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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29. 2021

[교행일기] #55. 의원면직, 되살아난 망령

의원면직, 되살아난 망령


다음 날 연이와 가족들은 보험회사에서 알려준 교통사고 접수번호를 통해 한방병원에 입원했다. 

아침 점심 저녁 1시간 정도씩 이루어지는 집중치료로 침과 사혈부항, 전기치료, 약물치료 등을 받기 시작했다. 통증을 줄이기 위해 통증을 가하는 아주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목의 통증이 심해서 그런지 수십 개의 침이 어깨에 꽂히고 손가락, 발가락, 심지어 머리에까지 가느다란 침이 연이를 뒤덮었다. 그렇게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3번의 치료를 끝나니 하루가 갔다. 


그렇게 이튿날이 되었다. 첫날에는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치료를 받을 때와 다르게 연이의 몸은 치료의 자극과 통증을 몸이 기억하는지 치료가 진행될 때마다 경직되어갔다. 한의사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면서 경직된 몸을 풀려고 했으나 마음과 다르게 몸은 움츠려졌다. 오전 집중치료가 끝나고 점심 무렵 실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사고 당일에 연락을 드렸을 때도 많이 놀라셨는데, 아직 그 충격이 남아 있는 목소리로 병원 이름을 물었다. 


그날 저녁, 병원 침상에서 자려고 누웠더니 쉬 잠이 오지 않았다. 불이 꺼진 병실에서는 연이가 겪은 교통사고 기억이 오래된 영사기의 필름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재생이 되자 연이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연이야~ 못 돌아가면 어쩌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마음의 소리가 연이를 불렀다. 파편화된 마음 중 하나였던 5월의 연이의 마음이 나타났다. 몇 달 전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의원면직을 하려던 나약했던 연이가 다시 고개를 들며 불쑥 튀어나와 지금의 연이를 압박했다. 뭣도 모르는 신규 연이가 그저 의원면직으로 모든 상황을 피하려고 했던 마음이 지금의 연이를 비웃었다. 10년 동안 공시생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들었던 '너까지 게'의 마음의 파편이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연이는 고개를 돌려 귀를 막았다. 그 웃음을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 했다. 반대편으로 돌리니 사고 기억 속 연이가 지금의 연이를 애처롭게 바라봤다. 연이의 마음은 나약했다. 어느새 통증이 밀려와 연이의 몸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사고 때부터 멈추지 않는 삐~~~ 하는 소리는 여전히 귀에서 맴돌며 연이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밤새 파편화된 마음들의 공격과 밀려오는 통증에 시달린 몸은 축 쳐졌다. 


집중치료를 계속 받고 있지만, 여전히 아픈 목, 삐~ 하는 소리, 팔목을 움직일 때마다 일어나는 통증은 연이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특히 목의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고, 자다가 깨어 일어나 있기를 계속되었다. 그런 나약한 마음은 축축해진 땅과 같아 곰팡이 같은 잡생각이 잘 피었다. 합격만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마음과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는 마음이 싸워서 결론은 이제는 더 있고 싶어도 가고 싶어도 못 갈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겨버리지 않았나 했다. 벌이라 생각했다. 


치료가 끝나고 비는 시간에 병실 복도 창에서 바라본 세상은 갈 곳을 잃은 연이 같은 사람만 있었다. 통증이 심해지니 또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래, 이러다 낫지 않으면 못 돌아갈 수도 있겠구나. 나가려고 했던 내 마음을 알고 나갈 수 있게 해 주려고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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