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벌의 유럽 따라잡기: Old Westbury Gardens
가을마다 나는 꼭 찾는 곳이 있다. 뉴욕 근교, 롱아일랜드 노스쇼어에 자리한 Old Westbury Gardens다. 자동차로 뉴욕 시티에서 30분에서 40분 정도면 도착하는 이곳은, 단풍을 보러 산을 오르거나 장거리 드라이브를 떠나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는 최적의 장소다. 특히 나이 든 부모님이나 계단 오르내리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평지 위로 넓게 펼쳐진 정원이 큰 선물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산책로가 완만하게 조성되어 있어 걷는 일이 어렵지 않고, 면적이 워낙 넓어 곳곳에 거대한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계절의 색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지루할 틈이 없다. 이 때문에 나는 매년 가을이면, 계절의 색과 바람, 햇살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순간을 천천히 음미하듯 이곳을 걷는다.
Old Westbury Gardens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한 시대와 한 가문의 역사를 품은 장소이기도 하다. ‘골드 코스트’라 불리는 롱아일랜드 북부 해안 지역에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 산업재벌과 신부유층이 세운 대규모 사유지가 많다. 이곳 역시 한 가문의 부와 야망, 그리고 유럽에 대한 동경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공간이다. 웨스트버리 하우스, 즉 본채와 약 170에서 216에이커에 이르는 정원, 호수, 산책로, 나무숲이 주요 구성 요소이며, 오늘날에는 박물관과 문화 행사,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되어 대중에게 공개된다.
이 대저택과 정원은 미국 철강재벌계열 필립스 가문의 상속인 John Shaffer Phipps, 흔히 Jay Phipps라 불리는 인물이 중심이 되어 완성되었다. 이야기는 Jay Phipps가 영국 출신 약혼녀 마르가리타 그레이스를 위해, 영국 전원 저택을 닮은 집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에서 시작된다. 1903년경 공사가 시작되었고, 본채는 1906년경 완공되었다. 단순히 집을 지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미국 신부유층의 위세와 취향을 짐작할 수 있다.
설계에는 영국 출신 디자이너 George A. Crawley가 조경과 건축적 디테일을 맡았고, 미국 건축가 Grosvenor Atterbury가 구조적 설계에 참여했다. 건축 양식은 영국식 저택, 특히 찰스 2세 시기 스타일(Carolean Revival)에 뿌리를 둔 디자인을 미국식으로 재현한 것이다. 정원 또한 형식정원과 회화적 조경이 혼합된 형태로 조성되어, 단순히 부를 과시하는 장식적 공간을 넘어 하나의 ‘자연 속 예술 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Phipps 가문은 철강업과 결혼 동맹으로 형성한 거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롱아일랜드에 여러 대규모 저택을 소유했다. John과 마르가리타 부부는 이곳에서 삶을 영위하며, 후계자들에게까지 저택과 정원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을 전했다. 그 과정에서 남긴 서신, 사진, 청구서 등 자료들은 현재 Old Westbury Gardens 아카이브에 보존되어 있어, 방문객들은 단순히 공간을 구경하는 것 이상으로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를 엿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Phipps 부부 사후 이 부지가 1959년 비영리 조직 형태로 개방되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사유지가 아닌, 교육과 문화, 역사 체험 공간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후로는 콘서트, 페스티벌, 전시와 연계된 보존 및 해설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Old Westbury Gardens는 1976년 국립사적지등록(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에 등재되어 공식적으로 건축적·조경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공간을 걸으면, 평지 위에 펼쳐진 단풍길과 거대한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조차 단순한 자연 풍경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안에는 부와 권력, 사랑과 약속, 교육과 문화적 야망이 얽혀 있고, 방문객은 그것을 걸음마다, 시선마다 마주하게 된다. 나는 매년 가을이면 Old Westbury Gardens에서 계절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간과 시간, 그리고 역사적 맥락이 만들어낸 공간의 이야기를 느낀다.
정리하자면, Old Westbury Gardens는 단순한 가을 단풍 여행지가 아니다. 한 시대 미국 신부유층의 문화적 욕망과 유럽식 예술적 모방, 가족과 사회적 책임, 교육적 유산까지 복합적으로 담은 공간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오늘날 여행자에게는 역사와 자연, 인간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나는 그 경험을 매년 반복하며, 인간과 공간, 시간의 교차점을 성찰하는 기회를 얻는다.
