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아무리 유능한 이라 해도 사사건건 개입하면 싫어지기 마련입니다. 그 개입이 업무상 필요한 것이라고 해도 말이죠. 백 번 싸우는 리더는 성과는 잘 내더라도 훌륭한 리더는 아닐 것 같습니다. 근데 왜 리더는 100번씩 싸운다고 제목을 지었을까요?
이야기의 주인공인 사장님들은 말 그대로 백 번씩 싸우고 저자를 찾아옵니다. 자신의 경영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임원과의 다툼, 빈둥대는 직원과의 불화, 월권해 자기 자리를 넘보는 부사장과의 암투 등등... 난감하지만 경영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일들로 고민하고 있죠. 기업 법률 자문 변호사인 저자는 한비자의 말을 근거 삼아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 책으로 여러분은 한비자의 통치 철학과 리더가 겪게 되는 애로사항,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미리 말씀드릴게요. 백 번 싸우라는 건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남에게 무언가 하기 전에, 나의 언행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여러 번 고민하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어떤 것을 고민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요? 사람을 이끄는 방법, 한비자를 통해 알아봅시다.
한비자는 누구인가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한비자는 중국 최고의 지략가입니다. 통치술·제왕학의 창시자이기도 합니다. 워낙 유능한 탓에 그에게는 전설적인 일화 하나가 전해져 옵니다. 바로 진시황의 천하통일 비화입니다.
진왕 정은 중국 통일을 꿈꾸는 야심가였습니다. 염원을 이루기 위해 인재를 모으던 중이었죠. 그러던 중 신하의 소개로 한비자를 알게 됩니다. 한비자의 통치학에 반한 정은 그를 신하로 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한비자는 이미 한의 신하였습니다.
포기할 법도 한데, 진왕 정은 전쟁을 일으킵니다! 한비자를 빼앗기 위해서였죠. 한비자를 얻은 정은 결국 6국을 멸하고 천하 통일을 이룹니다. 그리고 진의 황제가 됩니다.
심의를 읽어라
한비자는 상대의 심의를 읽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합니다.
설득이 어려운 이유는 지식이나 언변, 하고 싶은 말을 할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살펴 그 심의를 알아내고 거기에 맞춰 주장을 펼치는 것인데, 여기에 진짜 어려움이 있다.
심의란 무엇일까요? 저자는 "욕구"라고 말합니다. 심의를 읽는 것은 상대의 입장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욕구에 집중하는 것과 같은 말아죠. 예를 들어볼까요?
내가 말할 때마다 끼어들어 말을 가로채는 팀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서 팀 회식 때나 보곤 하는 친구죠. 잘 모르던 사이였는데 최근 우리 부서 회식 때 껴 몇 번 같이 놀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듣는 편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말만 하면 은근히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제 말을 끊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짜증이 치밀어 오릅니다.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다지 친하지 않던 이가 끼어들어 나를 무시하는 셈이니까요. 어쩌면 나를 만만하게 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개적인 망신을 줘야 하나, 따로 불러 주의를 주어야 하나 고민일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비자는 끼어드는 팀원의 욕구에 집중합니다. 왜 말을 가로채는 건지 그 이유를 고민하죠. 이어가 보겠습니다.
한비자를 공부한 뒤, 나는 문제의 팀원이 왜 그러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는 우리 부서로 발령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팀과 친해지고 싶었겠죠. 대화를 주도해나가며 눈도장을 찍고 싶은데, 끼어들 틈이 없었을 겁니다. 왜냐면 요즘 우리 팀의 이슈는 지난 분기에 거둔 실적이었으니까요. 아는 게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가장 직급이 낮고 나이가 비슷한 제 말을 가로챘던 거겠죠. 그는 우리 팀원과 함께 어울려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인정받고 싶었을 겁니다. 마치 신입사원 시절의 저처럼 말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앞서 품은 마음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가 아는 주제로 먼저 대화를 시작하기로 생각을 고쳐먹었죠.
