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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Sep 16. 2023

[교행일기] #139. "함께"라는 의미

"함께"라는 의미


공시생 생활을 오래 한 연이는 학교라는 곳에 발령을 받아 일을 배우면서 그리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그런 동료들이 있다는 것에 처음에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운이 좋았기에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 인연으로 아직까지 이곳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이리라 생각이 든다.


첫 학교의 따스한 보살핌과 자신만의 열정이 나름 꽃을 피웠다면 두 번째 발령을 받은 곳에서 이곳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 때 즈음 세 번째 학교에 발령을 받았고, 두 번째 학교에서 받았던 모든 아픔들을 치유하고도 남을 "함께"라는 첫 학교의 따스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다. 


굴곡진 롤러코스터의 오르막과 내리막은 삶의 방향과 비견되게 그려졌다.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듯이 어머니의 건강이 현시대 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순간 멍해지게 만드는 병에 걸렸고, 수술 후에도 오랜 시간 병원에 드나들어야 했다. 


중세시대를 흔히들 암흑기라는 표현을 하듯, 연이의 인생에서 암흑기는 세 번째 학교에서 갑자기 발령을 받으면서 시작이 되었다. 그게 암흑기라는 표현이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그 어렵게 들어온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로 머릿속을 흔들어 놓기에는 넘치고 넘쳤다. 


코로나19가 3년이나 지속이 되는 바람에 힘든 학교업무 속에서의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모임의 숫자는 점점 줄었다. 어쩌면 이것 역시 암흑기의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점점 피폐해져 가는 마음은 따스함을 채울 수 없어 갈라지고 터져나갔다. 견딜 수 있는 한계에 부딪혀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고 버텼다. 


'이게 맞나?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고통이 느껴지는가?'


두 번째 학교에서의 어려움이나 네 번째 학교에서의 어려움은 비슷할진대, 왜 나는 추락하고 있는가?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향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또 '쓸모'가 없어진 것처럼 느껴지는가? 언제부터 어떻게 잘못되어 가는가?


근원적인 물음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울 때마다 아련히 끄집어내고 있었다. 글은 어느 정도 고통을 감내하면서 쓸 수 있다고는 하나, 그 고통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 강한 고통은 글을 쓸 힘조차 남겨두지 않고 사람을 바닥으로 끌어당긴다. 그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도하는 사람처럼 "납짜기"가 된다. 무서워서 마음이 점처럼 아주 작게 뭉쳐진다. 그렇게 뭉쳐진 마음은 무겁디무겁다. 들 수 없을 정도로...


"함께"라는 마음이 주는 온화함과 따스함이 무척 그립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교행, #교육행정직, #교행일기, #학교, #직장생활, #연이, #따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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