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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Feb 23. 2024

민아와 ㅂㅂ의 공동일기

새로 태어난 손녀와 터줏 강아지의 이야기

우리 딸이 LA에서 혼자서 힘들게 지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외로웠던 딸은 가끔씩 유기견을 데려다 보살피는 동물 보호소(영어로는 Humane Society라고 합니다)를 찾아 혹시나 입양할 강아지는 없나 물색을 했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지요. 덩치가 큰 맹견들은 많았지만 작고 귀여운, 그것도 어린 강아지는 아예 없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 제가 그곳으로 날아가 같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하루는 "아빠 강아지 보러 갈래"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익숙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딸을 따라 보호소로 들어 가니 우선 향기롭지 않은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양쪽 벽 사람키 높이로 쌓아 놓은 수많은 철장에 온갖 개들을 "보호"해 놓고 있었습니다.

몇몇 개들은 우리 딸과는 이미 구면이 됐는지 딸을 보자마자 꼬리흔들어 대, 우리 딸은 각각의 개들에 대한 특징을 일일이 설명합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꽤나 여러 번 그곳을 방문해 시간보냈다 봅니다....ㅠㅠ


그러는 사이 LA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이틀 후에 열리는 자기네 가족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을 권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딸의 반응은 시큰둥했지만 그래도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에 맞춰 파티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파티장 입구 게시판에 조그만 강아지의 사진과 개를 입양할 사람을 찾는다는 문구가 적혀 있더군요.

딸애의 시선은 게시판에 고정된 채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사진의 강아지야 말로 우리 딸이 원하던 이상형이었거든요. 토이푸들, 아프리콧 색깔, 이제 한 살... 그러나 동시에 현실적인 걱정이 떠 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말로 강아지를 보살필 수 있을까? 직업 특성상 하루 12시간을 일해야 하는데 일하는 동안 강아지 하루종일 혼자 집안에 있게 할 수 있겠는가? 배변은 어떻게 하나? 짖으면 옆집(아파트)에서 불평이나 하지 않을까? 등등


저한테 의견을 물었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런 줄 아는지 모르는지 크리스마스 파티는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 여기저기 웃음이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얼마인가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일단 가서 한번 보기나 하자는 묘안을 생각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집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남편과 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점점 심해져 할머니는 ㅂㅂ(강아지 이름)를 더 이상 돌볼 없는 지경에 이르러 강아지에게 주인을 찾아 주기로 결정을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또 귀여운 ㅂㅂ의 모습을 보니 - ㅂㅂ는 1시간이나 지나서 우리 딸이 쓰다듬어 주는 것을 허락할 정도로 경계심(?)이 높다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었습니다만...., - 우리 부녀는 도저히 빈손으로 그 집을 나설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ㅂㅂ는 우리 딸의 반려강아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딸의 외로움과 그 할머니의 슬픔 그리고 주인을 잃기 싫어하는 강아지 불안한 마음...

세 가지 고통 속에 어렵게 이루어진 소중한 만남이랄까? 그것도 크리스마스 날에... 아무래도 예사스럽지 않았지요.

해서, 우리는 ㅂㅂ를 하나님이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증명할 길도 없고 또 그렇게 믿는 것이니 증명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게 둘은 몇 년인가 동고동락을 하고 LA를 떠나 우리가 사는 고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치 전장에 나가서 전우애가 말도 못 하게 두터워진 전사들처럼요. 아니면 개선장군 같다고 할까?


그리고 우리 딸은 가끔씩 예의 그 할머니에게 ㅂㅂ사진과 함께 소식을 전합니다.

ㅂㅂ는 가끔씩 집안에 오줌도 싸고 말썽도 일으키지만 뭐 대순가요? 그리고 녀석은 몇 가지 트릭도 배웠습니다. 앉아, 손 줘, 굴러 등등은 기본이지요.


우리 딸은 녀석을 만나 외로움도 이겨냈고 행복해졌으니 좋고, 녀석은 오줌을 아무 데나 갈겨도 눈만 한번 흘길 뿐 깨끗이 뒷정리를 해주는 주인을 만났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8년인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녀석에겐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자기 주인이 결혼을 하고 얼마 후 아기를 하나 낳은 것입니다. 그 아기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우리의 푸들강아지 ㅂㅂ에게 큰 혼란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음글에 새로 태어난 아기와 터줏강아지의 모습을 몇 장 올리려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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