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You Can Eat? All You Can Cry in NY
나는 어렸을 때부터 뚜렷한 뷔페 마니아였다. 부모님이 “오늘 외식할까?”라고 물으시면, 내 대답은 늘 단호했다. “뷔페요!”였다. 그 어떤 맛집도 내 관심사에는 없었다. 아마 내 안에는 ‘다양하게, 마음껏, 자유롭게’ 먹는 즐거움이 DNA처럼 각인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단일 메뉴 음식점에 가면, 나는 늘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고, 오히려 여러 가지 음식을 마음껏 맛볼 수 있는 뷔페 앞에서는 눈이 반짝였다.
한국에서의 뷔페 경험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문화적 기호와도 같았다. 점심에는 1만원대의 부담 없는 뷔페에서 시작해, 특별한 날에는 10만원대 고급 호텔 뷔페까지 즐겼다. 한 상에 담긴 다양한 음식들, 그것이 주는 선택의 자유와 탐험의 재미는 어린 나에게는 작은 모험과도 같았다. 한식, 중식, 양식, 일식은 물론이고, 샐러드와 디저트 코너, 심지어 눈앞에서 즉석 요리를 만들어주는 라이브 요리 스테이션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눈만 돌리면 새로운 요리와 색다른 조합이 기다리고 있는 공간, 그것이 바로 뷔페였다.
한국의 뷔페는 단순한 ‘배 채우기’의 장소가 아니었다. 가격대와 메뉴가 다양해서 누구나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외식 문화였다.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가든, 가족 모임을 하든, 연인과 데이트를 하든, 뷔페는 언제나 맞춤형 선택지였다. 1만원대로 가볍게 즐기는 점심 뷔페에서는 ‘오늘은 뭐 먹을까?’라는 고민을 잠시 접어두고, 마음껏 골라 담는 즐거움이 있었다. 반대로 10만원대 호텔 뷔페에서는 눈앞에 펼쳐진 한 상 가득한 요리들 속에서, ‘오늘만큼은 특별한 날’이라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경험 속에서 음식을 선택하는 자유 자체를 즐기는 법을 배운 것 같다. 한 접시에는 익숙한 메뉴를, 또 다른 접시에는 새로운 도전 메뉴를 담아보며, 맛의 탐험가가 되어보는 것. 한국에서 뷔페를 경험하며 맛본 것은 단순한 음식의 향과 맛이 아니라, 선택권과 탐험, 자유로운 경험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지금도 뷔페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뷔페는 나에게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나답게 즐길 수 있는 공간’, ‘작은 모험과 경험이 모여 큰 즐거움이 되는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뉴욕이라는 미식의 천국은 조금 의외였다. 2013년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 때, 기대와 달리 뷔페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맨해튼 중심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뷔페라고 부를 만한 유명한 곳은 단 두 곳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진 상태다. 현재 뉴욕에서 ‘뷔페’라는 이름을 내건 식당 대부분은 사실 중국식 뷔페였고, 음식의 질도 한국에서 경험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뷔페보다는 “All you can eat”, 즉 특정 음식 종류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훨씬 일반적이었다. 고기, 스시, 딤섬, 훠궈 등, 한 가지 음식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들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었다. 가격은 보통 30~50달러 정도로 결코 싸지 않았고, 팁과 세금까지 더하면 한 끼 식사 비용이 꽤 부담스러웠다. 메뉴의 다양성도 한국과 비교하면 제한적이었다. 여러 나라 음식을 조금씩 맛보며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하는 재미는 거의 없었다.
