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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30. 2021

[교행일기] #56. 마음, 그리고 마음

마음, 그리고 마음


오후가 되자 반가운 얼굴들이 병실을 찾았다. 실장님, 김 주무관님, 솔이 주무관님, 시설 주무관님, 사회복무요원 W까지 연이를 보러 와 주었다. 자신들의 귀한 시간을 내어 찾아온 행정실 사람들이 한 마디씩 연이에게 건넸다. 그들에게 연이가 알고 있는 사고의 사실들을 얘기하면서 그동안 연이가 인지하지 못한 것들이 밀려왔다.


사고는 엄청나게 컸다. 하지만, 연이와 가족들은 이 정도면 사고에 비해 아주 아주 양호했다. 연이가 탄 차량을 뒤에서 박은 차는 폐차되었고, 그 안에 탔던 운전자와 조수석에 있던 사람은 중환자실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보험사 직원이 들려준 얘기를 머리로만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얘기를 풀어놓으니 연이는 운이 좋았고, 다행이었고, 진짜 다행이었다.


잠깐의 방문이었지만, 연이는 마음속에 여러 가지 감정이 일었다. 소속감, 유대감, 식구, 고마움. 모두 따뜻한 감정이었다. 그 짧은 방문 때는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연이의 마음이 밤새 또 무너졌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행정실 업무를 메워주고 저녁에 잠시 번갈아 들러주던 행정실에서 같이 밥을 먹는 가족과 같은 식구, 행정실 식구가 연이의 마음을 다잡아줬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며 무너졌던 마음을 세워 파편화된 마음의 퍼즐을 끼워 넣었다. 그렇게 완성된 퍼즐 안에는 한 장면이 보였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연이의 시간은 아주 잠시 멈췄었다. 아니 멈춘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남들이 말하는 죽기 직전의 파노라마처럼 인생의 필름이 돌아간다고 했는데, 이 느낌이 그런 것이라면 맞는 것 같았다. 그런 필름 중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OO초등학교에서 힘들었던 기억들이 아닌 웃으면서 근무하던 연이가 장면에 꽂혔다. 그리고는 빠르게 다시 시간이 흘렀다. '


OO초등학교에서 웃으면서 근무하던 연이의 장면이 마음의 퍼즐 안에 빛을 내고 있었다.


퇴원을 하고 주말이 지났다.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에 서둘러 학교를 출근하는 연이가 걱정이 되었는지 엄마는 한사코 반대를 하였다. 목보호대를 끼고도 걸을 때마다 울리는 진동이 고스란히 모두 통증으로 다가왔다. 연이는 무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이대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부상 위치가 목, 어깨, 손목이라 지금 일하기에는 실제 무리가 있었지만, 다행히 손목은 빠르게 회복이 되어줘서 교행 업무의 처음이자 끝인 키보드, 마우스는 사용이 가능했다.


아침에 시원하던 때와 다르게 한층 쌀쌀하다고 느껴졌다. 반팔을 입었던 사고 나기 전과 다르게 이제 긴팔을 입고 출근을 하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활기차 보였다.


싱그럽고 무성하게 자란 나무가 있는 학교가 그리웠고,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그들의 귀중하고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 달려와 준 행정실 식구가 보고 싶었다. 의원면직을 하려던 5월의 연이의 마음은 이제 훌훌 바람에 하늘로 올려 보내니, 저기 뛰어가는 1월의 연이가 보였다. 그 연이를 따라 지금의 연이가 뒤를 바짝 쫓았다. 1월의 발령받았을 때의 열정적인 마음을 가진 연이와 누구보다도 절실히 나가고 싶지 않은 9월의 지금의 연이가 만나 OO초등학교로 향했다.


연이는 보고 싶었다. 얇디얇은 습자지에 갈대 같은 여린 마음을 가진 신규 연이가 어느덧 정년이 다가와 초임지의 일을 흐뭇하게 생각하는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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