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해보자면,
사회생활 15년이 다 되어가도록 왜 결혼식과 장례식에 가는지, 얼마를 부조하는지가 왜그리 중요한지 알지 못했다.
흔히들 말하는 '결혼식은 못가도 장례식은 가야한다'는 뜻도 역시 알지 못했다. 너무나 바쁘고 챙길 것도 많으며 일도 넘치는데, 경조사에 가서 결혼식은 두시간, 장례식은 그보다 2배는 길게 앉아있어야 하는게 부담이었다.
또, 난 사회생활이 갓 시작하자마자 결혼했고, 그 당시 축하해주는 분들과 내가 정작 다녀야하는 결혼식의 당사자들은 차이가 있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사회생활 친구들- 아주 단순히 보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마흔을 앞두고 보니, 그것을 알만한 나이가 아니었구나 싶었다. 지금에사 알아가는 나를 비난하진 않기로 나와 타협했다.
건강때문에 회사를 못나가는 그 잠깐의 시간에 동료가 부친상을 당했다. 회사에 얼마없는 '남의 일이 내게 와도 묵묵히 견뎌내는' 친구였다.
-그 친구와의 인연은 일 때문이었다. 내 일이 과부하가 걸리자 회사는 써포트 요원을 찾게 되었다. 그런 써브조연 역할은 자신의 성과로 온전히 카운트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나서지 않고 결국 낮은 연차로 채워진다. 그러나 이 일은 생각보다 써포트가 까다로웠고 경력을 요했다. 그런 써포트 자리를 구하는건 정말 쉽지 않다. 그 친구가, 심지어 나랑 같은 연차이면서 다른 중요 CASE를 들고 있던 바로 그 친구가, 써포트 요원을 하게 되었을 때, 난 진심으로 그를 존경했다.-
병가 중이던 나는 당시 회사 뿐 아니라 다른 외출을 하는 것도 삼가던 중이었지만, 그 순간 그냥 깨달아졌다. 가야한다는 것을.
그날, 장례식장 안에서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여 친구를 위로하는 동료, 선후배들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손님을 맞아야하는 덕에 무너지지 않고 서있을 수 있는 친구도 보였다. 그동안, 젊었던 내 주변엔, 이렇게 삶에 중요한 분을 잃는 장례식이 없었을 뿐이라는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오늘은 결혼식에 왔다.
아직도 가는 내내 꼭 가야 하는가를 되뇌이고, 축의금 액수를 고민한다. 그래도 오늘은 비교적 적은 고민 끝에 꼭 가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순식간에 바뀌나 싶지만...불과 몇 달전까지 '주중에도 바쁘다고 집에 늦게 가면서 주말에도 회사 사람들 경조사를 챙기는건 말도 안되는것 같아'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그곳에 오는 사람들이 '의리있고 양심있어' 보였다.
오늘의 신랑은 그런 분이었다. '누구한테 맡기지....아, 그렇지!'하고 그 분을 보면, 내가 어제도 그제도 지난 주도 지지난주도 일이 생기면 그 분만 찾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분이었다. 평소 일이 비처럼 쏟아지는 부서에서 소개팅 기회도 없이 일만 하던 그 분은, 사내커플이 되셨다. 부지점장님, 팀장님, 수석님 등 그 분께 일을 선물하던 분들 모두 넉넉한 부조를 챙겨서 직접 오셨다. '양심있는 분들이었어...'
또한 무채색 나라에 온 듯한 나의 출근복(세상에 흰, 검정, 회색밖에 없는 느낌)을 던져버리고 색을 좀 입히고 악세사리도 좀 더하고, 입술색도 더하고 구두굽 높이도 더해서 갔다. 경조사의 복장이 마음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것도 이제는 조금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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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전 결혼식 일정을 포함해서 일정이 많은 날이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서 분주하게 청소를 하고 핸드폰을 보니, 결혼식의 당사자께서 문자를 보내셨다.
그 젊은 나이에 결혼식 당일 저녁, 문자보낼 정신이 있다니..
그간 내가 뭘 몰라서,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지못해서 놓친 인연이 있던가-생각해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