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 서로가 다른 건 특별하다고 / 같은 건 운명이라 했던 것들이 지겨워져 / 나도 노력해 봤어 우리의 이 사랑을 / 아픈 몸을 이끌고 할 일을 끝낼 때처럼 /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박원의 ‘노력’이라는 곡이다. 20대의 나는 이 가사에 의심 없이 공감했다. 어린 내가 믿던 사랑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전기 스파크처럼 짜릿한 것, 서로가 가진 특별한 차이점과 운명적인 공통점을 음미하면 되는 것이었다. 무언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건 운명의 상대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자기 위안이라고 생각했다. 글쎄 매우 오만하게도.
지금 누가 나에게 30대에 들어서 가장 크게 바뀐 생각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제는 사랑을 노력한다는 건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아니 오히려 사랑은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비단 연인 관계가 아닌 가까운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과 있어서.
낯선 사람이 가져오는 낯선 세계에 대해서 알아가는 즐거움은 짧게 6개월 길어야 1년이면 바닥을 보인다. 그 시간이 지나 이제는 애써 질문하지 않아도 상대의 생활 패턴이나 취향에 대해 다 알았다고 생각할 때 즈음, 물리적인 시간으로 '권태기'가 다가올 때 오히려 진짜 사랑은 시작된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굳이' 너의 하루는 어땠는지 물으러 전화하는 일. 나의 자유를 내어주고 기꺼이 너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일. 똑같은 일상의 하루도 어땠는지 궁금해하는 일. 똑같은 하루였어도 어제와 달랐던 사소한 무언가를 꼬깃꼬깃 꺼내어 신나게 대답하는 일.
어쩌면 이 모든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일.
함께 보낸 기간이 길어지고 그 안에서 노력이 반복될수록 서로는 놀라움 대신 안정감을 공유한다. 노력으로 피워 낸 안정감이라는 열매, 우리는 그 열매가 썩거나 시들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소중한 이들에게 작게 노력해 본다. 오늘은 별일 없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