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독인다
12월 초 달리아 꽃이 폈다. 남들은 꽃이 다지고 뿌리를 월동시키기 위해 캐내는 시기에 나의 베란다 화분에 있는 달리아가 꽃을 피웠다. 쌀알만 한 꽃봉오리가 맺히고 꽃을 피우기까지 보름가까이 걸려서 첫 꽃봉오리가 터졌다. 봉오리가 맺히는 걸 본 후 이제나 저제나 피려나 오매불망 기다렸다. 행여 물 주는 시기를 놓쳐서 꽃눈이 마를까 노심초사했다. 빨갛다고 해야 하나 검붉다고 해야 하나 꽃의 색이 묘하다. 꽃잎은 겹겹이 포개진 겹꽃이었다. 그다음 꽃은 수 일 후 홑겹의 노란 꽃이 두 송이 정도 피고 졌다. 꽃씨부터 키운 아이라 애정이 남달랐다. 올해 꽃을 볼 것이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뿌리가 감자처럼 커지는 구근 식물이라 올해는 꽃을 못 볼 줄 알았다. 노지화단도 아니고 더군다나 베란다 화분이라 더더욱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꽃까지 펴주니 너무 기뻤다.
작년 봄에 달리아와 비단향꽃무, 천일홍등등 그동안 모아 온 꽃씨를 파종해 모종을 키웠다. 비닐하우스 같은 시설에서 충분한 햇빛을 받으며 튼튼하게 자라면 좋겠지만 베란다에서 키우는 것이라 웃자람이 심했다. 단단하게 커야 밖에 내다 심어도 잘 자랄 텐데 싶은 걱정에 화단에 심을 시기가 와도 선뜻 심지 못했다. 충분히 해를 보지 못한 새싹들은 점점 더 웃자람이 심해져 드러눕기까지 했다. 연약한 줄기가 젖은 흙에 닿으면 녹아버렸다. 아무래도 이래서는 노지 화단에 나 기기도 전에 베란다에서 다 죽을 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잘못 키우면 어차피 죽을 건데 걱정하지 말고 그냥 심기로 맘먹었다. 노지 햇빛에 서서히 적응 시간을 두고 일부 몇 개만 남기고 화단에 심었다. 적응 시간을 두었어도 너무 강한 햇빛에 타버린 아이도 있고 과습에 녹아 죽는 아이도 있었다. 그나마 좀 강한 녀석은 새잎을 내주기도 하고 제일 먼저 나온 떡잎들이 연두색에서 진한 초록으로 바뀌면서 단단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잘 자라던 아이들도 미쳐 꽃을 피워보지 못하고 더위와 장마에 다 녹아 없어졌다.
나의 지각 달리아 늦게나마 꽃을 피우고 진 달리아 화분의 구근이 얼마나 컸을까 궁금해졌다. 월동을 하려면 잘 말려서 보관을 했다가 봄에 심어야 하니 흙을 파보았다. 손가락만 한 길이에 두께는 작은 크기의 감자만 하게 굵어진 뿌리가 여러 개 나왔다. 깨알만 한 꽃씨 한 알이 이렇게 큰 뿌리가 되느라 줄기가 부실했구나 싶었다. 구근을 캐고 보니 달리아가 더 대견했다. 올해는 햇빛 좋고 영양가 많은 흙에 꼭 심어주겠다고 맘을 먹다가도 걱정이 앞선다. ‘베란다는 매일 볼 수 있는데 주말 농장의 화단은 매일 가볼 수가 없어서 관리를 못해 죽으면 아까워서 어쩌지?’ 하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둘째 딸이 생각났다.
둘째 딸이 올해 대학을 간다. 학교가 멀어서 기숙사를 들어가야 하는데 두어 달만 더 끼고 있으면 떠난다는 생각과 혼자 괜찮을지 걱정에 울컥해졌다. 처음도 아닌데 잘할 것을 알면서도 큰아이 때 겪어놓고 또 걱정이다. 어느새 커서 내 품을 떠난다 생각하니 서운하다.
씨앗 한 알을 심었는데 큰 뿌리가 되고 꽃을 피웠다. 더 좋은 곳에서 무럭무럭 자라 더 크고 예쁜 꽃을 피우라고 더 큰 세상으로 보내줘야 하는데 걱정이 되어 보낼 수가 없다. 꽃도 아이도 걱정이 된다고 세상이 위험하다고 평생 보듬어 키울 수만은 없는 일이다. 잘하고 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사랑으로 믿고 지켜봐 줘야 한다. 잘할 거라고 걱정 말라고 나를 다독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