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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Apr 09. 2024

'내 자식 상처는 내가 막는다'라는 착각

학부모 상담주간을 맞이하며

  요즘은 용어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학부모에서 보호자로, 보호자에서 양육자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양육자’들에게 아이의 발달에 관한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감정 조절을 잘 훈련해 왔다.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동생과 그에 맞서 폭발하는 아빠 사이에서 중재자 노릇을 많이 해왔다. 그래서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쉽게 ‘똥이다’ 생각하고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편이다.


  물론 아직까지 뉴스에 나오는 최악의 진상 민원은 받아본 적이 없기도 하다. 또한 평소에 성평등, 동성애 등의 이슈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에는 나도 많이 긴장된다. 오늘 내가 하는 멘트가 내일 우리 학교 교문에서 나를 끌어내라는 마이크 방송 부대를 부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가르친다. 그러나 최근 경제 공부를 조금씩 하면서 ‘잘리면 잘리는 거지, 사업을 시작하면 되지.’라는 막연한 자신감은 생겼다. 물론 잘리면 당장 생계가 타격을 입지만 마음만은 그렇다. 그래서 예전보다는 강해졌다.


  극우단체의 동성애 혐오는 일단 제쳐두고 평소 만나는 양육자들만 살펴보자. 양육자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반에 한 두 명씩 자기 자식만을 솜털처럼 보살피고 싶어 하고 세상으로부터 하나의 상처도 받지 않게 감싸려고 하는 양육자들이 있다. 가끔 있다. 그들은 착각을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식과, 그의 가족과, 자기 자신을 망친다. 얼마 전 본 릴스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길, ‘방어기제를 낮추어 상처를 많이 받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오히려 배우고 성장하고 클 수 있다. 갑각류가 상처 난 허물을 벗고 몸이 크는 것처럼.’이라고 하였다.


착각들

  ‘자녀’가 상처를 받는 것은 ‘자신’이 상처를 받는 느낌이 드는 착각. 양육자가 칼과 방패를 휘둘러 ‘솜털 같은 우리 아이를 영원히 솜털 같은 상태’로 ‘내가 최대한 싸워주는 것’이 진정으로 아이를 ‘지키는 것’이라는 착각. 평소에 진정으로 아이를 관찰하고, 아이를 위하지는 않으면서 자기 기준에 상처를 받는 경우에만 나서서 전사처럼 아이를 ‘구한다’. 평소에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마치 쇼핑처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만 같은 자기 합리화. 물건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돈을 쓰고 물건을 사대는 쇼핑 중독자들. 물건을 샀으니 또는 물건을 (너에게) ‘사주었으니’ 나의 도리는 어느 정도 다했다는 착각.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화가 치미는 착각이다. 울화가 치민다. 애들을 방치하고 학대하는 것 같다.


  한동안은 이런 것들이 내 안에 분노로 쌓여 힘들었다. 하지만 나도 이제 예전보다 화가 줄었다. 네 인생은 네 인생, 네 자식은 네 자식, 모두 한 마음 같을 수는 없다는 나의 깨달음. 그리고 그들에게도 언젠가는 깨달음이 오기를 바라면서.


  세월호 10주기가 다가온다. 세월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다시 영상을 찾아본다. 무책임들과 ‘괜찮겠지’들이 쌓여 터진 세월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력감을 벗어나 작은 씨앗들을 뿌리는 일이다. 방어 기제가 센 양육자들은 내가 좀 달래주고, 공감해 주고, 용기를 주는 일. 공부만 잘하고 도덕성이 낮은 아이들에게는 가르치는 일. 올해의 문제 학생, 문제 양육자들이 내년의 담임을 만날 때는 조금 더 너그워지기를 바란다. 잠시 나를 버리고 그들에게 힘을 주는 상담주간. 모든 교사들 파이팅이다. 물론 진상을 만나면 나를 지키기 위해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깔아 두고. 뉴스에 나오는 진상들에게는 쌍욕을 날려주며.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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