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질감

by 미온



오래된 골목에 놓인 낡은 건물과 빛바랜 간판을 보면,

되감아진 시간 사이로 문득 어린 시절의 공기가 떠오른다.


가끔은 아주 멀리 걸어온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그때의 자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채

세월의 주름만 늘어난 기분이 든다.

시간이 흘렀어도 그 시절의 감각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작은 방에서 혼자 일기를 쓰곤 했다.

또래 아이들이 방과 후 문방구에 들르거나 떡볶이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

나는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썼다.


무엇을 쓰는지도 정확히 몰랐지만,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마음에서 배어 나온 단어의 조각들이 얽혀 시가 되기도 하고,

내면에 깊숙이 박혀있던 돌 같은 실체가 문장으로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었다.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냥 외로움이었다.

나와 같은 존재는 하나뿐이라는 유일함을 아직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였다.


오늘처럼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순간도 어딘가 모르게 그때와 닮아 있다.

사람들 틈에 앉아 있어도, 함께 웃으며 떠들고 있어도

어디선가 익숙한 바람의 감촉이 스며든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같은 질감을 가진 채 이어져 온 오래된 바람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감각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는 것일까.

홀로 서 있을 수 있는 내부의 무게가 생겼다는 것.


나는, 우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방향을 모른 채 걷는 것 자체가 나이고, 삶인지도 모른다.

같은 감각을 지닌 채 다른 시간을 지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오늘처럼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싶을 날에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우리는 지금,

멈추지 않고 걷고 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