정문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문틀 위에 정교하게 조각된 두 남자아기의 부조와, 그 양옆에 새겨진 라틴어 문구다. "Pax intrantibus, salus exeuntibus. 들어오는 이에게 평화를, 떠나는 이에게 안녕을." 언뜻 보면 단순한 장식처럼 보이지만, 그 의미를 되새기면 오래된 수도원이나 중세 유럽의 여관, 그리고 고성의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축복의 말과 맥이 닿아 있다. 이 집의 문 앞에서 우리는 단순히 한 공간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손님으로서 환대와 보호를 약속받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두 남자아기의 부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통통한 볼과 둥근 배, 짧은 팔다리가 강조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웃음을 자아낸다. 장난스럽거나 다소 무심한 표정은 공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방문객을 환영하는 역할을 한다. 이 형상은 푸토(putti)라는 장식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로코코 시기에 유행했던 조각 언어를 이어받았다. 푸토는 원래 순수와 무구함, 천진함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장식적·공간적 효과를 노린 장치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집의 푸토에는 날개가 없다는 사실이다. 날개가 없다는 것은 종교적·천사적 의미보다는, 세속적이고 장식적 환영의 표지로 이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부조는 단순히 아름다운 장식 이상의 기능을 한다. 방문객의 눈길을 끌고, 집의 주인이 의도한 ‘환대와 보호’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치인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읽는다. 만약 이 푸토가 의도적으로 ‘남자아이’로 조각되었다면, 단순한 장식적 효과를 넘어선 사회문화적 코드가 숨겨져 있다. 즉, 가문의 계승과 후손의 번창, 심지어 남아 선호라는 가치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셈이다. 당시 사회에서 남아의 존재와 가문의 지속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였기에, 이를 정문 앞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권력과 부의 세습, 사회적 지위를 은근히 과시하는 장치로 읽힐 수 있다.
반대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신고전주의·에클레틱 양식의 유행적 맥락에서 보자면, 이 푸토는 단순히 유행을 집적한 장식일 가능성도 크다. 유럽에서 유행하던 다양한 장식 양식을 미국 신부유층이 따라하며, ‘부와 취향’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의미와 장식, 상징과 유행이 뒤섞인 경계에서 나는 문 앞에 서서 이 집을 바라본다.
나는 그 순간, 단순히 집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상징을 한눈에 마주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푸토와 라틴어 문구가 던지는 메시지는 겉으로는 온화하고 친근하지만, 그 안에는 시대와 계층, 문화적 코드가 깊게 배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집을 단순한 대저택이 아닌, 인문학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요소라 생각한다.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대저택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실내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눈앞에 펼쳐진 샹들리에는 고급스러운 빛을 은은하게 퍼뜨리고, 금박으로 장식된 액자들은 벽면을 가득 메워 시선을 압도한다. 가죽 제본으로 정성스럽게 묶인 책들이 서가를 채우고,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고급스러운 가구와 소품들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미술관처럼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나는 한 가지 인상을 분명히 받는다. 거의 모든 곳에서 유럽의 미학적 상징을 빌려다 놓았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심지어 로코코의 장식 문법까지 한 지붕 아래 모아 둔 듯한 느낌이다. 통일성은 부족하고, 과시성은 넘친다. 이 집은 정교한 건축적 연원을 보여주기보다는, 부와 취향을 한 번에 과시하려는 재벌적 무대에 가깝다. 그 무대 위에서 주인은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들은 포장된 교양과 성공담을 교환한다. 손님으로서는 눈과 마음이 동시에 휘청이는 경험이다. 한편으로는 황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지나친 과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1층과 2층을 한 바퀴 돌며 내부를 둘러보고 나면, 화려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그때쯤 나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야외 정원으로 옮긴다. 집 뒤편으로 펼쳐진 정원은 실내 장식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베르사유식 야외 정원을 연상시키는 대칭과 축조, 테라스의 배치는 유럽 귀족의 정원 풍경을 미국식으로 재해석한 듯한 인상을 준다. 정원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조각상과 화단 그리고 숲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자연과 예술이 함께하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정원 계획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당시 부유한 미국인들의 유럽 문화 동경과 사회적 상징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 저택의 설계는 영국의 고성인 Battle Abbey를 닮게 해달라는 약속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단순히 ‘좋은 집’을 넘어서, 유럽 귀족 문화와 부를 공연처럼 재현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마치 미국 재벌들이 유럽을 여행하고, 그 경험을 대저택과 정원이라는 캔버스 위에 옮겨놓은 셈이다.
