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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Nov 06. 2024

그녀의 등장

1화

어색한 공기가 교실을 채웠다. 별 볼 것도 없는 휴대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사람,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교실 곳곳을 살펴보다 이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 미리 나누어준 교재를 들춰보다 이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가득이었. 조교 역할을 맡은 민재 '요즘 애들 도통 스몰토크를 안 하려 든다니까. 이번 클래스도 어쩔 수 없네.'라고 생각던 차에 창가 쪽에서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저는 이지수라고 해요, 아주 운이 좋게도 4학년 2학기에 여기 합격했어요. 면접 터디 같이한 선배들이 정말 훌륭하셨는데 거기서 연습한 질문이 면접에 딱 나왔거든요."

 자리에 앉은 사람은 "아, 네." 하며 그다지 관심 없다는 분위기를 풍겼지만 지수는 눈치 없이, 아니 눈치를 채고도 그 분위기를 꼭 바꾸어 보겠다는 듯이 "혹시 둘째 날에 면접 보시지 않으셨어요? 저도 둘째 날에 면접 봤는데 그때 뵌 거 같아서요. 유독 스마트해 보이셔서 기억이 나요." 하며 말을 걸었다. 옆 동료는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네, 맞아요, 둘째 날 비가 온 바람에 구두가 젖어서 찝찝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네요." 하고 대화를 이어 주었다. 지수네 책상에서 대화가 이어지자 주위 사람들도 하나둘씩 말문을 열며 옆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고, 조금 지나자 교실 곳곳에서 작은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민재는 간만에 활기찬 분위로 시작하는 클래스를 맡아 본인의 역할이 하나 줄어듦에 만족감을 느꼈다.


연수원 첫날은 시간표에 따라 신입사원으로서 익혀야 할 기본자세에서부터 직장교양, 공통직무 분야까지 강의 이어. 첫날은 서로 적응하는 시간으로서 주로 강의식 수업이 주를 이루었고, 이삼일 후부터본격적인 팀별 토론 수업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지수는 어느 수업이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강사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에 추가 질문을 하였고 자연스레 강의 수업도 토론 수업으로 바뀌어 갔다. 다른 클래스는 토론 수업조차도 인위적인 분위기에서 순서대로 돌아가며 의견을 내놓는 수준에 그쳤는데, 이 클래스는 서로 토론하고 있는다는 자각도 못할 정도로 편안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특히 외부강사가 아닌 회사 선배들이 진행하는 강의에서는 실제 회의실에서 오가는 내용보다 더 실용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이미 부장급인 강사되려 신입사원들의 토론 과정을 사무실 직원들에게 보여주고 은 마음이었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조교 민재는 강의를 마친 회사 선배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이번 클래스는 유독 활기차네요. 이지수라는 직원이 분위기를 잘 이끌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너무 튀지는 않고."

"본직접 좋은 의견을 내려고 욕심내지 않고 클래스 전체 좋은 의견을 만들내게 하는 능력이 있더라고요.  정답을 기보다는 우리가 정답을 함께 찾아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거죠. 쉬운 게 아닌데, 참."

 "저런 직원이 밑에 있으면 든든하겠요. 모르는 건 가르면 되는데, 저런 능력은 사실 10년 차도 못 가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민재는 깐깐하기로 유명한 유부장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이번 기수에 청난 인재가 등장한 모양이라생각했다.


신입사원들단란한 단합 밤을 보내고 있었다. 다들 술 한 잔씩 들어가자 수가 늘었는데 그 시끄러운 무리 한가운데는 지수가 있었다.

"맥주는 탄산 때문에   겠더라구요. 저는 소주로 마실게요."

지수가 앉은 테이블 초록병이 가득 쌓여갔다. 지수는 려한 이목구비 때문에 눈에 띌 수밖에 없었는데 털털한 취향 때문인지 남녀모두 부담 없이 다가왔다. 남자 직원들은 지수에게 애인이 있는지 알아내려고 지수 곁을 기웃거렸고, 여자 직원들은 지수 친해지려고 지수 곁을 맴돌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 사람들은 점점 얼굴색이 빨개지는데 지수만 처음 들어온 모습 그대로 말간 채였다.

