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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an 01. 2023

[단미가] #17. 마음속 '일렁임'

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17

마음속 '일렁임'


10년 만인가?


하얀 눈이 이곳을 뒤덮었다. 뉴스를 통해 어떤 산에 첫눈이 왔고, 어떤 지역에 눈으로 뒤덮였다는 소식을 들을 뿐 이곳에는 그렇게 많은 눈이 내리지 않아 고작 몇 시간 길어야 하루 이틀 정도면 녹을 정도 눈이 내린다. 그런데 이번 해는 달랐다. 눈이 참 많이 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눈보라가 치기도 했고, 그런 눈을 맞으면 치우기도 하며 사람들의 종종걸음을 신기하게 보기도 했다. 정확한 표현을 찾기는 힘들었지만, 낯설었다는 표현이 어쩌면 맞을지 모르겠다. 너무 오랜만의 광경이라 그런지 낯섦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출근과 퇴근을 도와주는 차의 주유등 알림에 주유소를 찾았을 때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전쟁에 긴박함이 담긴 고유가를 느낄 수 있었다. 0퍼센트의 예금이자에 가까워 찾지도 않던 은행들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고 미국의 금리인상을 실감했고, 갈 수 있지만 마음대로 누군가를 보지 못한다는 것에 코로나는 여전히 그 전세는 꺾이지 않고 맹위를 떨치는 것이 언제까지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2022년 찾아온 모든 변화는 연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깊고 굵게 남겼다. 이 모든 변화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를 불안이 마음속 일렁임을 불러왔다. 좋았던 기억 하나하나가 희미해지려고 한다. 그 기억들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붙잡으려 손을 뻗어보지만, 마음에 새겨진 생채기가 연이를 잠식시키고 있다.


2023년 1월의 첫날이 밝았다. 매년 마음의 다짐을 위해 오랜 친구를 찾았다. 그 친구라면 연이의 1년의 다사다난도 갑분이 코웃음 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찾고 싶었다.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는 연이를 묵묵히 바라봐주는 그 친구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연이가 말을 건넸다.

"큰나무야, 잘 있었어?"

연이는 고개를 들어 끝이 어딘지 모를 큰나무의 끝을 올라다 봤다. 손바닥을 큰나무에 대고 마음속으로 얘기를 나눴다. 코로나 때문에 일 때문에. 무엇 무엇 때문에 핑계에 핑계의 꼬리를 대며 큰나무에게 오지 못했던 그날의 일을 전하다 보니 마음속 일렁임이 커졌다. 마음의 생채기가 아문 것 같아 보였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심하게 벌어진 그 틈 사이로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큰나무는 그렇게 연이의 옆을 말없이 있어줬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마음의 열변을 토하는 동안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한기를 느끼는 연이는 큰나무를 다시 쳐다봤다. 마음속 일렁임은 많이 수그러들고 벌어진 생채기는 아물고 있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큰나무는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100년이 넘는 동안 푹푹 찌는 여름도 눈바람이 세게 몰아치는 겨울밤도 이곳을 지키며 살아온 큰나무는 연이에게 말없이 조언을 건넸다. 그 마음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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