나는 정원 앞에 잠시 서서, 미국과 유럽,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이 공간을 바라본다. 정원과 대저택, 실내 장식과 야외 풍경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미적 즐거움만이 아니다. 부와 권력, 사회적 지위, 문화적 동경이 결합된 인간사와 역사, 그리고 그것이 공간 속에 남긴 흔적까지 함께 읽어야 하는 경험이다. 이 순간, 나는 여행자가 아닌, 역사와 인간의 욕망을 탐색하는 관찰자가 된다.
그러나 정원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집과 정원 사이에 놓인 예상 밖의 조각들에서 비롯된다. 집 뒤뜰에 위치한, 마치 대저택을 지키듯 서 있는 두 개의 스핑크스 조각상은 이 대저택의 스타일 혼종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치형 문틀과 고전적 기둥, 영국식 전원 저택 특유의 적요함이 자리한 곳에, 이집트적 요소가 난데없이 끼어 들어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졸부의 점잔없음’이라는 표현을 떠올렸다. 이 집은 고대와 유럽의 권위적 상징을 한데 모아두고, 그것들이 서로 어울리는지 따지기보다 눈에 띄는 요소를 차용해 부와 취향을 과시하려는 욕망이 앞서 있는 듯 보였다.
이 대저택을 거닐 때마다 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목격한다. 하나는 정교하게 연출된 미장센으로서의 아름다움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장면 뒤편에 숨은 노동과 비용의 그림자이다. 주방과 하인 숙소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집무실과 서고에 쌓인 계약서와 문서, 비밀의 방에 잠긴 오래된 편지들. 장식의 빛이 눈부실수록, 그 빛의 출처가 더 어둡게 느껴진다. 응접실의 금박 샹들리에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무대이고, 도서실의 가죽책은 그 무대의 배경 소품이다. 공간 자체가 스스로를 설명한다. “나는 재력이 있으므로 대접받을 만하다.”
대저택의 각 방에는 저마다 고유의 스토리가 깃들어 있다. 응접실은 손님을 위한 무대이고, 연회장은 사회적 풍요를 소비하는 장소다. 음악실은 연출의 일부로 유지되고, 연회장에서는 불빛 아래에서 인간관계의 권력도가 재편된다. 반면, 부엌과 하인들의 방은 모든 연출을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 노동의 장소다. 주인 침실은 권력과 외로움이 뒤섞인 사적 영역이며, 숨은 방은 불편한 진실을 보관한다. 집을 한 바퀴 거닐며 나는 장면과 이면을 번갈아 바라본다. 이 집이 누구를 위해 설계되었고, 무엇을 은폐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계절이 주는 사소한 기쁨에도 익숙해졌다. 얕은 잔디밭 위에 떨어진 노란 잎을 주우며, 오래된 분수에서 튀는 물방울 소리를 듣고, 나무의 키와 그림자를 측정하듯 천천히 걸으며 가을의 온도와 향을 몸으로 기억한다. 때로는 정원의 고요 속에서, 과거의 소란이 멈춘 듯한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요는 연출된 고요다. 이 정원과 집은 누군가의 예술적 취향이자, 다른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는 눈앞의 아름다움과 그 이면의 노동, 예술과 권력, 취향과 과시가 얽혀 있어 단순히 여행자가 되어 걸어 다니는 경험을 넘어선다. 나는 방문객으로서, 동시에 역사와 인간 욕망, 사회적 구조를 관찰하는 인문학적 탐험가가 된다. 그리하여 Old Westbury Gardens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단풍과 햇빛만으로 이루어진 산책이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된 부와 문화, 권력과 인간사의 서사를 읽어 내려가는 여정이 된다.
역사적 맥락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Old Westbury Gardens는 단순한 아름다운 정원이 아니라 20세기 초중반 미국의 정체성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창이 된다. 한 세기 전만 해도, 미국은 문화적으로 유럽을 본보기로 삼았다. 산업화와 경제적 부를 빠르게 쌓아 올린 신부유층에게 유럽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권위와 세련됨의 기준이었다.
이 시기 부유층은 유럽의 건축과 예술을 모방하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신분을 재현하려 했다. Old Westbury Gardens는 바로 그 산물이다. 영국 전원 저택의 고요함, 프랑스식 장식의 화려함, 고대 그리스로마와 고대 이집트적 상징의 과감한 차용까지, 이곳의 건축과 조경은 유럽의 고전적 형태를 미국의 토지와 재력 위에 옮겨놓은 시각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미적 모방이 아니라, ‘나는 이만큼 부유하고 교양 있으며, 권위를 가질 자격이 있다’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은 아직 문화적 자주성을 완전히 확립하지 못한 상태였다. 유럽의 문법과 기준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신부유층들은 자신의 땅과 재산을 무대 삼아 새로운 미국적 권위와 부를 시각화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골드 코스트의 대저택들, 그중에서도 Old Westbury Gardens이다.
