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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먹는여우랄라 Nov 13. 2023

'와락'


‘와락’


부사

1. 갑자기 행동하는 모양.

와락 껴안다.



2. 어떤 감정이나 생각 따위가 갑자기 솟구치거나 떠오르는 모양.

와락 울음을 터뜨리다.






어떤 단어는 듣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심장에서 목구멍까지 ‘훅’하고 올라오는 단어가 있다. 내게는 바로 이 단어가 그렇다.

나는 이 단어를 여러 가지 의미에서 좋아한다.



몇 해전 정혜신 박사의 책을 읽다가 그녀가 운영하는 쉼터의 이름이 ‘와락’이라고 소개되었을 때도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사람들을 안아주는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졌었다. 이때의 ‘와락’은 상대의 마음을 격하게 공감하고 수용해 주는 의미를 내포한다.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던 마음들이 그녀에게서 격하게 수용됐을 걸 생각하면 마치 내 감정이 그런 대우를 받듯 뜨거워진다.



두 번째는 네이버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듯이 이 단어에 ‘갑자기’ 이루어진다는 면에서 좋다. 아마도 내가 가장 선호하는 의미일 것이다. 즉, 상대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혹은 뜻밖에 이루어지는 행동이며 감정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렇듯 뜻밖에 이루어지는 행동이 달가울 때가 있다. 이는 때로 즉흥적인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계산하지 않거나 준비하지 않은 것’ 혹은 ‘예상치 못한 행동’ 일 때를 의미한다. 이는 내게 그 행동이 평소에 깊이 가지고 있던 마음이나 밑바닥에 오래 깔려있는 감정이라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단어를 들을 때 ‘훅’하고 감정이 올라오듯 ‘와락’은 오래 품고 있던 마음이나 감정을 한순간 ‘툭’하고 터뜨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 ‘와락’이 좋다. 평소 마음이 행해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내 성격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다. ‘와락’은 가진 감정이나 생각을 조금은 격하게, 조금은 더 찐하게 표현하는 것이기에 좋다.

나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나를 아는 다른 이들은 외향형인 내가 밝게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감정도 잘 드러내는 줄 아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유형의 성격이라 감정에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그런 내가 순간순간 내 마음을 터트릴 때가 있는데 그것이 진한 포옹이거나 가끔 뜬금없이 ‘보고 싶다’‘사랑한다’고 날리는 문자 메시지다. 행동버전으로 번역하자면, ‘와락’에 해당하는 문자인 것이다.



그날 그녀는 나를 ‘와락’ 끌어안더니 마치 아이를 들어 올려 얼르듯 나를 들고 통통 뛰었다. 나는 조금 수줍었나 보다. 그저 그이에게 몸을 맡긴 채 마냥 웃고만 있었으니.

그녀와 함께 온 동료는 우리의 격한 포옹에 놀라움과 흐뭇함을 담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와 한 차례 세리머니와 같은 만남의 환호를 나누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는데 방금 내게 보낸 환영의 인사가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곧 또 다른 이의 ‘와락’이 이어졌다. 길 위에서 그녀와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데, 여운이 남는다. 그날 하루는 그들이 남겨준 온기로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날, 그들의 ‘와락’은 조금 다른 의미로 좋았다.

둘 다 평소 좋아하는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기에 학창 시절 친구들처럼 속내를 깊이 나누지 못했고, 같은 아파트이거나 근거리에 사는 이들이 아니기에 공유된 시간도 많지 않았다. 어쩌면 만나지 못한 채 시간이 길게 지나게 된다면 쉬이 다시 연락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는 그런 관계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길을 걸으며 그들이 내게 보여준 ‘와락’의 의미를 생각했다. 한 편으론 그들이 내게 전해준 온기가 몸에 남아 있어 마음이 따뜻해져서이기도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좋았다. 깊은 속을 나누지 못했지만, 그날의 온기는 ‘마음의 확인이 아닐까?’라고. 나의 마음과 그들의 마음이 같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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