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행이 한국은 빠르게 뜨고 사라지고, 미국은 느린가

한국은 번개처럼, 미국은 강물처럼: 유행의 속도 차이

by 슈퍼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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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늘 묘한 감각 하나를 안고 살아왔다. 숨만 쉬어도 변화가 느껴지는 나라. 한국이라는 땅에서는 무엇이든 확 하고 떠오르면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지고, 또 그만큼 빠르게 사라진다. 때로는 눈을 깜빡이는 순간에도 유행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끝나버리기도 한다. 한 해, 한 달 단위가 아니라, 때로는 한 주나 하루 만에도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소멸하는 나라, 바로 한국이다.

이 변화의 리듬은 단지 인터넷이나 SNS의 알고리즘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사람들의 표정, 손에 들린 음식, 길모퉁이에 새로 생긴 가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간판까지. 모든 것이 작은 신호처럼 한국 사회 특유의 에너지를 전한다. 사람들은 그 속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어느 순간 가벼운 혼란과 흥분을 느낀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이 변화의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고 느낀다. 유행은 이제 한 계절도 유지되지 못하고, 금세 꺼지는 ‘인스턴트’ 양상을 띤다. 길거리에서 한참 줄이 늘어선 가게가 있었다면, 그 다음 해에는 이미 그 자리에 다른 가게가 들어와 있어도 전혀 놀랍지 않은 시대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향해 빠르게 몰려가고, 또 어느 순간 이전 유행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한 가지가 확 떠오르면 금세 전국적으로 퍼지고, 경쟁과 과잉 공급, 피로감 속에 사라지는, 마치 폭풍처럼 순환하는 것이 한국식 유행의 특징이다.

이런 현상을 가장 쉽고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먹거리다. 최근 몇 년 한국의 간식과 디저트, 길거리 음식, 신메뉴 등을 떠올려보면 그 속도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 달 전에 SNS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간식이, 다음 달이면 이미 새 아이템에 자리를 내주고, 거리 한켠의 가게는 다른 메뉴로 바뀌어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뜨고 사라지는’ 먹거리 유행은 마치 생명을 가진 듯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우리는 어느 순간 이미 뒤처진 기분을 느낀다.

한국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이 속도감, 그리고 그 속도 속에서 느껴지는 긴장과 즐거움, 피로와 설렘이 뒤섞인 독특한 감각. 그것이 바로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다는 것의 한 장면이자, 일상적인 경험이었다.


유행은 늘 빠르게 오고 빨리 지나간다

몇 해 전, 탕후루가 대한민국을 완전히 집어삼킨 적이 있었다. 서울의 주요 거리마다 설탕에 반짝이는 과일이 매달린 모습이 가득했고, 사람들은 손에 하나쯤 들고 다녔다. 마치 탕후루가 한국의 전통 간식이었던 것처럼, 순간 나는 착각할 정도였다. 그 열풍이 한창이던 2023년 무렵, 전국 곳곳에는 탕후루 전문점이 새로 들어섰다. 길게 늘어선 줄은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고, 몇 시간씩 기다려야 겨우 하나를 살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몇 개월 전, 나는 수많은 탕후루 매장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솔직히 놀라지 않았다. 이런 급등락은 한국에서는 너무 익숙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탕후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허니버터칩, 대만 카스테라, 흑당 버블티, 수제버거 붐, 달고나 커피, 대왕 카스텔라 등등. 이 목록은 길게 늘어선 하나의 타임라인처럼, 한국 현대 문화의 지층을 이루고 있다. 각 아이템은 등장과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을 한껏 모았다가, 경쟁과 공급 과잉 속에 사라지고, 또 다른 새 아이템이 그 자리를 채운다.

