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부터는 출근시작이다.
주말이라 5살 아이와 둘이 새로 살게 된 지역에 적응도 할 겸 근처 양 떼목장으로 가본다.
지도상 이 지역의 절반 정도만 이동하면 되는데 한 시간이 더 걸린다. 인구수로 행정지역을 나누기에 시골인 이 지역을 가로로 횡단하려면 두 시간 반은 걸릴 것 같다.
차에서 내려서 주차하고 표 끊고 체험한 뒤 차로 타려는데 신발이 너무 더럽다. 새까만 진흙이 신발에 박혀 엉망진창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비포장도로를 겪을 일이 없어서 신발이 더러워질 일이 없었다. 늘 지하주차장에서 지하주차장으로만 이동하는 삶이었으니까.
이사하던 날. 애 밥을 먹여야 돼서 짜장면을 시켜 먹으려니 배달이 안된단다. oo군 oo면에서 제일 번화가인 oo리에 사는데도 말이다.
배달의 민족을 켜니 가게가 뜨는 게 아니라 `텅`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이런 건 처음 봤다.
택시도 길에 다니지 않는다. 전세버스 대절할 때처럼 볼일이 있을 때 전화해서 쓰는 기색이다.
살던 곳이 지방광역시라 나름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경기도는 수도권이라 지방보단 뭔가 좋아 보였던 건 일부의 얘기였다.
전원주택은 지하주차장이 없다. 상수도는 당연한 게 아니다. 가뭄이 들면 단수가 된다. 시골엔 동사무소 같은 곳에 목욕탕이 있어야 한다. 생존의 문제다. 도시가스는 당연한 게 아니다. LPG로 난방하면 겨울에 따뜻하게 살 수 없다. 집에는 지네가 들어오고 사무실엔 쥐가 들어온다.
봄엔 꽃가루가 눈처럼 날리고 아침엔 뱀이 잠을 잔다. 뱀은 체온이 돌아오는 오후에 돌아다닌다.
장지도마뱀이란 걸 태어나서 처음 봤다. 봄엔 만물이 깨어난다는 걸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여름엔 수상스키가 낮이고 밤이고 음악을 귀가 찢어질 듯이 틀고 영업을 한다. 가을엔 밤나무에서 밤이 떨어진다. 밤 따는 건 너무 재밌다. 은행을 한껏 주워가는 분도 있다. 겨울엔 눈이 펑펑 내린다.
눈이 내리는 건 스키장에만 봤다. 봐도 봐도 신기하다. 큰 도로는 제설이 빠르다. 언덕 위 전원주택에 살면 차를 큰 도로에 대놓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눈이 많이 오면 차를 못 빼서 학교에 결석하는 아이들이 많다.
미국이나 있는 얘기인 줄 알았다. 부모가 애를 차로 학교에 데려다준다는 것.
초품아가 진리인 도시민은 굳이 차를 빼서 아이를 데려다주는 건 상상밖의 일이다. 학교 안엔 차가 당연히 못 들어가고 심지어 교문 앞 정차도 되지 않는다. 나의 세상은 이게 전부인데.
여기 시골학교는 스쿨버스도 두대나 있다. 걸어올 수 있는 아이는 학교 근처에 사는 극히 일부뿐이다.
등교시간은 학교 앞 외길이 정체가 극심하다. 모두들 자기 아이를 태워와서 학교 앞에서 한대당 한 명씩 내려준다. 하굣길엔 부모들이 다들 차를 가져와 학교 안에 대놓고 엄마들은 운동장벤치에 앉고,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논다.
학교의 풍경이 도시와 다르다고 느꼈던 가장 큰 이유가 일반인의 학교출입에 제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도시는 교문 옆 학교지킴이한테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시골은 부모가 아이를 직접 픽드롭을 해야 하기에 엄격한 규정을 지을 수 없다. 아파트가 없기에 아파트 놀이터도 없다. 아이들은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해가질 때까지 땀을 흘리면서 논다. 부모들은 그 옆에서 몇 시간이고 학교에 머문다.
타임슬립 같기도 한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노는 모습은 어른에게 치유가 되는 광경이다.
이제 여기에 발붙이고 살아야 한다.
무섭고 두렵고 설레고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