뉴욕의 무한리필 레스토랑들은 한국 뷔페에서 누리던 ‘선택의 자유’와 ‘탐험의 즐거움’ 대신, 특정 음식에 집중한 효율적 소비와 운영이 중심이었다. 그야말로 ‘한 가지에 올인’하는 형태였다. 한 상 가득 다양한 음식을 즐기던 한국에서의 경험을 생각하면, 처음 뉴욕의 식당 풍경은 조금 서운하고, 솔직히 말해 허전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All You Can Eat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문화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효율적 운영과 위생 관리, 특정 메뉴 특화라는 장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뷔페를 경험하며 길들여진 ‘다양하게, 자유롭게, 마음껏 먹는 즐거움’을 기대한다면, 뉴욕에서는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라스베가스를 여행하면서, 나는 미국 뷔페 문화의 극치를 경험할 기회를 가졌다. 라스베가스는 호텔이 수없이 많고, 관광객 중심의 외식 산업이 발달해 있어, 호텔 뷔페가 도시의 대표 미식 체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3대 뷔페라고 알려진 곳에서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웨이팅이 엄청났다.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풍경은 마치 뷔페 자체가 하나의 관광 명소인 것처럼 느껴졌다.
라스베가스에서 흔히 ‘3대 뷔페’라 불리는 곳 중 두 곳에서 식사를 해보았다. 기대감에 부풀어 한 상 가득 음식을 담고, 접시마다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며, ‘이게 바로 미국 최고의 뷔페!’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한국의 가격 대비 뷔페 경험과 비교하면 큰 감흥은 없었다. 화려한 장식과 넓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음식의 질과 다양성은 한국의 뷔페가 주던 만족감에는 미치지 못했다.
유일하게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디저트 코너였다. 젤라또,케이크, 마카롱, 무스, 초콜릿 분수까지, 디저트 코너만큼은 눈과 입이 동시에 즐거웠다. 하지만 메인 요리와 사이드 메뉴는 가격 대비 아쉬움이 남았다. 점심 한 끼에 50달러 이상을 내고, 팁과 세금까지 더하면 실제 지불 금액은 훨씬 더 높아진다. 이 가격대에 한국의 뷔페처럼 다양한 선택지를 누리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결국 라스베가스 뷔페는 나에게 ‘미식 체험’보다는 ‘관광 체험’에 가까웠다. 호텔 뷔페라는 환경과 규모, 디저트 코너의 화려함은 눈길을 사로잡지만, 정작 한국에서 누리던 선택의 자유와 다양한 맛 탐험은 부족했다. 맛보며 느낀 것은 단순히 음식의 질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과 외식 산업 구조의 차이였다. 라스베가스의 뷔페는 ‘한 끼 식사’라기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이벤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왜 한국과 미국, 특히 라스베가스 외 다른 미국 도시에서 이런 뚜렷한 차이가 생기는 걸까? 단순히 ‘한국이 맛집이 많아서’ 혹은 ‘미국은 뷔페를 안 좋아해서’라고만 보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이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한국의 식탁은 늘 ‘풍성함’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밥상 위에는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만 있는 법이 없다. 그 옆에는 김치, 나물, 장아찌, 생선, 찌개, 전, 탕… 이름 모를 반찬들이 끝없이 줄지어 선다. 이 풍경은 단순한 식사 준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에 가깝다.
서양의 식탁이 개인 접시 중심이라면, 한국의 식탁은 공동체의 그릇이다. 모두가 같은 상에 둘러앉아, 각자 다른 취향으로 반찬을 집어 먹는다. ‘공유’가 기본값인 식문화. 이 전통이 바로 오늘날 한국의 뷔페 문화로 이어졌다.
뷔페의 본질은 다양성과 선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것은 조금 다르다. 단순히 ‘많은 음식을 마음껏 먹는다’가 아니라, 함께 나누며 맛을 비교하고, 서로의 선택을 이야기하는 사회적 놀이가 된다.
“저건 어땠어?”
“저쪽 코너에 새로 나온 디저트 있더라.”
한국의 뷔페에서는 음식이 대화의 주제가 되고, 취향이 하나의 개성이 된다. 이건 단순한 식문화가 아니라, ‘공유의 미학’이자 ‘소통의 문화’다.
