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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Feb 08. 2022

민주주의 이야기

  



  사람들과 싸웠다. 같은 공동체 사람들끼리,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끼리.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정의 존재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라서 수많은 판단과 선택이 감정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똑같은 컵을 가지고 있어도 내 컵이 더 멋지다고 생각하고, 똑같은 차를 갖고 있어도 내 차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하다못해 내가 접은 종이학은 종이학을 만들지 않은 사람이 매기는 값보다 더 비싸게 매긴다고 한다. 내 것이 더 좋다는 생각, 내 결정이 더 옳다는 생각. 이러한 감정들 속에 우리는 살아간다.



  사람들과 싸우기 전에는 사람이 감정의 동물이라는 것을 몰랐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토론하면 만장일치까지는 아니어도 다수를 내 생각대로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오만이었다. 내 논리만 맞다는 보장도 100% 확신하기 어렵고, 설사 내 논리가 맞다고 해도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체에 나의 기대심이 들어간 것이다. 내 논리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도 나의 감정이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실망하고 힘들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조직은 원칙과 절차를 만들어 놓는다. 사장 말이 전부인 회사가 아니라 공동체나 비영리 조직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회사에서는 부하 직원들이 사장님 앞에서 자유롭게 토의하기가 어렵지만 민주적으로 운영하려는 조직에 원칙과 절차는 매우 중요하다. 이번에는 이렇게 결정하고 다음에는 다르게 결정하는 일들이 반복되면 구성원 간 신뢰와 애정이 떨어지고 분열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일해봤자 원칙 없이 결정들이 이루어지면 굳이 철학과 애정을 가지고 조직을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학교에서도 교장 마음대로 학교를 좌지우지 못하게 하는 노력들이 있다. 보다 혁신적, 민주적인 교육을 위해 많은 혁신학교들에서는 '다모임'이라고 불리는 전체 회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언제나 장점만 있는 일은 없으니 긴 토의 과정을 통해 서로의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물론 현실은 회의를 싫어하는 교사들의 어두운 표정이 대부분이다. 그들을 살펴보면 나이도 경력도 상관이 없다. 이는 자신들의 생각이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건강한 토론문화에 낯설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회의 결과들이 받아들여지는 성공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회의에 대한 피로감, 칼퇴근을 하지 못할 것만 같은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교장, 교감의 '입 꾹 다뭄'이 필요하고, 전체 교직원 숫자가 30명을 넘어서면 안 된다는 전제조건이 있긴 하다.



  회사 생활을 해보지 않은 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잘 모른다. 세상은 민주주의는커녕 온통 갑질과 폭력으로 뒤덮여 있는 냉철한 곳일지도 모른다. 신문 기사에서 만나는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지옥일 때가 많으니까. 하지만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가? 우리가 비민주적인 조직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인간이 감정의 동물이라고 해서, 좋은 게 좋은 거라서, 우리는 싸움을 포기하고 평화로 위장된 결정들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무엇보다 세월호를 보내온 어른으로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세상을 바꿀 책임이 우리에겐 있다. 학교든 공동체든 어떤 조직에서든 원칙과 절차, 구성원의 합의, 배제 없는 토론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이다. 사람들과 싸우고 지쳐 떨어진 지금의 나도, 시간이 지나고 치유가 끝나면 다시 툭툭 털고 원칙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눈물 좀 닦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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