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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필 Jul 25. 2022

<심장소리> 우울한 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

#8 이창동, 심장소리(2022)

※ 이 글을 포함한 모든 글은 알게 모르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법 활기찬 어느 오후의 수업 시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철이(김건우)의 표정이 어딘가 불안합니다.  옆자리 아이에게 휴대폰을 빌려 다급히 전화를 걸어보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고 철이의 얼굴은 점점 굳어갑니다. 화장실을 간다던 철이가 갑자기 신발을 갈아 신더니 선생님의 부름에도 학교 밖을 향해 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어딘가를 향해 숨차게 달려갑니다.



우울한 엄마, 불안한 아이

철이의 아빠(설경구)는 노동자에 대한 부당 대우에 항의하며 타워크레인 위에서 외로이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철이의 엄마(전도연)는 그런 상황 속에 우울증을 앓게 되죠. 철이의 달음박질에는 엄마가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납니다. 아침에 엄마가 유서 같은 것을 쓰는 걸 봤거든요.


영화의 시작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카메라는 철이의 얼굴을 마주 보는 형태로 철이의 동선을 따라갑니다. 철이의 불안한 얼굴과 가쁜 숨소리가 극장 안을 가득 채우죠. 누군가의 시야는 그 사람이 세계를 이해하는 크기라고 했던가요. <심장소리>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시야는 상당히 제한적인데, 연락이 안 되는 엄마를 향해 달려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철이 또한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 너무 작습니다.  엄마의 안녕을 확인하려 부단히 달려가는 철이의 얼굴은 화면 안에 갇힌 듯이 갑갑하고 이는 답답한 철이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무관심은 사회를 잠식한다

<심장소리>에서 철이와 철이의 엄마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물이 화면에 온전히 담기지 않습니다.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목소리와 화면 한 켠으로 보이는 어른들의 얼굴은, 언뜻 우리들목소리와 얼굴처럼 보입니다.


어른들의 목소리는 철이에게 뛰지 말라는, 앞을 잘 보고 다니라는, 마스크를 잘 챙겨다니라는 훈계의 목소리로 전해집니다. 철이에게 어디를 가냐고 묻는 몇몇의 질문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그것이 진실된 관심 없이 습관적으로 행해지는 질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철이가 진정으로 도움을 요청할 때는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경찰도 경비도 사무적인 느낌으로만 아이를 대할 뿐입니다. 엄마가 죽는다고 119를 불러달라는 철이의 읍고(泣告)에도 아파트 주민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애꿎은 철이의 집안 사정만 이야기하며 혀를 찰뿐이죠.


일을 해결하려 하는 것고사리 같은 손을 가진 그저 작고 어린 아이들입니다. 철이는 문을 열어준 옆 집 아이의 도움으로 베란다 난간을 타고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두고 간 철이의 신발을 챙겨주는 것도 옆 집 아이였어요.



당신은 손을 내밀 수 있나요?

<심장소리>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해 보입니다.

과연 우리 공동체사회적 문제와 우울증으로 인해 흔들리는 가정의 불안한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요? 철이가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응시하던 광고처럼 '행복은 가족 안에 있다'며 모든 책임을 각 가정에게 전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아이와 엄마가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을 때, 시종 아이의 얼굴만을 비추던 카메라는 엄마의 얼굴을 비춥니다. 카메라의 이동을 통해 아이의 모든 긴장과 불안이 엄마에게로 옮겨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 철이 집안의 문제는 가족 내에서만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반응은 타워 크레인에 올라간 철이의 아빠에게 쏟아지는 시선처럼 차고 메마르기만 합니다.

스크린에 가득 찬 철이의 얼굴 주변, 외화면에서 들리는 타자의 목소리는 무관심과 핀잔에 그치고, 누구도 진심 어리게 화면 안으로 들어와 적극적으로 철이를 돕지 않습니다.


우울증에 고통받는 가정과 사회적 약자 층이 겪는 세상과의 단절 사이를 헤집고, 당신은 화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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