과거에는 뷔페가 단순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뷔페는 완전히 다르다. 그건 ‘체험의 공간’, 다시 말해 ‘먹는 행위가 예술이 되는 무대’다. 스마트폰이 식탁 위에 놓인 순간, 음식은 더 이상 사적인 것이 아니다. 카메라가 포크보다 먼저 움직이고, 한 접시 위의 음식들은 SNS 피드에서 ‘작품’이 된다. 뷔페는 바로 그 ‘연출 가능한 무대’로서의 기능을 완벽히 수행한다.
한 접시에 담긴 색감의 조화, 접시 배치의 미학, 그리고 “오늘은 어떤 코너부터 공략하지?”라는 전략적 선택의 재미. 이 모든 것이 한국인이 뷔페를 즐기는 방식이다. 선택의 자유가 곧 즐거움이 되는 사회. 한국의 뷔페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선택하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그 안에는 ‘다양성에 대한 욕망’과 ‘비교를 통한 자기 표현’이 공존한다. 결국 우리는 뷔페를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공유하는 ‘놀이’를 하러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는 단지 감성으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 뒤에는 치열한 경제적 구조와 효율의 논리가 숨어 있다. 한국 외식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시장 중 하나다. 매일같이 새로운 브랜드가 생기고, 사라진다. 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맛’만으로는 부족하다. 가격, 접근성, 체험, 그리고 효율이 모두 작동해야 한다.
한국의 뷔페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 다양한 메뉴를 일정한 공간에서 제공하며, 손님 회전율을 조절하고, 재료의 대량 구매로 단가를 낮춘다. 그 결과, 1만~3만 원대 점심 뷔페부터 10만 원이 넘는 호텔 뷔페까지, 모든 계층이 자기 수준에 맞는 ‘작은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즉, 한국의 뷔페는 ‘양적 풍요’와 ‘경제적 합리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희귀한 구조다. 그리고 이 구조는 한국식 실용주의, 즉 ‘효율 안에서의 다양성’을 완벽히 구현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외식 빈도’의 나라다. 회식, 모임, 소개팅, 생일, 가족 식사… ‘함께 먹는’ 행위는 관계를 유지하고, 사회적 거리를 조절하는 중요한 장치다. 이때 뷔페는 그 어떤 자리에도 어울리는 만능 무대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출 수 있고, 예산 조절도 쉽다. ‘선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은 곧 ‘갈등의 여지를 줄인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한국형 사회적 합리성의 결정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뷔페가 주는 심리적 자유다. 평소에는 눈치 보며 먹던 사람들이, 뷔페에서는 맘껏 먹고 즐긴다. 이곳에서는 계급도, 직급도, 나이도 일시적으로 사라진다. 모두가 똑같이 쟁반을 들고 줄을 선다.
그 순간만큼은 음식이 평등을 만든다. 그리고 이 평등의 순간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뷔페를 사랑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서양에서 뷔페는 원래 상류층 연회 문화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것이 민주적 축제의 형태로 변모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모두가 자기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열린 공간. 한국의 뷔페는 ‘소비의 민주주의’이자 ‘선택의 미학’이다. 그 안에는 우리의 문화, 경제, 심리, 그리고 사회가 모두 녹아 있다.
결국, 한국의 뷔페는 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공유의 전통과 효율의 논리, 그리고 평등의 욕망이 한 접시에 담겨 있다. 우리가 그 앞에서 쟁반을 들고 고민하는 이유는 단순히 배고파서가 아니다. 그건 어쩌면 우리 모두가 ‘선택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훈련을 하는 의식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는 말한다.
“뭐부터 담을까?”
그 질문 속에는 한국 사회의 풍요, 갈등, 욕망, 그리고 자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의 뷔페가 ‘다양성의 축제’라면, 미국의 뷔페는 점점 ‘선택의 간소화’로 향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유행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 즉 “무엇을 어떻게 나누어 먹을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 바뀐 결과다.
오늘날 미국에서 전통적인 셀프 뷔페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신 ‘All You Can Eat(무한리필)’이라는 이름의 식당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형식은 비슷해 보이지만, 철학은 정반대다. 한국의 뷔페가 ‘다양한 메뉴 중 선택’이라면, 미국의 무한리필은 ‘하나를 무한히 반복하는 선택’이다.
