테인먼트사 임직원이든, 자기 그룹 혹은 타 그룹 팬이든, 방송 출연 기회를 쥐고 있는 방송사 임직원이든 갑이 되는 일은 없다. 그들은 아직 인기가 없고 제대로 팔리지 못한 상품이기에.
그렇기에 이해가 안 된다는 '귤밭 아저씨(홍상표 분)'의 말처럼 세 사람의 모습은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비정상의 모습이다. 이제 겨우 스물을 갓 넘긴 젊은 나이임에도 은퇴했다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아저씨를 아저씨나 사장님도 아닌 실장님이라 애매하게 지칭한다. 수민의 경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반드시 해내지 못하면 곧 실패라는 강박 속에서 식사하면 구토를 하는 거식증 증상이 있고 자신의 몸 상태는 신경도 안 쓴 채 일을 하다 쓰러진다. 사랑은 같은 그룹 멤버의 자살과 살인적인 스케쥴로 자해, 우울, 환청 등의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희 역시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타인과 눈이 마주치면 웃고 보며 그룹은 해체했음에도 잔여 계약 기간으로 여전히 엔터테인먼트사에 묶여 있고 타인의 카드빚 3천만원을 대신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이처럼 영화는 아이돌 산업의 화려한 전면으로 가려진 이면을 세 사람을 통해 보여주면서 아이돌 산업의 이면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여전히 산업의 논리를 체화한 채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모르는 세 사람에게 '소윤(강채윤 분)'을 통해 세 사람에게 조건 없이 선의를 베풀며 사랑으로 품어줄 이들이 있으니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다고, 몰라도 괜찮고 그저 계속 살아가면 된다고 위로한다. 특히 벗어나려는 몸부림과 위로의 과정을 거쳐 정신적·신체적으로 가장 연약하게 보였던 사랑이 이제는 힘을 낼 시간이라고 계속 살아가자고 세 사람의 다짐을 가장 먼저 발화하는 장면은 흔하지만 효과적인 연출이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힘을 낼 시간>은 반드시 낙오자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럼에도 그들에 대한 아무런 안전 장치가 없는 아이돌 산업의 이면을 떠오르게 하면서 낙오한 이들에게 감정적으로 가장 최선의 위로를 전하는, K-컬쳐가 문화의 메인스트림으로 떠오른 지금 시점에 가장 알맞은 영화일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의 시작부터 배경으로 나오는 수민과 태희의 나레이션이 관객에 대한 지나친 배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은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자신들의 처지와 감정을 나레이션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아이돌 산업에 관심이 없을 수도 혹은 산업의 이면에 대해서 생각한 적 없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인물들에게 감정이입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다만 그러한 나레이션으로 영화의 시작만이 아니라 중간중간 계속해서 자신들의 상황이나 느낀 감정을 설명할 때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독백 혹은 해설을 읽는 듯하다.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도 읽는 행위로 볼 수 있는 것은 맞으나 <힘을 낼 시간>에서 관객은 주체적으로 인물 개개인이나 인물들의 행위, 관계, 상황 등을 해석하며 보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어떤 특정 면만을 관객에게 강요한다는 점에서 관객은 영화를 읽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읽는 것을 듣게 된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강박적인 나레이션 설명은 그만큼 관객이 인물들을 곡해하거나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제작자의 애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민, 사랑, 태희는 아이돌 산업 현장에서 오랜 기간 치열한 경쟁을 체화하고 소중한 사람의 자살을 직접 겪은 인물들이기에 제작자의 애정은 다른 의미에서 관객에게 또 다른 감정적 정동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들에 대한 관객의 곡해나 오해는 분명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이들에게 폭력일테니 말이다. 그러한 점에서 전술했듯 아이돌 산업에 관심이 없거나 그 이면을 생각하지 않을 관객들에게 제작자의 애정으로도 읽힐 <힘을 낼 시간>의 나레이션 활용은 더욱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만큼 인물들이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러한 인물들에게 관객이 충분히 공감하며 함께 위로할 것이라는 믿음, 즉 영화 자체에 대한 믿음이 스스로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가치는 분명하다. 애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이돌 산업의 이면을 깊이 이해해 이를 인물로 형상화해 그들과 관객을 연결한다. 그들 주변에 항상 을이 되어야 하는 갑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선의로만 혹은 애정으로만 대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로 감정적인 연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영화를 준비하면서 어떤 노력을 했을지가 느껴진다. 그것만 해도 이 영화는 충분히 위로가 되는 영화이다. 유난히 추운 겨울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순수한 선의와 애정을 느끼게 하는 영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