한국의 유행 패턴은 거의 하나의 공식처럼 보인다. SNS에서 약간의 불씨만 붙어도 순식간에 전국적 현상이 되고, 곧 대형마트와 편의점, 대형 프랜차이즈가 먼저 뛰어든다. 이후 개인 가게들까지 가세하면서 폭발적인 수요가 만들어지지만, 그 끝에는 늘 예외 없이 공급 과잉과 붕괴가 찾아온다. 이 현상은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비즈니스 전반에서 거의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내가 아는 지인 중에는 유행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1~2년 간격으로 계속 바꾸는 사람이 있다. 카스테라, 버블티, 핫도그, 디저트 카페, 배달 전문점까지. 그때마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 반복됐지만, 실상은 거의 동일한 궤적이었다. 초반 반짝 매출, 급속한 경쟁 가속, 마진율 하락, 그리고 철수. 문제는 이 과정이 실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 유행만 잘 타면 된다’는 심리가 실패를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현상은 본질적으로 후행 진입자들의 자기 착취 구조다. 먼저 들어온 소수는 이익을 남기고 떠나지만, 유행의 끝자락에 진입한 다수는 빚과 장비만 남긴 채 퇴장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들은 자신의 실패를 시장 탓보다 ‘내 운영 탓’으로 내면화한다. 구조는 보이지 않고 개인만 남는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이는 창업 시장이 ‘기업가 정신의 장’이 아니라 ‘도박 시장의 외형’을 띠고 있다는 증거다. 다만 카지노와 다른 점은, 이 게임에는 게임 설명서도 없고, 패배 기록도 공개되지 않으며, 운영자의 규칙은 수시로 바뀐다. 그리고 이 구조 속에서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란 종종 분석력이 아니라 뒤늦게 파도에 올라타는 용기를 의미하게 된다.

결국 한국의 유행 시장은 빠른 소비보다 느린 실패를 만든다. 유행은 짧지만, 후유증은 길다. 폐업 이후 수년 간 이어지는 부채, 경력 단절, 심리적 좌절은 SNS에 올라오지 않는다. 대신 또 다른 성공 사례가 피드에 뜬다. 그리고 다음 사람의 투자 버튼이 눌린다.

이 순환 구조는 단순한 사업 실패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경제가 개인에게 리스크를 떠넘기고 성장의 착시만 제공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행을 좇는 시장이 아니라, 구조를 읽는 시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유행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실패는 계속 개인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한때, 도시를 점령했던 공간 ― PC방

내가 학창시절 직접 경험한 사례가 있다. 바로 PC방이었다. 2000년대 초반, PC방은 동네마다 우후죽순 생겨났다. 경쟁이 워낙 치열해, 어떤 곳은 한 시간 이용료가 500원까지 내려간 곳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열풍도 오래가지 못했다. 몇 년 지나자 그렇게 많던 PC방이 하나둘 사라졌고, 그 자리를 커피숍이나 편의점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요즘 한국의 도시를 조금만 걸어도 비슷한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편의점, 카페, 치킨집 간판이 몰려 있고, 동종업체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또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 그 속도감은 단순히 빠른 것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한국 사회와 경제 구조가 이런 변화를 견인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민감하고, 유행에 즉각 반응하며, 경쟁과 과잉 공급이 곧바로 시장에 반영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비즈니스는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한국의 유행과 비즈니스 속도는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기술적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이 속도감은 때로 피로감을 주지만, 동시에 혁신과 새로움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탕후루’가 나타나 사람들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한국의 도시와 삶은, 늘 이렇게 빠른 흐름 속에서 숨 쉬고 있었다.


미국에서 느낀 정반대의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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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 특히 뉴욕에서 와서 가장 놀랐던 점 중 하나는 한국과 완전히 다른 변화의 리듬이었다. 뉴욕은 세계적인 대도시이고, 실리콘밸리만큼은 아니어도 기술 기업도 많지만, 정작 시민의 일상에 적용되는 디지털 서비스 속도는 믿기 어려울 만큼 느렸다.

한국에서는 이미 십수 년 전부터 버스 정류장마다 실시간 도착 안내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느 거리든, 어느 정류장에 서 있든, 몇 분 뒤 버스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뉴욕에 와서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심 한복판의 많은 버스 정류장에는 그런 시스템조차 없었다. 심지어 어떤 곳은 정류장 표시조차 없어서, 어디서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지도 순간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식당 결제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키오스크와 모바일 주문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 즉 서버에게 직접 주문하고 계산하는 방식이 많았다. 기술 자체는 미국이 먼저 개발했지만, 생활 속에 자리 잡는 과정은 한국이 훨씬 빠른 셈이었다.