미국의 식문화는 언제나 ‘집중’과 ‘효율’을 중시했다. 하나를 정했다면 그 하나를 끝까지 파고드는 스타일. 스테이크면 스테이크, 피자면 피자, 초밥이면 초밥. 선택지는 적지만, 만족감은 깊다. 이건 음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효율을 신앙처럼 믿는 사회의 방식이기도 하다.
COVID-19 팬데믹은 이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셀프 서비스 구조는 감염의 위험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공용 집게, 수많은 손이 닿는 트레이, 사람들로 붐비는 동선. 그 모든 것이 불안의 대상이 되었다.
팬데믹 동안 수많은 뷔페 체인들이 문을 닫았다. ‘Golden Corral’, ‘Souplantation’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패밀리 뷔페들부터 간간이 그나마 있었던 뷔페들마저 줄줄이 폐점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다양한 음식을 한 번에 먹지 않아도 된다.”
이 깨달음은 단순히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방식의 변화였다. 재택근무, 외식 축소, 개인화된 소비가 일상이 되면서,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나눈다’는 전통적 뷔페의 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미국의 ‘All You Can Eat’은 단순한 무한리필이 아니다. 그건 효율의 철학이자, 자본주의적 합리성의 결정체다. 고기, 스시, 딤섬, 훠궈처럼 특정 음식군에만 집중한다. 이 방식은 단순하지만 운영 효율성이 탁월하다. 식자재 관리가 쉽고, 조리 인력도 전문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쉽다.
손님 입장에서도 계산이 명확하다. “내가 낸 돈만큼 확실히 먹었다.” 이 단순한 만족감이야말로 미국 소비 문화의 핵심이다.
그래서 미국의 뷔페는 ‘풍요의 다양성’이 아니라, ‘집중의 풍요’로 진화했다. 모두에게 조금씩 주는 대신, 하나에 전부를 쏟아붓는 방식. 이건 마치 대량생산과 전문화의 원리를 음식에 적용한 결과다.
한국의 뷔페가 “천천히 고르고 즐기는 식사”라면, 미국의 무한리필은 “빠르고 명확한 거래”에 가깝다. 미국 소비자들은 ‘속도’와 ‘예측 가능성’을 신뢰한다. 햄버거를 주문하든, 스테이크를 먹든, “시간 대비 만족”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뷔페는 그 반대다. 음식을 고르고, 담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은 ‘비효율’이다. 게다가 “무엇을 먼저 먹을까?”라는 고민도 많다. 결국 뷔페는 바쁜 도시인의 리듬과 맞지 않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미국인에게는 ‘효율이 곧 자유’다. 즉,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자율성의 표현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낼 수 있는 구조를 선호한다. ‘All You Can Eat’은 바로 그 문화적 리듬에 완벽히 부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선택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선택 피로의 나라’이기도 하다. 슈퍼마켓에만 가도 시리얼이 수십 종류, 커피가 수백 가지다. 자유는 많지만, 그만큼 선택은 피곤하다.
뷔페는 이 ‘자유의 과잉’을 상징한다. 너무 많은 음식, 너무 많은 선택. 결국 사람들은 자유보다 명확한 경계를 원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의 뷔페 문화는 ‘다양성의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한 가지의 자유’, 즉 제한된 무한으로 수렴했다. 그게 바로 “All You Can Eat”이라는 미국식 절충안이다. 무한하지만, 정해진 범위 안에서만. 자유롭지만, 효율의 틀 안에서만.
결국 한국과 미국의 뷔페는 서로 다른 문명적 욕망을 보여준다. 한국의 뷔페는 관계의 확장이다. 여럿이 함께, 여러 맛을 나누며, 사회적 경험을 쌓는다. 공유의 미학, 다양성의 축제, 그리고 취향의 민주주의. 반면 미국의 ‘All You Can Eat’은 개인의 효율이다. 짧은 시간에 명확한 대가를 얻는 거래의 공간. 자유는 있지만, 교감은 없다.
