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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Jan 19. 2022

공동체

공동체?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동체라는 단어가 참 낯설 것이다. 나도 그랬다. 아파트에서 자라며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부모님 얼굴도 본 적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간 적들은 있지만 어릴 적이고, 드라마 응답하라에서처럼 동네에서 서로 반찬을 나누거나 밥을 함께 먹는, 허울 없는 사이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만 같다.


  그런데 나처럼 그렇게  삼십  전후의 어른들을 아이를  키워본답시고 과연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임의로 묶을 수가 있는 걸까. "어이, 우리 이제부터 공동체 합시다. 우리는 그러기로 했어요. 그러려고 모인 자리지요,  !" 이렇게 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해보면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 같다. 이 사람을 사랑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 맞는가. 이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정했지만 헬조선의 현실에서 아이를 가지는 것이 맞는가. 헬조선에서 아이를 낳기는 했는데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면서 스카이 대학과 대기업에 취업시키면 되는 것인가. 대기업을 들어가더라도 40살 전후로 잘리게 될 텐데 굳이 대기업 바늘구멍에 들어가야 하는가. 대기업을 가더라도 미생과 같은 현실일 테니 그렇다면 아이를 인종차별을 겪더라도 유학을 보내야 하는가. 유학을 다녀오더라도 고 스펙을 가지면 오히려 취업이 어렵기도 하다던데 그 확률 낮은 싸움을 위해 기나긴 여정을 떠나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정을 출발하면 아이가 성공할 삶을 살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인가.

 

  이렇게 계속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변수와 걱정거리들이 많으니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려고 보면 결국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는 목표로 정리된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

  어떻게 사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일까? 부모인 나도 행복하다고 감히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이의 행복한 삶을 어떻게 내가 가이드해 줄 수 있을까?

  난 적어도 뉴스에 나오는 그런 끔찍한 일들만은 겪지 않게 해주고 싶다. 깊은 우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여 혼자서 너무 오랫동안 외로워하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삶으로 살게 하고 싶지는 않다. 행복하게 산다는 건 돈이나 사는 동네, 학벌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아이가 행복하게 살려면 아이가 좋아하는 일이나 잘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기쁘게 삶을 살아내길 바란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존중받고 지지받으면서 살면 좋겠다.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면 더 좋겠지.


  

울타리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의 건강과 행복은 부모가 전부 책임질 수 있는가. 부모로서 내가 아주 부단히 노력한다면 스무 살 정도까지는 우리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사랑을 받고 자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주 내가 훌륭한 부모가 된다는 가정하에. 그러나 그것이 과연 쉬울까? 하루에도 몇 번씩 부족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그리고 세상에서 부조리한 일들이 판을 치는데, 아이는 부모만의 울타리에서 고이 잘 자랄 수 있는 걸까?

  


  내 자식이 어른인 나 한 사람의 부족함에 질리지 않도록 다양한 멋진 어른들, 다양한 부족한 어른들을 고루 관찰하며, 그들에게 고루 지지받고, 때론 질책받기도 하면서 컸으면 하는 바람이다. 형제를 옛날처럼 여러 명 갖게 해 줄 수 없어서 더욱 그렇다. 대기업 다니는 삼촌부터 농사짓는 이모, 돈 안 되는 제로 웨이스트 샵을 여는 이모들과 동네 책방을 운영하며 독서모임을 여는 삼촌. 추운 겨울 거리에 나가 백신 패스를 반대하는 친구들과 기후 위기에 맞서 싸우자는 선배들. 주식과 부동산을 열심히 공부하며 투자하는 이모들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이웃에서 보고, 듣고, 이야기 나누게 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다. 술 먹고 사고 치는 못난 동네 형, 가족끼리 매일 화내고 싸우는 이모, 그렇지만 자기들의 영역에서 자기들의 말을 하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을 가까이서 눈 맞추고, 말하고 들으며, 80년대의 쌍문동처럼 밥을 얻어먹으며, 서로 반찬을 나누며, 그렇게 배우며 살아가게 하고 싶다. 그래서 공동육아를 하는 공동체를 선택했다. 선택이라는 말이 슬프지만 미래에는 다시 예전의 한국  사회처럼 공동체가 강해져서 선택할 필요도 없어지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리고 나도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좀 덜 무거운 어깨를 가지고 멋진 어른이 되기를 다짐하며. 주변 친구들과 하하 호호 울고 웃으며 삶을 성장시켜 가기를. 혼자가 아니라 덜 외롭게 더 행복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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