유행이라는 측면에서도 미국과 한국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미국에도 유행은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처럼 도시 전체가 한순간에 들썩이는 광경을 보기는 매우 드물다. 보통 길거리를 걷다 보면, 특정 아이템이나 간식 때문에 수백 명이 줄을 서 있는 광경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소셜미디어나 지역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될 수는 있어도, 전국적 스케일의 폭발적 유행은 드물다.

뉴욕에서는 변화와 유행이 느리고, 사람들의 반응 속도도 훨씬 완만하다. 대중이 움직이는 속도와 규모, 그리고 사회 전체가 받아들이는 ‘유행의 파급력’이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에서는 작은 불씨 하나에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반면, 미국에서는 지역과 계층, 취향에 따라 조용히 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같은 세계화된 도시라 하더라도, 그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기술이나 경제력이 아니다. 사회 구조, 문화적 민감성, 집단적 심리, 그리고 역사적 경험이 서로 맞물리면서 만들어낸 ‘생활의 리듬’이다. 뉴욕에서는 이러한 느린 리듬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생활하고, 유행과 기술을 자기 템포에 맞춰 받아들인다. 한국과 미국, 같은 현대 도시지만, 그 속도와 감각은 이렇게 극명하게 다르다.


한국은 왜 바쁘고, 미국은 왜 조용해 보이는가

한국은 늘 바쁘다. 사람만 바쁜 게 아니다. 유행도, 뉴스도, 분위기도 늘 전력질주 중이다. 어제의 트렌드는 오늘 낡고, 오늘의 화제는 내일이면 퇴장한다. 겨우 따라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다음 유행이 손을 흔들고 있다.

한국이 빠른 건 유행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유행을 놓치면 사람 취급을 못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빠르다. 이 나라에서 유행은 취향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 가깝다. 무엇을 아느냐는 관심사가 아니라, “너 아직 여기 있니?”라는 출석 체크에 가깝다.

이 속도는 성격이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인구가 조밀했고, 정보는 빨랐다. 조선 시대부터 공동체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굴러갔고, 좁은 땅 위에 사람들이 겹겹이 살아왔다. 그 결과, 집단 반응은 빠르고, 여론은 한 방향으로 쏠리기 쉬운 사회가 되었다.

여기에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교육 체계, 소수의 플랫폼이 전국을 동시에 묶는다. 서울에서 유행하면, 다음 날 지방에 상륙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터진다. 그래서 한국의 유행은 항상 크고, 빠르며, 그리고 빨리 지친다.

한국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사회라면, 미국은 여러 몸이 각자 걷는 사회다. 땅은 넓고, 문화는 다양하며, 지역마다 박자가 다르다. 뉴욕의 유행이 텍사스를 씹어먹지 못하고, LA의 감각이 중부를 지배하지도 않는다. 하나의 유행이 미국 전체를 덮는 일은 드물다. 미국은 한 방향으로 질주하는 열차가 아니라,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자동차들 같다.

문화도 다르다. 미국에는 오래 묵은 ‘덕후 문화’가 있다. 만화, 게임, B급 영화, 언더그라운드 음악 같은 서브컬처는 팬덤 안에서 천천히 발효되듯 성장해왔다. 반면 한국은 오랫동안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뚜렷했고, 유행은 깊어지기보다 번쩍이다 꺼지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한국의 트렌드는 축적보다 폭발에 가깝고, 미국의 트렌드는 유행이라기보다 생활에 가깝다.

여기에 알고리즘이 기름을 붓는다. 이제 유행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고른다. 깊이보다 속도, 맥락보다 자극이 우선이다. 빨리 뜨는 것이 살아남고, 천천히 남는 것은 묻힌다. 한국의 속도는 여기에 더 가속이 붙는다.

그래서 한국은 트렌드를 소비하는 나라가 아니라, 소속을 소비하는 나라가 된다. 유행은 재미가 아니다. 신호다. “나 아직 이 시대에 있다”는 확인 도장이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늘 조급하다.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뒤처질까 봐 바쁘다. 이 나라는 완성보다 다음을 보고, 도착보다 이동에 익숙하다. 그래서 한국인은 늘 가는 중이다. 하지만 머무르는 법은 배운 적이 없다.

