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고2반 담임을 맡고(주간업무) 여학생 기숙사 사감을 맡았다(야간업무).
고2반 학생이었던 홍사장은, 굳이 말해보자면- 맑았다. 착하다는 느낌과 약간 결이 달랐다. 홍사장은 공부를 걱정했지만 잘 웃었고, 옆사람에게 말을 잘 걸었다. 고2반 여학생들은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친한 그룹을 만들고 상대편 그룹을 좋아하지 않는 클리셰같은 한편의 드라마를 써냈지만, 홍사장은 누군가와 등을 돌리지 않았다. 홍사장과 정선생은 그 두 여학생 그룹의 유일한 소통창구 같은 역할을 했다.
난 홍사장과 친해지고 싶어졌다. 안타깝게도 홍사장같은 인물은 선생님을 찾지않았다. 그냥도 너무나 잘 지내고, 성적 스트레스도, 교우 스트레스도 잠시 고민하고 금새 툴툴 털고 그냥 필요한 걸 했다. 아, 또 한가지.홍사장을 보며, 똑똑함과 성적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기숙학원을 마치고 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학교에 들어가 성인이 되었다. 어엿하게 선생님을 모시고 밥도 먹었고(물론, 난 카드를 가져갔다, 선생님의 덕목이다), 인생의 고민이 있다며 전화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25살 홍사장이 결혼한다며 찾아왔다. 12살 차이나는 남자친구와(홍사장과 나는 7살 차이, 즉 그 남자분은 나와도 5살 차이가 난다) 결혼한다고 했다. 아이 둘을 안고 업은 채, 살아가는 것이 고되던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현아. 너는 잘 살거야, 축하한다."
연수, 연욱이가 유치원을 다니며 혼자 밥을 척척먹는 나이가 되었을 때, 홍사장은 2살 배기 아들을 27살의 나이로 키웠다. 마침 당시 근무하던 지점 앞에 홍사장이 산다기에 작아진 연욱이 옷을 가득 싸들고 홍사장 집에 갔다.
홍사장은 불고기. 된장찌개, 콩자반을 차려왔다. 남편은 지방근무가 종종 있지만 착하다고 했다.
잠시 후 들어온 남편분은 "선생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제가 운동하고 온다고 늦었습니다. 현이가 그래서 더 고생합니다"했다. 홍사장에게 '남편이 운동하는건 장기적으로 너에게 좋은거야'라고 말하자 거구의 (고령의....) 남편분은 수줍게 웃었다. 남편은 처음 본, 다섯 살 어린, 기숙학원에서 1달 담임이었다는 내게, 아이가 둘이면 힘든지 진지하게 물었다.
홍사장이 갈수록 좋은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다.
이후, 홍사장은 둘째를 가졌을 때도,
-쌤, 둘째가졌는데, 키울 수 있는거 맞겠죠?
인스타로 동대문 옷을 떼다 팔 때도,
-쌤, 애들 재우고 시장나가서 힘드네요 ㅎ
하필 내가 옮긴 직장 앞으로 또 이사올 때도,
-쌤, 제가 5개년 계획을 세워보니 거기 살아야 될 것 같아요~돈이 왜이리 없을까요ㅎ
남편이 주차장에서 이웃차를 긁었을 때도,
-쌤~이거 어쩌죠? 어떻게 사과를 드려야 좋을까요?
남편의 고용주가 임금을 안줬을 때도,
-쌤~못 받은 돈이 좀 많아요, 대출이 너무 늘었네요, 일이라도 해야겠어요, 그래야 애들 옷이라도 사지요 ㅎ
아들 친구 엄마가 하는 가게로 출근할 때도,
-쌤~투잡뛰려구요!
그 가게 옆에 옷가게를 낼 때도,
-쌤, 지도보내드릴게요, 놀러오세요~
라며 웃었다.
까르르 웃지 못할 뿐, 그녀는 '해결'을 의논하면서 '이런 일도 있어요'라며 웃었다.
고성과 비난과 핑계가 난무하는 회사에 있다보면, 이 7살 어린 30대 초반의 학생이 담담히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걷는 걸 보기만 해도 힘이 났다. 남탓없이, 괜한 사치나 비교없이 지내는 그녀를 보는게 참 기뻤다.
어제는 홍사장의 3평 남짓되는 옷가게에 가서 돈까스를 얻어먹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담담한 말투로, 자신보다 20살은 많아보이는 분들께 차분히 옷을 파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쌤~ 옷가게하다 손님없을 때 쌤 브런치 글 읽어야겠어요~"라며 손을 흔드는 홍사장을 위해 헌정글을 쓴다.
홍사장의 퇴근길이, 저녁상차림이, 동대문 시장 새벽투어가 아주 조금 더 즐거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언니가 과소비하러 갈께, 니 가게 옷에 내 몸 사이즈 맞춰갈께, 딱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