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에게
얘들아 안녕. M이야. 그동안 내가 써왔던 글들은 모두 너희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잘 읽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 시리즈를 열 편까지 마무리 짓고 이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냥 불현듯 너희 생각이 넘실거려서 이렇게 다짜고짜 글을 써 올린다. 내가 너무 게으른 탓이 글 열 개를 쓰는 것조차 마무리 짓지 못해 조금 머쓱한 마음이야. 그래도 한 편 한 편 써 올려 너희에게 읽힐 때마다 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으며 고맙다는 마음을 전해줘 내 마음이 더 따뜻해지곤 했어. 사실 이렇다 할 능력이 없는지라 짧은 글이나 지으며 나 혼자 만족하는 게 소소한 낙이었는데, 너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누군가를 짧게나마 행복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 으쓱한 마음도 있었지.
이 마지막 편지는 누굴 특정해서 쓰는 글은 아니야. 그냥 너희가 모두 ‘나에게 쓰는 편지구나’라고 생각하고 읽어 줬으면 해. 실제로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있잖아, 얘들아. 나는 너희를 보면서 슬픈 마음이 들 때가 많아. 눈부시게 반짝이던 너희가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갈 때마다, 그 순간순간마다 내 마음에 켜둔 작은 초들이 하나하나 꺼져 입 밖으로 그 연기가 나오는 느낌이 들었어. 너흰 나와 같은 친구들이니까. 우리가 얼마나 많이 웃고 울었는지를 아니까. 그게 우리를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었는지를 아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철저하게 무감해지는 연습을 하는 것 같은 너희를 볼 때마다, 아마 너희도 나를 보면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 그런데 어떡해? 우리의 영광의 순간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는걸?
얘들아. 너희가 모르겠다면 말해줄게. 우린 서로가 빛나던 순간의 증인이니까, 그리고 증인이 위증하면 큰 벌을 받는 법이니까 내 말을 믿어도 좋아. 나는 너희가 눈을 빛내며 말하던 그 순간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 그 이야기가 원대한 꿈, 거대한 야망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던 너희들, 심지어 우리가 크고 작은 이유로 다투던 순간까지도 너희는 진심으로 너희 자신이었고,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더라도 슬며시 휘어지던 눈, 시원하게 올라가던 입꼬리 같은 것을 난 정말 바로 몇 초 전처럼 떠올릴 수 있어. 너흰 다 알잖아, 내가 얼마나 기억력이 나쁜지.
우리가 사는 것은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삶을 체념할 때마다, 우리도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 흔해 빠진 사람 중 한 사람이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 10년 전, 5년 전엔 생각조차 하지 않던 지루한 어른들, 내가 되리라곤 정말 꿈에도 상상해 본 적 없던 그런 인간이 되는 걸까 라고. 그럼 너무 아득해지곤 했지. 말했잖아. 그럼 대체 내가 너희에게서 봤던 그 빛들은 대체 뭔데? 난 이대로 우리가 떠내려갈까 봐 무서워지곤 했어. 그리고 영영 거슬러 올라오지 못할까 봐.
그럴 리가 없다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너흰 정말 지치지를 않더라. 너흰 늘 울고 웃더라고. 늘 무언가를 발견하고, 늘 들떠서 그것을 말하고, 늘 큰 소리로 웃고 울더라고. 잘 생각해봐. 야근하고 다음 날도 똑같은 하루가 펼쳐질 것을 알면서도 넌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전날 혹은 그 전전날 입은 옷을 대충 걸쳐 입고 나서곤 했지. 그리고 어떻게든 삶의 아름다운 조각을 찾아 알리곤 했어. 이를테면 투명하게 떠오른 구름과 비 온 뒤 보송하게 말라가는 땅과 네게 안식을 주는 좋은 음악과 모두가 봤으면 하는 멋진 문장들을 말이야. 키득거리며 보냈을 웃긴 릴스와 쇼츠. 너흰 잠시도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처럼 굴더라. 너흰 절대 모를걸. 그게 얼마나 너희를 반짝이게 만드는지. 내가 이제 더는 새로울 게 없다고, 다 아는 것들과 거기서 거기인 것들이라 어떤 걸 보고 들어도 온전한 ‘처음’ 같지 않다고 말했을 때도 너희는 그랬어. “세상에 멋진 게 얼마나 많은데!”