반면 미국은 처음 마주하면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기술은 느린 것 같고, 시스템은 구식처럼 보인다. 모바일과 자동화의 나라일 줄 알았는데, 현실에는 여전히 종이 서류와 팩스가 살아 있다. 겉보기엔 2020년대를 사는 나라 같지 않다. 그런데 더 이상한 점이 있다. 사람들이 이 느림에 별로 불평불만이나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편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사회 전체의 분노로 번지지 않는다. 이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미국이 느린 게 아니라, 조심스러운 나라라는 사실을.

한국이 “일단 쓰고 고친다”라면, 미국은 “일단 묻고 나서 쓴다.” 미국은 이 기술이 문제를 만들지는 않을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약자는 보호받는지부터 따진다. 가능성보다 책임을 먼저 묻는 사회다. 그래서 미국은 느려 보인다. 하지만 그 느림은 무능이 아니라 경계심이다. 이 나라는 속도보다 신뢰를, 편리함보다 안정성을 먼저 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 자체는 늘 미국이 주도해 왔다.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세계 기술의 진원지이고,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는 이 나라에서 시작됐다. 그런데도 일상이 느리게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 개발은 빠르지만, 그것을 제도 위에 올리는 일은 극도로 신중하기 때문이다. 연구실에서는 질주하지만, 행정과 법의 문 앞에서는 걸음을 늦춘다. 그 문턱이 바로 미국의 병목지점이다.

이 병목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아니, 일부러 쉽게 풀지 않는다. 정책은 유행처럼 바뀌는 것이 아니라, 약속처럼 다뤄진다. 그래서 한 번 제도 안으로 들어온 변화는 가볍게 되돌릴 수 없다. 대신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 차이는 문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유행을 모르면 뒤처진 사람이 되지만, 미국에서는 그저 관심사가 다를 뿐이다. 유행은 인격을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고, 취향은 입장권이 아니다. 10년째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같은 카페에 앉고, 같은 투표를 하며, 같은 존중을 받는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 왜 아직 그걸 쓰느냐고, 왜 그걸 모르느냐고.

그래서 미국은 조용하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이는 사회라면, 미국은 각자의 박자로 살아가는 사회다. 한국은 그래서 바쁘고 시끄럽다. 미국은 그래서 느리고 고요하다.

그리고 나는 이 고요 속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유행을 몰라도 괜찮다는 것. 따라가지 않아도 밀려나지 않는다는 것.

이 나라는 변화가 없는 곳이 아니다. 다만 변화를 요란하게 만들지 않을 뿐이다. 천천히, 그러나 깊게 쌓아갈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느린 리듬 속에서, 마침내 숨을 쉬기 시작했다.


에필로그: 속도가 아닌 공간

한국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쁠까. 왜 남의 인생을 소비할까. 왜 남의 실패에 안도하고, 남의 성공에 조급해질까.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은 너무 빠르고, 미국은 너무 넓기 때문이다. 빠른 사회는 사람을 달리게 만든다. 멈추면 탈락 같고, 늦으면 끝 같고, 천천히 걷는 순간 무능해질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산다. 속도는 어느새 선물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연료로 삼는다. 누군가의 불행은 나의 안전 신호가 되고, 누군가의 성공은 나의 경고음이 된다. 그 결과 가십은 뉴스가 되고, 루머는 정보가 되고, 타인의 감정은 공공재가 된다.

반면 넓은 사회는 다르다. 여기서 넓음은 땅이 아니라 관심의 거리다. 모두의 삶을 함께 알 필요가 없다. 따라가지 않아도 되고, 평가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미국은 조용하다. 이야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인생은 콘텐츠가 아니라 영역이다. 이건 문화 차이가 아니라 사회가 인간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다.

한국이 속도 위에 사람을 올려둔 사회라면, 미국은 사람 위에 제도를 쌓은 사회다. 그래서 나는 지금 속도가 아니라 공간을 선택하며 산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었다. 몇 개의 콘텐츠를 봤는지가 아니라 몇 번 나를 들여다봤는지가 중요해졌다.

나는 무뎌지지 않기 위해 느려졌고, 잃지 않기 위해 덜 가졌다. 이건 속도 중독 사회에서 가장 적극적인 탈출이다. 이제 나는 안다. 속도는 인간을 살리지 않는다. 공간이 사람을 살린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 덜 바쁘고, 조금 덜 흥분하며, 조금 더 나답게 산다.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매일의 고요로 확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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