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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필 Aug 08. 2022

<토니 타키타니> 인간은 끝끝내 외롭다지만

#10 이치카와 준, 토니 타키타니(2004)

※ 이 글을 포함한 모든 글은 알게 모르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토니 타키타니(오가타 이세이)는 타키타니 쇼자부로의 아들로, 토니의 어머니는 토니를 낳은 지 3일 만에 죽는다. 게다가 쇼자부로는 전국으로 유랑을 다니는 재즈 뮤지션이었기에 토니는 어려서부터 부모와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했다. 또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기에 토니는 항상 혼자였고 외로워도 외로운 줄 모르고 살았다. 미술에만 빠져 지내던 토니는 '기계'와 관련된 작업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성장하였고 제법 풍족한 삶을 산다.

토니 타키타니(오가타 이세이)

그러던 어느 날, 번듯하지만 공허한 토니의 삶에 에이코(미야자와 리에)가 등장한다. 자신의 원고를 수령해가던 업체의 직원인 에이코의 불가해한 매력에 빠진 토니는 진심 어린 구애 끝에 에이코와 결혼하게 된다. 끝도 없는 외로움 에 만난 에이코와의 행복이 행여나 떠나갈까 잠시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내 토니는 에이코와의 결혼 생활에 안정감을 느낀다.


완벽한 에이코의 단점이라면 옷을 많이 사도 너무 많이 산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옷을 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에이코의 구매욕은 심해지고 사 모은 옷들이 너무 많아져 옷방을 따로 개조하기까지 한다. 묵묵히 지켜보던 토니는 에이코에게 옷을 그만 살 것을 권했고, 에이코 역시 토니를 사랑했기에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에이코는 결국 옷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고, 반품한 옷을 다시 찾으러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해 죽는다.

에이코(미야자와 리에)

에이코가 떠난 뒤 너무 괴로웠던 토니는 결국 신문에 에이코와 똑같은 치수를 가진 여성을 찾는 광고를 내게 되고, 얼굴도 몸도 에이코와 똑같은 히사코(미야자와 리에)가 토니를 찾아온다.



공허한 자아와 결핍의 굴레


토니 타카타니는 어려서부터 결핍이 삶에 차곡차곡 쌓인 인물이다. 그의 유년 시절에 부모도 의지할 어른도 없었다. 대학시절에도 친구들의 정치니 사회니 하는 말 따위에 관심이 없고 혼자 그림에만 몰두했다. 모든 부품들이 제 자리에 놓여 완전히 기능하는 '기계'를 그리는 것에 토니가 빠지게 된 것, '고독'과 '결핍'으로 점철된 스스로의 삶에 대한 반작용이다.


토니의 고독과 결핍은 에이코와의 결혼을 통해 잠시 해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에이코 역시 비싼 옷을 사는 행위, 즉 사치를 통해 스스로의 결핍을 일시적으로 메우는 인물이다. 토니의 결핍을 채워준 에이코 역시 결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토니와 에이코는 각각 배우자와 옷이 없으면 공허한 자아를 채우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토니의 아버지인 쇼자부로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결핍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결핍을 채우려 하는 둘과는 다르게 쇼자부로는 결핍된 상태 그대로 살아간다. (쇼자부로가 죽고 토니에게 전달된 유품은 악기와 레코드판뿐이다)  이는 감옥에서 겪은 경험과 관련이 있는데, 감옥에서 동료들이 매일 처형당하는 상황 속에서 불안에 떨던 쇼자부로는, "삶과 죽음 사이에는 머리 한 가닥 정도의 틈새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출소 후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어느 것도 채우려 하지 않고 '그저 산다.'



참을 수 없는 인간의 외로움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온 히사코는 토니로부터 간단한 업무 지시와 함께 의아한 제안을 받게 된다. 바로 아내의 옷을 입고 근무해달라는 것. 이해는 안 됐지만 일자리가 필요했던 히사코는 토니의 제안을 수락하고 에이코의 옷방에 들어가 옷을 입어본다. 그러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라 눈물을 쏟아낸다.

토니의 상상 속에서 울고 있는 히사코

히사코의 눈물은 무슨 의미일까. 


에이코의 옷방은 결핍을 채우는 공간이자 역설적이게도 결핍을 가장 짙게 드러내는 공간이다. 예쁘고 비싼 옷이 없으면 텅 비어 버린 것 같이 느껴지는 에이코의 자아는 700벌이 넘는 명품 옷이 가득한 공간에서 더욱 공허해진다.


에이코의 부재로 토니의 자아에도 더욱 큰 구멍이 생긴다. 평생 외로움을 몰랐던, 아니 외로움을 인식하지 못했던 토니가 에이코의 존재로 외로웠던 자신의 과거를 인지하게 되고, 에이코의 부재로 토니는 다시 고독과 결핍 속에 주저앉게 된다. 토니는 어려서부터 어떤 순간에도 울지 않았지만 에이코가 '있다 없으니까' 결국 외로움 앞 무너진다.




결핍을 끌어안고 살던 쇼자부로도, 결핍을 사치로 메우던 에이코도 모두 죽었다. 쇼자부로의 LP판과 에이코의 옷가지들도 모두 팔리거나 불태워졌다. 둘은 나이가 멈추는 날까지 결핍을 하릴없이 끌어안고 살거나, 결핍을 무언가로 덮어두기 급급했고 끝까지 공허한 생을 완전히 채우지 못했다.

토니가 불 속에서 히사코의 이력서를 건져내 히사코에게 전화를 거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겐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

영화 말미에 이웃 아주머니가 히사코에게 장갑을 주겠다며 노란색과 보라색 중 고르라고 한다. 하지만 히사코는 아무거나 상관없다며, 외려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노란색이든 보라색이든 '물질'인 장갑이 감싸줄 수 없는 그 무언가, 인간이 가지는 숙명적인 고독과 결핍은 결국 사람의 손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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