얘들아, 나는 종종 너희를 미워하고 너희도 내게 그럴 테지만, 또 우리가 대체 언제까지 서로를 친구라 부르며 별것 아닌 순간과 별것인 순간을 공유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더 이상 아무 관계가 아닌 순간이 오더라도 꼭 하나만은 기억해줬으면 해. 네 삶이 얼마나 유일한지, 그리고 얼마나 반짝이고 있는지 말이야.
결국 너무 흔한 결말로 가는구나. 하지만 어쩌겠어. 원래 청춘물이나 성장물은 어느 정도의 클리셰가 기반인걸. 이 글은 정말 바로 써서 올리는 글이야. 두고두고 읽고, 몇 번이나 수정해서 올릴 글이 아니라는 걸 너희도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 얘들아,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 건 어쩐지 비겁해 보인다는 내 말. 대부분이 신기하다고 했지만, 난 속으로 슬쩍 웃었어. 너희 중에 누구도 안 그런 사람이 없었으니까. 너희 모두 사람과 삶의 환멸과 무의미를 이야기하면서도 누구도 사람과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너희 모두에게 이 글을 꽃다발처럼 바치고 싶어.
내 모든 진심과 사랑을 담아서. M.
추신. 아래는 내가 요새 즐겨 듣고 있는 노래야. 가수는 Alexander 23, 제목은 How to Drive. 우리 나이 때에 어울리는 정말 아름다운 노래라 내가 마음대로 해석해 봤는데, 유튜브에 검색해서 뮤직비디오랑 같이 봐주길! (해석이 틀릴 수도 있어!)
My grandparents, they're getting older / Some of my friends they're gettin' sober
할머니 할아버지는 점점 늙어 가고 친구들은 점점 정신을 차리고 있어
Oh, it's true that life goes on But it sure leaves some things behind
어쨌든 삶은 흘러가지만 몇 가지를 남기는 것 같아
I worked real hard, I made some money And it's not a joke, but it's still funny
난 열심히 일하고, 돈도 벌어 이제 더이상 장난일 수만은 없지만, 여전히 재미있어
How with every ounce of freedom Comes a pound of traumatized
그런데 어떻게 자유롭게 살면서도 이렇게 힘들 수 있을까?
It feels like all my friends they feel the same way
내 친구들 모두 다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아
The candles take more breath on every birthday
생일에 오히려 죽어가는 것 같은 느낌
The train it leaves the station / Without a final destination
인생은 결국 흐르고 우리는 목적지를 알 수 없지만
And I know I should shut up, enjoy the ride
알잖아, 그냥 즐겨야 한다는 거
But nobody ever taught me how to drive
아무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준 적 없는데 말이야
I've been heartbroken so badly / That now I'm scared of being happy
엄청나게 상처받은 적이 있어서 이젠 행복한 게 무서워
So when the butterflies show up / I make excuses up and hide
그래서 설레려고 할 때마다 안 될 이유를 만들며 도망쳐 버려
Like work is busy I'm feeling weird
일은 바쁘고 잘 되어가는데, 기분은 그렇지 않은 느낌이랑 비슷해
My dog died this time last year
참, 우리 강아지는 작년에 결국 죽었어
It feels like all my friends they feel the same way
The candles take more breath on every birthday
The train it leaves the station
Without a final destination
And I know I should shut up, enjoy the ride
But nobody ever taught me how to drive
I'm scared to death of my friends dying/ And I'm insecure about actually trying
난 내 친구들이 죽을까 봐 무서워 또 제대로 시도해보는 것도 자신이 없어
I got so many things I wanna do / That I get paralyzed and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그게 오히려 나를 무기력하게 해
End up wasting precious time on / Things that make me wanna die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얼마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I'm tired of seeing the world in black and blue
세상이 얼마나 어둡고 우울한지 이제 정말 지친다니까
My grandparents, they're getting older / Wish they could tell me when it's all over
할머니 할아버지는 점점 늙어 가는데, 그분들이 이 모든 게 대체 언제 끝나는지 말해 주면 좋겠어
Did you and all your friends feel the same way?
혹시 너랑 네 친구들도 이렇게 느껴?
Did the candles take more breath on every birthday?
생일에 오히려 죽어가는 것 같다고 느끼는지 궁금해
When the train it left the station / Was there a final destination?
인생은 결국 흐르는데 정말 끝나기는 할까?
Did you learn to just shut up and enjoy the ride?
혹시 너는 모든 걸 인정하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알아?
Did you learn to keep it all between the lines?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모든 걸 숨긴 채로 말이야
Did anybody ever teach you how to drive?
한 명이라도 네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는지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