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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Dec 22. 2022

할 수 있는 일

 


  아빠가 아프다. 처음에는 감기 몸살이 온 줄 알았다. 밥을 적게 먹고 누워서 쉬면 좀 낫겠지 하면서 하루 한 끼 정도 식사를 하며 버텨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쉬이 낫지 않고 점점 기력이 쇠해졌다. 병원에 가라고 해도 고집을 피우던 아빠는 마침내 나와 남편의 부축을 받아 동네 중형 병원 응급실에 갔다. 아빠를 데리러 갔을 때 아빠는 잠시도 서있지 못하는 정도의 상태였다. 이 정도가 될 때까지 병원도 안 가고 뭐 했냐고 화가 치솟았다. 그 화는 아빠를 향한 것이기도 했고 엄마에 대한 원망이기도 했으며 옆에 살면서 애써 들여다보지 않았던 나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아빠는 여러 날동안 응급실, 중환자실, 일반 병동으로 침대를 옮겨 다녔다. 수많은 바늘과 검사들, 흰 병원 천장과 소음을 내는 기계들을 마주했다. 수시로 들락거리는 간호사들의 분주한 손들과 만났다. 이름 모를 호스들과 함께했다.



  열흘이 지나고 류머티즘 근육 염증이 의심이 된다며 더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병원을 알아보았다. 수십 통의 전화를 돌린 뒤 우리는 응급차를 타고 더 큰 병원으로 갔다. 거기서도 응급실, 감염병동, 류머티즘 병동으로 아빠의 침대는 옮겨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 출근길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정신이 또렷할 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하라고 한다. 심장이 뛰었다. 급히 병원에 가서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병원이 지겹다, 죽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곧 있을 여동생의 결혼식은 당연히 가지 하였다.



  아빠를 중환자실에 들여보내고 의사는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하였다. 잘 회복될 수도 있지만 많이 어렵다고 하였다. 폐렴과 류머티즘 근염, 기도삽관은 치료법이 상반되어 그렇다는 것 같았다. 숨 쉬는 근육, 음식을 삼키는 근육, 가래를 뱉어내는 근육, 폐의 근육들이 염증을 이기고 자기를 공격하지 말고 자기 힘을 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밥은 먹으러 가도 될까. 물은 마셔도 될까. 아이 냄새를 맡으며 행복해해도 될까. 출근해도 되는 걸까. 내일이라도 당장 휴직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따뜻하고 편한 침대에서 잠을 자도 되는 걸까. 모두 하면 안 될 것만 같다. 울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영화 헤어질 결심의 서래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죽은 남편이 산 노인을 돌보는 일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서래의 목소리가 나를 깨운다. 너의 할 일을 하라. 아빠가 죽었다는 말이 아니다. 다 끝난 것도 아니다. 의식불명 상태의 사람들도 깨어나는 판국에 아빠는 충분히 괜찮다. 기도삽관을 하여 말은 못 하지만 의식도 또렷하다. 무엇보다 아빠에게는 동생 결혼식에서 함께 입장해야 하는 삶의 이유가 있다. 나는 의료진들을 믿고 빌고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일상을 잘 살면 된다. 아빠도 그것을 원할 것이다. 내 일들도 충분히 가치로운 일들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뛰어다니며 물건을 흘리는 간호사들 사이에서 우리는 매의 눈으로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할 일을 믿어야 한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겨낼 아빠의 할 일을 믿어야 한다. 피곤하고 힘들지만 또렷한 의사들의 지식을 믿어야 한다. 의사, 간호사들 이외에도 청소해주시는 분들, 조무사님들, 침대를 옮겨주시는 분들 등의 할 일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서 기적을 바란다.



  마음을 붙잡고 일상을 살아본다. 그러나 매일 음식을 먹을 때면 계속 아빠 생각이 난다. 잠이 들 때에도 생각이 난다. 아빠가 우동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기계 소음 없이 잠을 푹 자고 싶다고 했는데.



  온 우주야, 아빠를 도와라. 아빠의 세포들을 도와라. 의지를 꺾지 않게 만들어라. 끈질기게 만들어라. 기도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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