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 살로메 Apr 09. 2024

뮤지코필리아

음악적인 너무도 음악적인 인간


예전에 한 구립요양원에 방문했을 때 만난 치매 어르신이 생각난다. 유독 노래를 좋아하는 어르신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노래 가사와 리듬, 음을 정확하게 기억하였고 그 노래를 반복하여 불렀다. 나는 그 어르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뇌의 인지기능에 이상이 생겨도 또렷이 음악(노래)을 기억해 낼 수 있는 힘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하였다. 어르신은 밝은 노래뿐만 아니라 (아마도 추측컨대) 유년시절 또는 고향에 얽힌 어떤 노래도 불렀는데 그 노래를 할 때면 


‘갑자기 이 노래를 부르니 왜 이렇게 슬프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려고 하지.’ 


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그때 본능적으로 어르신께 슬프면 우시라고 우셔도 된다고 이야기했고 옆에 있던 어떤 분은 이 어르신은 오늘 너무 많이 우셨다고 이제 그 노래를 그만 불러도 된다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뇌과학자도 의학자도 아니었지만 우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분이 잠시나마 어떤 시절을 어렴풋이 느낀다는 것이 감사하고 고귀하게 느껴졌다.


올리버 색스의 이 책, 특히 ‘음악과 정체성: 치매와 음악 치료’ 챕터를 읽으면서 그 어르신 생각이 많이 났다. 그분은 요즘도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며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까. 나 또한 큰 이변 없이 평균 수면까지 생존한다면 어떤 노인의 삶을 살아갈지 알 수 없으므로 나는 그분을 종종 생각하게 된다.

올리버 색스의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육체적 한계와 절망 가운데에서도 많은 희망을 보았다. 어떤 질병에 걸리더라도 비록 육체와 마음이 노쇠하고 인지력이 떨어지고 그리하여 모든 기능이 퇴화할지라도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고유한 정체성. 우리 사회는 얼마나 노인들의 정체성에 관심을 가지며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의 노인 복지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답답해진다. 


* 코로나 재확진에 걸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덕분에 새벽에 일어나서 책 리뷰를 남긴다.



<넘기지 못한 페이지>


p.525 음악을 알아보고 감정을 느끼는 데 반드시 기억이 동반될 필요는 없으며, 친숙한 음악이 아니더라도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 나는 중증 치매 환자들이 예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거나 몸을 떠는 광경을 자주 본다. 그들도 우리처럼 다양한 감정의 폭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치매는 적어도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에는 풍부한 감정을 느끼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와 같은 반응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치매에 걸린 환자에게도 음악을 통해, 오직 음악만을 통해 불러올 수 있는 자아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것이다.


음악 지성과 감수성에 관여하는 특정한 피질 부위가 물론 존재하며, 이 부분이 다쳐서 일어나는 실음악증도 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정서적 반응은 광대하고 포괄적이어서 피질은 물론 하부 피질까지 뻗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알츠하이머 같은 미만성瀰漫性 피질 질환에 걸려도 여전히 음악을 지각하고 즐기고 반응할 수 있다.


심층적인 수준에서 음악을 즐기고 반응하기 위해 반드시 정해진 음악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은 딱히 ‘음악적’일 필요도 없다. 음악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며, 음악이 고도로 발달하고 높게 평가되지 않은 문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음악이 일상에서 하찮게 간주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라디오 스위치를 켰다가 끄고, 곡조를 흥얼거리고, 발을 구르고, 기억을 더듬어 옛날에 들었던 노래 가사를 찾고, 그리고 잊어버린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이들에게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에게 음악은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며, 적어도 잠시나마 그들에게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해주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뮤지코필리아 ㅣ 올리버 색스 -



매거진의 이전글 내 몸이 불안을 말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