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오후,
창문 유리에 빗방울이 미련을 남기며 흘러내렸다.
나는 오래된 머그잔을 쥔 채
몇 번이고 식어가는 커피를 휘저었다.
거품이 사라질 때마다
마음도 조금씩 꺼져가는 듯했다.
멀리서 섬광이 번지고 천둥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를 핑계 삼아 휴대폰 화면을 뒤집는다.
알람처럼 울려대던 메시지들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흰색 배면 위에서 점점 옅어져 갔다.
나는 그 공백이 편안하다고 느꼈다.
밖에서는 누군가가 급히 우산을 펴다가 실패한 듯,
젖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란히 걷는 발걸음 소리가 사이좋게 멀어져 간다.
순간, 오래전 기억이 밀려왔다.
비 오는 날마다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우산을 함께 쓰던
그 시절의 우리.
짧았던 거리보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더 무겁게 남아 있었다.
그날 나는 너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빗줄기가 점점 요란하게 굵어졌다.
나는 끝내 커피를 내려놓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 순간 알았다.
떠난 것은 네가 아니라,
머무르고 싶었던 나였다는 것을.
그때로 돌아간다면
젖은 우산 속에서 나는
너와 함께 나란히 걸을 수 있을까.
차가운 빗물이 스며들며
서늘하게 피부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