이 사실을 알고 정원을 거닐면, 단순한 풍경 감상이 아니라 문화적 모방과 사회적 포지셔닝,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공간의 연출까지 함께 읽을 수 있다. 분수의 물줄기, 테라스의 대칭, 스핑크스상의 불협화음까지, 모든 요소가 당시 미국 부유층의 욕망과 유럽 문화 동경을 동시에 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단풍이 물든 산책로조차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부와 문화, 권력과 인간사의 흔적을 함께 체험하는 역사적 무대가 된다.
나는 이 집을 단순히 ‘졸부의 화려함’이라는 한 마디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그 안에는 섬세한 미적 감각과 진심 어린 수집의 열정, 그리고 시대적 욕망이 뒤섞여 있다. 다만, 그 욕망은 때때로 외부로 과장된 표상을 요구했다. 집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미학적 기호를 끌어모았고, 그 결과는 어쩌면 눈부시게 아름답기도, 어쩌면 다소 어색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곳을 빠져나와 주차장 쪽으로 걸을 때면 나는 매번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집을 짓는가. 자신만을 위한 은신처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대인가. Old Westbury Gardens는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사이의 긴장감이야말로 내가 이곳을 다시 찾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을빛 아래 고요히 반짝이는 잔디, 그 위에 드리운 거대한 역사와 욕망의 그림자, 장식과 노동, 개인적 취향과 사회적 과시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풍경.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이 집과 정원은 단순한 방문지가 아니라 한 편의 인간학적 드라마가 된다. 나는 그 드라마 속을 걸으며, 단순한 자연 관찰 이상의 경험을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곳을 추천한다. 산을 오르지 않고 편하게 걷고 싶은 이들에게, 가을의 색과 빛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미국 근대 부유층의 삶과 문화적 모방의 역사를 실물로 보고 싶은 사람에게 Old Westbury Gardens는 최적의 선택이다. 단풍의 색은 매년 다르게 변하지만, 이곳이 주는 질문과 감상은 매번 새롭다. 그 질문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언제나 이 시간을 가장 소중한 가을의 기억으로 간직한다.
John Shaffer Phipps와 그의 아내 마르가리타 부부는 영국식 귀족 문화를 사랑했다. 집에서 열리는 사교 파티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었다. 손님들은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까지 엄격히 요구받았다. 미국식 편안함에 익숙한 손님들은 처음에 매우 당황했지만, Phipps 부부는 즐거워하며 “영국식 예절을 배워야 한다”는 농담을 곁들였다. 그 장면은 단순한 웃음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부유층이 유럽 전통을 과시하고, 이 집이 단순한 주거가 아니라 교육적·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임을 손님들에게 알려주는 순간이었다. 미국이라는 신생 부유층 사회가 유럽 문화를 모방하며 자신의 지위를 확립하려 했던 시대적 단면이 여기에 담겨 있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정원 안 호수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이다. Phipps 가문의 어린 자녀들이 보트를 타고 놀다 뒤집혔지만, 다행히 물이 얕아 큰 사고는 없었다. 가족과 하인들이 즉시 구해주었고, 신문에는 “골드 코스트 집안 아이들, 정원 호수에서 미니 탐험”이라는 소소한 기사가 실렸다. 이 사건은 단순한 재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정원이 장식적 공간인 동시에, 놀이와 체험,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당시 부유층의 정원은 권위와 풍요의 상징이자, 가족과 손님이 참여하는 체험 공간이기도 했다.
Old Westbury Gardens에는 또한 감동적인 순간들이 스며 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시절, Phipps 가문은 집과 정원을 지역사회와 군 관련 모금, 헌혈 행사, 어린이 위문 공연 등으로 개방했다. 마르가리타 부인은 정원에서 야외 병원 지원 활동을 주도하며, 자신의 부를 공동체와 나누었다. 그 덕분에 지역 주민들은 단순히 부를 과시하는 집이 아니라 공동체와 연결되는 문화적 공간으로 이곳을 인식했다.
부부는 후손들을 위한 교육적 유산에도 신경을 썼다. 집과 정원 곳곳에 기록과 컬렉션을 남겨, 자연과 예술, 역사를 체험하며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단순한 사유재산이 아닌,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문화적·교육적 유산으로 전환된 셈이다. 그 덕분에 오늘날 Old Westbury Gardens는 박물관이자 교육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었고, 방문객들은 그 안에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체험한다.