그 차이는 결국 ‘공동체 중심의 문화’와 ‘개인 중심의 문화’의 차이다. 한국인은 음식 위에서 관계를 맺고, 미국인은 음식 속에서 자기 시간을 확보한다. 그래서 한국의 뷔페는 ‘함께 먹는 풍요’, 미국의 뷔페는 ‘효율적인 자유’다.
음식은 단순한 영양 공급이 아니라, 한 사회의 가치 체계를 반영한다. 한국의 뷔페와 미국의 ‘All You Can Eat’은 각기 다른 문명, 다른 자유의 형태를 담고 있다. 한국의 뷔페는 “많이”보다 “다양하게”를 꿈꾼다. 미국의 뷔페는 “다양하게”보다 “확실하게”를 선택한다. 한쪽은 관계의 풍요를, 다른 한쪽은 선택의 명료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두 문화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자유를 원하는가?”
결국 한 접시 위의 음식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자 자유와 효율, 관계와 선택이 공존하는 작은 문명의 단면이다.
결국 뷔페란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그건 한 사회의 철학이 차려진 식탁이고, 한 사람의 인생 태도가 담긴 접시다. 한국의 뷔페는 ‘같이 먹는 즐거움’을, 미국의 무한리필은 ‘나만의 효율’을 보여준다. 라스베가스의 호텔 뷔페는 그 중간쯤 어딘가에서 ‘눈으로 먹는 미학’을 완성한다.
나는 그 모든 곳에서 접시를 채우며, 한 사회의 가치관을 맛봤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 입과 마음이 가장 자주 그리워하는 건, 한국의 뷔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뷔페에는 선택의 자유와 유쾌한 혼돈, 그리고 집단적 즐거움의 온기가 있다.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저건 꼭 먹어봐야 해!” 하는 속삭임, 디저트 코너 앞에서 아이처럼 설레는 어른들의 눈빛, 그리고 ‘오늘은 다이어트 내일로 미루자’며 웃는 그 무책임한 해방감. 그 모든 게 한국 뷔페의 본질이다.
뉴욕의 All You Can Eat 레스토랑에서는 그런 순간이 드물다. 사람들은 접시에 집중하고, 식사 후엔 곧장 일상으로 복귀한다. 라스베가스에서는 눈이 즐겁지만, 마음이 조금은 피곤하다. 하지만 한국 뷔페에서는, 식사 후에도 이상하게 기분이 푸근해진다. ‘잘 먹었다’가 아니라 ‘즐거웠다’는 감정으로 배가 차오른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고, 공항에서 바로 호텔로 달려가 호텔 뷔페에서 첫 접시를 채운다. 스시 한 점, 잡채 한 젓가락, LA갈비 한 조각, 그리고 디저트로 초콜릿 케이크. 그 순간 나는 미식가가 아니라, 고향의 맛을 다시 탐험하는 여행자가 된다.
아마 그날도 나는 또다시 길을 잃을 것이다. 이번엔 도시의 길이 아니라, 뷔페 한가운데 놓인 ‘선택의 미로’ 속에서. 하지만 괜찮다. 한국 뷔페에서 길을 잃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결국 인생도, 미식도 비슷하다. 다양한 선택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자신에게 맞는 한 접시를 찾는 것.
그래서 나는 곧 한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단 하나 — “나만의 뷔페 지도 완성하기.”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양한 호텔, 그리고 동네 골목의 가성비 뷔페까지, 나는 다시 접시를 들고 탐험을 시작할 것이다. 이번엔 단순히 음식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문화의 미학을 다시 맛보기 위해서.
뉴욕에서 “뷔페”를 찾는다면, 한국의 호텔식 한상차림을 기대하기보다 ‘All You Can Eat’ (무한리필)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옳다. 그것은 단순한 식사 형태가 아니라, 뉴욕식 시간 철학과 효율의 미학이 담긴 시스템이다.
