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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Feb 28. 2023

비명


아빠가 비명을 지른다.

중환자실에서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 몇 달 동안 지르고 있다.

가래를 빼주러 목 안의 관에 호스를 깊게 넣을 때, 기관지 내시경을 할 때, 몸의 욕창들이 고통스러울 때, 큰 주삿바늘이 큰 혈관을 찾아 움직일 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얼굴은 빨개지고 몸은 굳는다.


차라리 수면제가 세게 들어가고 있어서 눈 맞춤을 할 수 없었을 땐 마음이 더 편했던 것 같다. 수면제가 들어가도 귀는 들린다고 하니 면회시간 20분 동안 랩을 하듯이 쉬지 않고 근황을 말하곤 했다.

오늘은 몇 월 몇 일이야. 날씨가 많이 풀렸어. 아직 바람이 세긴 한데 기온이 많이 올랐어. 이제 봄이 오려나 봐. 오늘은 다행히도 병원 주차장에 차가 덜 막혔어. 어제 병원 옆 시장에 갔었는데 귤이며 채소가 엄청 싸더라. 집에 사가지고 가서 아이랑 먹었어. 할아버지 빨리 나으라고 기도 많이 하고 있어. 할아버지 나으면 놀이터에서 잡기 놀이 할 거래. 신나서 말하더라. 봄이 오고 따뜻해지면 얼른 나아서 공원에 가자. 예전처럼 거기서 치킨도 시켜 먹고 컵라면도 사 먹자.

이렇게 말해도 아빠는 여전히 천장만 쳐다보며 잠을 자고 있었는데.


수면제를 줄인 아빠는 나를 쳐다본다. 눈으로도 비명이 들려 나는 더이상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다. 찡그린 표정과 슬픈 눈빛. 입으로 오물오물 말하지만 못 알아듣는 나. 말하기를 시도하다가 답답해져서 삐져버린 아빠.


깜깜한 이 밤 내가 집에서 편히 쉬고 있는 지금도 아빠는 관과 호스들에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밤이 돼도 불이 꺼지지 않는 중환자실에서 아빠는 전쟁 중이다. 난 고작 잠깐의 면회 시간 동안 아빠가 고통스러워 한 걸 본 게 뭐라고 이러는지. 마음 아파해도 안 될 것 같다.


가래를 좀 덜 자주 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시경을 덜 자주 해도 되면 좋을 텐데. 그냥 아빠가 누워서 고통 없이 편안히 치료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헤어짐을 직면해야 할 것 같다. 아빠, 죽고 싶어? 물어봐야 하는 때가 오고 있는 것 같다. 차마 묻지 못했던 말들을 아빠를 위해서 꺼내 놔야 할 것 같다. 교수님이 인공호흡기를 떼는 걸 생각해 보라고 했을 때 내 입장만 생각했던 것 같아서 미안하다. 아빠 입장으로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직면하자. 미련과 두려움을 깨 부수자. 이렇게 여기에 글이라도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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