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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Feb 01. 2023

영실 바람이 보내는 편지

  바람이 많이 부는 놀이터는 제주도 영실고개 같다. 나는 지금 제주도에 있지 않지만 마치 그곳에서 바람을 맞으며 걷는 사람처럼 마음을 내뿜어 낸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에 놀이터를 걷다 보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 풀린다. 그리고 그 뻥 뚫리는 느낌에 집중하려고 아무 생각 없이 마구 걷다 보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다. 평소에는 잘 가지 않던 집 옆 산에 가도 그렇다. 산 입구에만 도착해도 가슴이 뚫린다. 산에서는 많이 걷기는 힘드니까 서다 가다 한다. 산에서 부는 바람은 소리가 아주 좋다. 바삭하게 마른 나뭇잎들이 조금씩 흔들릴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느 할리우드 배우의 인터뷰 장면을 봤다. 우울감은 몸에서 깊은 휴식을 하라고 보내는 신호와 같은 것이라서 우울감이 오면 깊이 쉼을 갖는단다. 그러면 좋아진다고 한다. 일단 적어도 나는 내가 우울하다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는다. 여러 가지 상황들이 힘든 상황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다만 영어 공부를 하거나 하루 계획표를 작성하는 등 오랫동안 반복했던 일상을 넘겨버릴 때가 많아지는 것 같아서 마음에 조금 걸리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고 있다. 


  산과 놀이터를 걷는다는 것은 아무튼 좋은 신호다. 몸에서 쉼을 가지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다. 걷기에 몰입하면 잡생각이 조금 줄어드니까.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답답함과 무력감이 잠시 안 느껴지니까. 그리고 걷는 동안 귓가에 스치는 세찬 바람 소리가 병원 안에 누워있는 아빠에게도 가 닿기를 바란다. 

 

  아빠, 이렇게 바람이 세게 불고 있어. 이번 겨울이 춥다. 병원에 있어서 따뜻하지? 얼른 일어나. 그리고 세찬 바람 쐬고 가슴 뻥 뚫리자. 


  제주도 영실 고개에서부터 불어온 바람아, 우리 집을 지나, 아빠가 오르던 산을 지나, 아빠가 있는 서울의 병원까지 가라. 그리고 병원 창문 틈에 들어가 아빠의 귓속에 가라. 수면제로 자고 있는 아빠에게도 소리는 끝까지 힘이 세다고 하니 가서 전해줘라. 그러면 아빠가 들을 거야. 그리고 힘을 내겠지. 그런 다음 제주도에 다 같이 가서 함께 바람을 맞자. 뻥 뚫리는 마음을 다 같이 느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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