1. “All You Can Eat(AYCE)”은 ‘뷔페’가 아니다
한국식 뷔페는 다양성을 추구하지만, 뉴욕의 All You Can Eat은 집중과 효율을 추구한다. 대부분 한 가지 음식군에 특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고기 전문 (BBQ, K-BBQ, 스테이크), 스시 & 해산물, 핫팟, 훠궈, 딤섬 등이다.
팁: “뷔페”라고 검색하지 말고, → “All you can eat + 음식 종류(ex. sushi, BBQ, hot pot)”로 검색하는 것이 옳다. (예: All you can eat sushi NYC, K-BBQ all you can eat Manhattan)
2. 가격은 ‘시간’과 함께 계산된다
뉴욕의 All You Can Eat은 한국의 뷔페와 마찬가지로 보통 시간 제한(90~120분)이 있다.
팁: 입장 전 반드시 time limit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이다. 다 못 먹은 음식에는 추가 요금(fine)이 붙을 수도 있다.
3. 뷔페도 예약이 필수이다
특히 인기 있는 K-BBQ나 스시 뷔페는 저녁 피크타임에 줄이 길게 늘어선다. 뉴요커들은 대부분 OpenTable이나 Resy 앱을 통해 예약한다.
팁: “AYCE”가 포함된 식당을 찾은 후 → OpenTable 예약이 필수이다. 점심 시간대(11:30~2:00pm)는 가격이 20~30% 저렴하다.
4. 현지에서 사랑받는 ‘믿을 만한’ All You Can Eat 맛집들
K-BBQ: Let’s Meat (K-Town). 세련된 분위기, 무한리필 고기 + 사이드가 깔끔하다. 한국식 무한리필 고기 전문점이다. 세련된 분위기에서 다양한 고기와 사이드를 즐길 수 있다. 2시간 이용 제한이 있으며 고기 질이 안정적이다. 가격대는 약 40달러 수준이다. 주소는 뉴욕 5번가 307번지이다
Sushi: Yuka Sushi (Upper East Side). 스시 무한리필을 제공하는 일본식 레스토랑이다. 즉석 주문 방식으로 신선한 스시를 제공한다. 가격은 35달러에서 50달러 수준이다. 위치는 뉴욕 어퍼 이스트 사이드 2번가 1557번지이다.
Hotpot: 99 Favor Taste. 중국식 훠궈와 다양한 고기 해산물을 무한리필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국물과 소스를 직접 조합할 수 있으며 체인 형태라 접근성이 좋다. 가격대는 29달러에서 43달러 수준이다. 체인점이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와 브룩클린 등이 위치하고 있다.
Brazilian BBQ: Churrascaria Plataforma. 브라질식 스테이크하우스로 서버가 테이블로 고기를 직접 가져와 썰어준다. 고급형 올 유 캔 잇 레스토랑으로 약 53달러에서 85달러 수준이다. 위치는 뉴욕 미드타운 49번가 316번지이다
5. 팁 문화 잊지 말기
미국의 All You Can Eat에도 팁은 필수이다. 보통 음식값의 15~20% 정도이다. 계산서 하단에 자동으로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 확인해야 한다.
팁: 카드 결제 시 “Tip”과 “Total” 칸을 확인하고 서명하기 전 꼭 체크해야 한다. 셀프서비스라도 직원이 물, 접시를 치워주면 팁을 주는 것이 예의이다.
6. 뉴욕에서의 ‘맛있는 전략’
혼자라면? 스시나 핫팟 계열을 추천한다. 혼밥이 자연스럽고 편하다.
친구들과 간다면? K-BBQ이다. 고기 굽는 냄새와 수다로 뉴욕 밤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디저트를 원한다면? 라스베가스처럼 풍성한 디저트 뷔페는 없다. 대신 근처 유명한 디저트 카페로 이동하는 것이 옳다 (Lady M, Dominique Ansel Bakery, Spot Dessert Bar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