"저희 모두 동기이지만, 사석에서는 언니라고 불러도 되겠죠? 미진 언니, 저는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요."

"아요. 그래도 회사에 미진 씨라고 불러야 할 예요. 무실에서 친목 티내면 선배들이 싫어한대요. 지수 씨로 할게요. 이게 편해서."

"그럼 언니는 편하신 대로 불러주세요. 언니, 반지 너무 예뻐요. 혹시 커플링이에요?"

"맞아요. 대학생 때부터 쭉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랑 맞춘 거예요."

"언니 남친있다고 하면 실망하는 남자들 진짜 많을 거예요. 언니, 우리 이제 방에 가서 둘이서 수다 떨까요?"

"좋아요, 난 밖에서 전화 한 통만 하고 갈게요."

"언니, 남친이랑 하실 거면 방에서 통화하셔도 돼요. 제가 먼저 씻고 있을게요."

"그럼 그럴까요?"

룸메이트인 지수와 미진이 떠나자 남은 사람들도 하나둘씩 숙소로 돌아갔고 술자리도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첫날이라 그런지 다들 무리하지는 않 것 같았다.


"야, 저 지수라는 애, 괜찮지 않냐? 몸매가 딱 니가 좋아하는 여리여리 슬렌더잖아. 난 물론 골져스 한 인혜가 더 좋지만."

"당연히 남자친구 있지 않겠어? 저 정도 외모에 우리 회사에 올 정도면 공부도 잘했을 텐데. 한눈에 좋은 집안에서 잘 자란 티가 나잖아."

"자기소개하냐?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잘 큰 최명호 씨야. 너도 취업준비하느라 여자엔 눈길도 안 줬잖아. 지수 씨도 그랬을 수 있지. 이젠 취업도 했으니 좋은 인연 좀 찾아보라고."

"고맙지만 걱정은 넣어두셔. 내가 알아서 해."

"짜식, 좋으면서 그런다. 아까도 보니까 그 여자 쪽만 계속 쳐다보고 있더만."

"저 직원이 내 앞자리라 그렇지. 난 수업 들으려고 강사님 쳐다본 거거든?"

"강사님도 보고 예쁜 지수 얼굴도 보고 그런 거겠지, 뭐."

"너 다른 사람들 앞에서 헛소리하지 마라."

 

고등학생 부터 친구이던 명호와 재식은 회사까지 같이 들어며 인연을 이어갔다. 대학교는 물론 군대까지 동반 입대하며 서로 모르는 게 없는 사이였다. 그러다 보니 한눈에 재식에게 속마음을 들켜버렸지만 문제는 지수에게 남자친구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었다. 명호 말고도 클래스에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방금까지 옆 테이블에 앉았던 직원들도 지수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다 갔다. 물론 다들 술이 깨고 나면 회사에 적응하고 연수 과정을 잘 따라가 위해 서로 견제하게 될 테지만 말이다. 일견 화기애애해 보이는 연수원이지만 사실은 여기서 지낸 결과근무할 부서가 정해지게 된다는 건 다른 회사에 먼저 들어간 친구들에게서 들었다. 합격의 기쁨에 겨워 연수원에서 정신줄 놓고 놀기만 하면 대책 없는 놈으로 낙인찍혀 어디 한직으로 발령이 난다는 것이다. 강사 현직 간부들이 섞여 있어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면 잘 나가는 부서에 데려갈 수도 있다. 물론 힘들게 합격했으니 이제 편할 데로 살겠다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명호 자신은 이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게 많기에 처음부터 헛발질하지 않고 잘 나가는 부서에서 제대로 일을 배우고 싶었다.

'이제 시작이다. 잘 해야지 물론.'

명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음 주 현장학습이 기대되어 설레었다.


 - 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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