어떤가요? 팀원의 심의를 발견하셨나요? 심의는 보통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주의 깊게 관찰하고 헤아려야만 보이죠. 말 그대로 "깊은 뜻"이니까요. 숨어있는 만큼 찾아낸다면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가 돌아옵니다. 마치 보물처럼 말입니다. 가장 큰 이익은 나에게 떨어지겠죠.
사탕발림
"사탕을 발라둔 것처럼 달고 듣기 좋은 말"입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말이죠. 사탕발림이 위험한 이유는 적보다 아군이 자주 하기 때문입니다. 내 사람이라 믿었던 이에게 속았을 때 그 타격은 배가 됩니다.
원수진 이가 쏘는 화살은 피하기 쉽지만, 은혜 베푼 사람이 던지는 창은 막기 어렵다.
그런데 한비자는 사탕발림 중 하나인 아부를 이렇게 말합니다.
아부에 현혹당하지는 않을지라도 아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부란 자신의 비위를 다른 사람이 맞춰야 할 정도로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합쳐봅시다. 우리는 사탕발림을 경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에게 적절히 아부할 줄 아는 사람도 되어야 하죠. 아첨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능란히 아부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탕발림과 칭찬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아부는 어떤 수준으로 행해야 할까요? 놀랍게도 두 질문은 한 가지 답으로 귀결됩니다. 재밌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임금이 화공에게 물었습니다.
- 임금 : 어느 것이 그리기 어려운가?
- 화공 : 개와 말입니다.
- 임금 : 어느 것이 그리기 쉬운가?
- 화공 : 도깨비입니다.
- 임금 : 도깨비가 난해할 것 같은데,어찌하여 개와 말같이 하찮은 것을 앞에 두느냐?
- 화공 : 개와 말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며, 아침저녁으로 눈앞에 보여 똑같이 그릴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도깨비는 형체가 없는 것이며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가장 그리기가 쉽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은 말하기 쉽다는 뜻입니다. 화려하지만 실제 하지 않는 것이 지어내기 쉽다는 것이죠. 반대로 확실히 존재하는 것은 꾸며내기 어렵습니다. 곧장 진위여부를 가려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적용시켜 볼까요?
우리는 아부할 때 사실을 근거로 말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장점, 성격 중 일부, 이룬 성과 등등... 상대가 이미 알고 있지만 한번 더 듣고 싶은 것이 되겠네요. 남의 입에서 나온 내 장점은 달콤하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누군가 나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할 때, 그것이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아부는 마취제와 같습니다. 기분 좋은 몽롱함에 취하게 만들죠. 덕분에 자신에게 없는 것도 마치 자신에 있는 장점처럼 느끼기 십상입니다. 냉정한 객관화를 통해 과한 아첨은 걸러낼 줄 알아야 합니다.
한비자의 통치학을 관통하는 문장을 가져왔습니다.
인간에게는 선의가 있으며, 그 선의는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선의는 찰나적인 연소와 비슷하여 너무나 공허하다.
한비자는 성악설에 입각한 군주론을 펼칩니다. 인간의 본성은 악이고, 결국 악으로 회귀하니 믿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전국시대(진나라의 중국 통일 이전까지 여러 국가가 권력 다툼했던 시기)를 살아가며 수많은 배신과 모략을 경험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한비자 자신도 아군의 칼에 죽죠. (진시황에게 한비자를 소개한 그 신하의 모략으로 죽습니다!)
혹자는 한비자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철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사실 관심 없습니다.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오늘날을 살아가는데 도움만 된다면 말이죠. 저는 이기심과 이타심, 그 중간 지점을 찾는 게 가장 이롭다고 생각합니다. 이타적인 성인의 철학만 듣다 보면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내 것만 챙기면 어느 순간 홀로 남은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르죠. 두 관점을 적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특징입니다. 한국 사회는 집단을 너무도 강조합니다. 개인의 삶을 존중하기보단 단체의 결속을 중시합니다. 어느 나라보다 서로의 눈치를 보는 사회죠. 한비자는 집단주의가 뿌리내린 우리 사회에 철퇴를 내린다는 점만으로도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한비자 입문서, <리더는 하루에 100번씩 싸운다>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