소소하지만 상징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겨울마다 정원에 설치한 작은 얼음 미끄럼틀과 장식물, 계절별 색과 향기를 고려한 화단은 방문객과 어린 자녀들을 즐겁게 했다. 후손의 인터뷰에 따르면, Phipps 부부는 부를 과시하기보다 공간과 시간을 예술적으로 쓰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단순히 부와 권력의 과시로 보이는 공간 안에도 인간적이고 교육적인 배려가 숨어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20세기 초 미국 신부유층은 철강, 은행 등 산업 재벌 출신으로, 유럽의 전통 저택과 정원을 그대로 차용하며 부를 시각화했다. 일부 언론과 평론가는 이를 ‘사치의 극치, 부의 과시’로 평가했다. 뉴욕타임스 등에서는 “부유층이 유럽 귀족 문화를 모방하며 세습적 권위를 과시한다”는 논평을 실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시기, 저택과 정원은 ‘부의 장벽’이자 일반 시민과의 격차를 상징했다.
더 나아가 정원과 호수, 인공 건축물은 자연을 지나치게 조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조경과 정원 관리에는 상당한 물과 노동력이 필요했으며, 일부 환경 역사학자들은 ‘골드 코스트 저택은 자연보다 인간 욕망을 우선시한 문화적 인공물’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영국식 건축과 정원을 그대로 가져온 점은 창조적 표현보다는 단순 모방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초기에는 완전히 사유 공간이었고, 접근성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문화와 예술은 상류층을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Old Westbury Gardens는 건축적 완성도, 조경 미학, 역사적 보존 가치가 높다. 단순한 부의 상징으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다. 이 공간은 부와 권력, 인간적 배려, 교육적 유산, 사회적 불평등, 문화적 모방이라는 다층적 의미를 가진다. 여행자가 걸을 때마다 계절과 빛, 그림자,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이곳을 떠나며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공간을 설계하는가. 자신의 취향과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타인과의 교류와 교육, 즐거움을 위해서인가. Old Westbury Gardens는 두 가지 모두를 말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바로, 내가 매년 가을마다 이곳을 찾는 이유다. 단풍과 햇빛, 역사와 이야기가 뒤섞인 이곳에서 나는 인간과 문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사소하지만 깊은 성찰을 경험한다.
Old Westbury Gardens는 뉴욕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역사적인 저택과 정원이다. 주소는 71 Old Westbury Rd, Old Westbury, NY 11568이다. 뉴욕 펜실베이니아역(Penn Station)에서 롱아일랜드의 Westbury Station까지는 Long Island Rail Road(LIRR)를 이용할 수 있다. 약 44분이 소요되며, 요금은 오프피크 시간대 기준으로 $7~11이다.
Old Westbury Gardens의 영업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다. 단, 여름철이나 공휴일에는 운영 시간이 일부 변경될 수 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5~20달러이며, 학생이나 시니어는 12~15달러로 할인된다. 어린이는 무료 혹은 저렴한 요금으로 입장할 수 있으나, 연령 제한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차장은 무료로 제공되며, 방문객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Old Westbury Gardens를 방문할 때 주목해야 할 핵심 포인트는 저택 내부 관람과 정원 산책, 야외 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저택 내부에는 화려한 샹들리에와 고풍스러운 가구, 미술품, 도서관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다만 사진 촬영은 일부 구역에서 제한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정원 산책에서는 계절마다 다른 꽃과 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분수와 연못 주변은 휴식과 사진 촬영에 적합한 장소이다. 야외 활동으로는 잔디밭에서의 피크닉이 가능하며, 자연 산책로와 작은 숲길을 탐방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방문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면 Old Westbury Gardens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저택 내부 관람에는 약 1시간이 필요하며, 정원 산책과 야외 활동에는 1~2시간 정도가 적당하다. 총 소요 시간은 2~3시간이면 충분하다. 사진 촬영을 계획한다면 아침 일찍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이때 햇살이 좋아 사진이 더욱 아름답게 나온다. 정원 중심부에서 촬영하거나 벤치, 분수 등을 배경으로 구도를 잡으면 좋다. 옷차림은 정원 산책용 편한 신발을 권장하며, 날씨가 좋은 날에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Old Westbury Gardens 방문 후에는 롱아일랜드의 다른 대저택이나 박물관과 연계하여 하루 코스로 구성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Sands Point Preserve와 Old Westbury Golf & Country Club가 있다. 정원 내부에는 레스토랑이 없으므로, 인근 Long Island 음식점을 방문하거나 가벼운 스낵과 음료를 준비하는 것이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