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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hatehate Feb 06. 2023

심심한 인생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

<영화광> 워커 퍼시

*22년에 쓴 글


새해에는 늘상 그렇듯 작년과는 다른 올해를 다짐하게 된다. 다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걸 질리도록 경험해왔으면서도 1월 1일이 가진 망각과 환상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매년 어느정도(180도는 바라지도 않는다) 달라진 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다행인(?) 점은, 치기어린 시절의 허무맹랑한 새해 목표 같은 건 이제 세우지 않는다. 안 이룰 걸 알기 때문도 있지만,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이 원대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해가 끝나가는 즈음에 올해는 어떻게 살았는지 되돌아보면 막상 크게 이룬 것은 없어 보이는데, 그 감정이 실은 충실하지 못한 매일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루를 충실히 살아낸다는 건 어렵다. 열심히 일한 날은 나에게 여유를 주지 못한 것 같아 괴롭고, 좋아하는 산책과 멍 때리기로 하루를 보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아 괴롭다. 이건 이대로 저건 저대로 그저 힘들다. 그리고 슬픈 사실은, 이러한 고민과 걱정만 하면서 2022년의 첫 10일을 보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워커 퍼시의 <영화광>은 큰 위로가 됐다. 제목만 보자면 영화애호가의 끝없는 영화관람기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작품의 뿌리는 영화에서 벗어나 있고, 주인공은 극중에서 자주 극장에 가지만 전후 미국 기준으로 일주일에 몇 번씩 영화를 보러 가는 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는 작가 폴 엘리의 후기로 봐서 ‘영화광’이라고 할 정도도 아닌 듯 하다.

1916년에 태어나 의사가 된 <영화광>의 저자 워커 퍼시는 환자를 돌보다 결핵에 걸리고, 그 때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게 된다. 그리고 마흔네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데뷔작 <영화광>을 발표, 1년 뒤에 전미도서상을 수상한다. 2005년에는 <타임>지에서 1923년부터 2005년까지 발표된 최고의 영어 소설 100권 중 하나로 꼽았다고도 한다.

그의 어린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열세 살 때 아버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2년 뒤에는 어머니마저 자살로 의심되는 자동차 사고로 숨진다. 그 후 동생들과 함께 삼촌의 손에 자라게 된다. 작가의 배경을 안 후 책을 읽으면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극중 주인공인 빙크스 볼링 역시 어릴 적 형의 죽음을 경험하고 그 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는다. 어머니는 떠나 재혼하고, 그는 고모와 함께 지내게 된다. 다소 잘 맞지 않았던 고모와 오랜 시간 지내다 결국 떨어져 살게 되지만, 이렇다할 의욕은 딱히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염세주의자나 비관주의자는 아니다. 주식 중개인으로 일하며 비서로 들어오는 여자들과 가벼운 연애를 즐기는 그는 적당히 생기 없고 적당히 세상과 거리 두며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뛰어난 탐색자다. 눈 앞에 보이는 현상과 보이지 않는 현상들에 몰두하고 경이와 수수께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관찰자.


나는 실험실에서 여름 오후의 영향을 유별나게 받고 말았다. 8월의 햇살이 커다랗고 먼지 낀 채광창에 쏟아져 내려 방 안을 노란 창살 모양으로 가로질렀다. 낡은 건물은 더위 속에서 똑딱똑딱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밖에서는 학생들이 터치풋볼을 하면서 내는 여름날의 외침이 들려왔다. (…) 나는 내리 몇 분을 의자에 앉아 티끌이 햇살 속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p.73)”


탐색자는 외롭다. 탐색의 시간을 타인에게서 이해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빙크스는 딱히 이해 받고자 하진 않는다. 오히려 타인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그렇게 주인공은 내면으로 침잠하지 않고 외부로 그 마음의 방향을 돌린다. 그래서일까. 현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공감할 주인공의 시선의 길을 읽어서일까. 글 속에서 자꾸만 내 모습이 비쳤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공상이나 잡념의 시간들,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시간들. 이 모든 시간들을 (나와 달리) 그는 즐기고 있었다.

책의 내용은 별것이 없다. 낙관과 비관 사이, 똑똑한 듯하면서 어딘가 허술하고 적당한 유머를 지닌 빙크스의 특별할 바 없는 일상.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탐색. 주변인들과의 만남에서 느껴지는 삐끗함(빙크스는 대체로 주변인들과 잘 맞지 않지만, 잘 맞추고자 노력한다). 대단한 사건이랄 것도 없고 큰 깨달음을 얻을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이 사실 이렇지 않은가. 매일이 특별하기를 바라지만 대부분의 하루 하루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평범함의 반복일 뿐이다.

작가 폴 엘리는 책 마지막에 수록된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으레들 그러는 것과 달리 방향을 제시하진 않는다. 낯선 문화에 대한 여정도, 노련한 안내도, 어떤 자아를 벗고 다른 자아를 취하는 일도 없다. (…) 있는 거라곤 뉴올리언스에서 살아가는 빙크스의 “일상성”과 하룻밤 기차 여행이라는 사소한 일탈이 전부다.” 그리고 덧붙인다. 이 소설은 어떤 더 큰 수수께끼, 빙크스 볼링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여전히 풀고자 노력 중인 수수께끼 쪽으로 열려 있다.”

빙크스는 진리를 얻기 위해 탐색하지 않지만, 세상의 수수께끼를 향해 걸으며 자연스레 이치를 깨닫는다. 바로 기쁨과 슬픔은 번갈아 온다"는 것을.


멀하고는 내가 방귀를 뀌면 그가 척 하고 축하의 눈길을 보낼 수도 있는 사이야. 하지만 당신은 아니지. 당신은 나보다도 제정신이 아니야.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질 만큼. 그게 결혼의 토대가 된다고 생각해?”

되고도 남지. 사랑보다 나은데.”

사랑! 사랑에 대해 당신이 뭘 아는데?”

사랑에 대해 뭘 안다는 말은 안 했어.” (p.242)


인생은 앎과 모름의 연속이고 성공과 실패의 연속이다. 평생에 걸쳐 길이 기억될 큰 사건 하나로 나의 인생을 정의할 수는 없다.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을 때 비로소 미소지으며 털어놓을 수 있는 ‘한 때의 재미’가 우리의 인생을 채운다.

어제도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다음주면 아마 무엇을 먹었고 무슨 일을 했는지도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오늘’이 나에게 큰 선물을 주지 않을지라도 그 사실이 나에게 더 이상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는 기쁨이 있다. 곧 새로운 슬픔이 찾아올테지만 괜찮다. 인생이란 원래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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