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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이모 Jul 04. 2023

여름방학 알바

25세 때 여름방학, 난 일을 해야했다.

그 해, 난 '독립하겠다'며 집을 나왔고, 모아둔 돈으로 학교앞 월세를 구했다. 마침 지방에서 올라온 후배도 방을 구했던터라 우린 월세를 나눠내고 돈모아 수박을 사먹는 동거인이 되었다. 그러나 방학이 되자 후배가 고향으로 내려갔고, 빈집에 혼자 있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독립을 왜 한 것인가) 월세도 벌고, 어딘가 숙식을 해결할 일을 구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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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숙학원 사감이 되었다.


자고로 기숙학원이란 재수생을 타깃으로 하여 1년 동안 합숙생활을 시키는 것이지만, 이벤트성으로 여름방학에 고등학교 1~3학년 특강을 모집한다. 그러다보면 학생들을 관리하는 남여 사감을 추가로 뽑게 되는 것이다.


알바사이트를 폭풍검색하다가 이렇게 돈도 월급으로 주고(당시 하던 채점알바는 일당 시스템이었다, 월급 좋아) 혼자 안자도 되는(당연하지, 난 30명의 여고생과 자야한다), 밥도 주는(난 밥을 급식판에 먹는게 좋다)알바에 환호성을 질렀다.

난 최대한 화려한 이력서를 써내려갔다. 대학 때 했던 아주 티끌만큼이라도 의미있는 일은 다 썼다. 제출 직전, 혹시나 해서 '신체건강-태권도 4단'도 한 줄 적었다.


면접이 잡혔다. 면접관은 여자 실장님이셨다. 훗날 학생들의 소식통에 의하면 기숙학원 사장님 부부의 따님이라고 했다.


"4단이세요?"

"네!"(경험상,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씩씩함이 생명이다)

"흠....시작은 7월 20일부터예요, 가능하세요?"


실장님이 물어본건 태권도 단 뿐이었다. 또 훗날 실장님께 직접 듣기로는 여고생들과 한달살기는 그 어떤 것보다 만만치 않은 탓에 체력을 제1조건으로 뽑았다고 한다. 내 이력서는 별 중요치도 않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버리려다가(!!) 마지막 장에 마지막 줄을 보고 뽑기로 했다는 것이다.(역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일도 구하는 것인가 보다)


일이 시작되기 전 남여 사감들은 여름특강으로 이곳에 오는 고등학생들의 비장함, 간절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애들과 친해지지 말라는 특명을 받았다. 난 1달동안 웃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곳에서 난 지금의 홍사장을 만난다.(회사에 도착했으므로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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